▲그들은 친구를 '무연고자'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미지: 정연주 제작]
연합뉴스
친구들은 공문에 단 한 줄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고인과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친구들은 고인의 장례를 치를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각자 얼마씩 모으면 장례를 못 할 것도 없었다고요.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어째서 장례를 포기했냐고 물어보자 친구들은 답답해하며 대답했습니다.
"경찰이 우선 가족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요. 친구들이 장례를 치러도 상관 않겠다는 각서를 가족들이 써줘야 한다고요. 그리고 본인들은 정확한 절차는 모르니까 구청에 물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구청에 갔지요. 처음에는 구청 공무원도 설명을 잘 못하다가 나중에 안내를 받았는데, 형제한테 위임서를 받아야 한대요. 그런데 그 기간이 길면 한 달 정도 걸린답니다. 결국 직접 화장까지 하는 것은 포기하고, 장례식장에 빈소만 이틀 차리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장례식장도 가족이 아니면 빈소를 차릴 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결국 지금까지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핵심적으로는 안치 기간이 문제였습니다. 법률상 장례를 바로 치를 수 있는 가족의 범위에 친구들이 속하지 않다 보니, 형제의 시신 인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의사를 등기 우편으로 물어보게 되는데, 그동안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요. 만약 친구들이 모든 장례 절차를 직접 맡아서 했다면, 본격적인 장례를 시작하기도 전에 300만 원의 안치료부터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어쩔 수 없는 차선책으로 고인이 안치되어 있는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사실 빈소를 마련하는 것은 꼭 고인의 가족이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시신을 옮기거나, 화장하기 위해 발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딱히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장 측은 혹시 모를 분쟁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거부한 것 같습니다.
결국 친구들은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고인의 장례를 직접 할 수도, 빈소를 마련해 애도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허락된 것은 3시간 남짓의 공영장례뿐이었지요.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은 마침내 치러진 장례에 마음이 놓이면서, 동시에 고인에게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참 안타깝지요. '무연고자'로 보내게 되어서 친구한테 미안하기도 하고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의심받는 애도의 진정성
가족이 아니어도 장례를 치를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마련되었지만, 그럼에도 가족 외의 사람이 장례를 치르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한 달가량의 안치 기간과 장례를 치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음을 증명해야 하는 소명의 시간이 수반되니까요. 여기에 더해 고인의 친구들은 사람들의 의심도 큰 장벽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친구들이 아무 이득 없이 목돈 들여서 장례를 치러줄 리 없다고, 재산 등을 노리는 것이 분명하다고 의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고인의 마지막을 지켰던 것은 장례를 치를 권리와 의무가 있었던 형제가 아니라, 공문에 단 한 줄도 적히지 않았던, 그래서 법률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친구들이었습니다. 연고에는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라는 뜻도 있습니다. 고인은 '무연고'로 살아가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나서 얼굴을 보고, 기꺼이 자신의 돈을 들여 장례를 치러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고인이 사망한 뒤 '무연고'라는 단서가 붙은 이유는 제도의 한계와 사람들의 의심 때문입니다. 혈연이라는 커다란 문턱을 넘어 실제 고인의 연고가 장례를 치르기 위해선 제도뿐 아니라 사회 인식의 변화도 함께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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