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08 20:35최종 업데이트 25.09.0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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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4일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작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보수단체인 ‘리박스쿨’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수사관들이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권우성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존경하는 위인은 일반적으로 세종대왕과 이순신이다. 세종과 이순신은 아이들의 초통령이다. 세종은 '우리 글'을 만들고, 이순신은 '우리 바다'를 지켰다. 초등학생들이 두 인물을 존경하는 데는 어른들의 영향도 작용했겠지만, '우리'를 지킨 인물을 영웅시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인식이다.

윤석열 정권은 그런 사고 체계에도 영향을 주고자 했다. 윤 정권은 '우리'를 짓누르거나 배반한 인물을 우리를 지킨 인물로 둔갑시켜 어린이들의 머리에 주입시키고자 했다. '자유를 지키고 싶다면 이승만과 박정희를 배우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리박스쿨을 돕고 이 단체의 초등학교 진출을 지원한 것이 그 사례다. 이는 어린이들의 역사 인식을 바꾸고 초통령을 교체하려는 시도였다.

사석이나 술자리에서 '한국인들은 힘으로 억눌러야 해', '한국인들에게는 민주주의도 허용하면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따금 있다. 이들은 한국'인'이라고도 하지 않고 비하적 표현을 쓰기도 한다. 윤 정권이 조기에 몰락하지 않고 리박스쿨이 초등학교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위와 같은 망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아이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를 그만큼 후퇴시킬 뻔했던 일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대중의 자유를 가장 많이 억압하고 반공세력의 자유를 가장 크게 신장시킨 두 독재자가 이승만과 박정희다. 자유를 지키고 싶다면 이승만·박정희를 배우라는 캐치프레이즈는 기만적이면서도 노골적이다. 대중을 속이는 구호인 동시에, 반공세력에게 윙크하는 구호다.

촛불혁명 직후인 2017년 6월에 설립된 리박스쿨은 '위대한 자유역사교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전문강사 양성반', '총선필승 선거학교' 등의 강좌와 한일친교협회 등의 부설 조직을 운영해 왔다. 이들을 초등학교 교육 현장에 침투시킨 것은 윤석열 정권이다. 윤 정권은 한편으로는 강제징용 제3자 변제, 홍범도 흉상 철거, 이승만기념관 건립 등을 추진해 국민적 논란을 일으키면서, 또 한편으로는 리박스쿨을 은밀히 교육 현장에 침투시키고 어린이들의 역사 인식을 바꿔놓으려 했다.

국립대학인 서울교육대는 리박스쿨과 업무협약을 맺고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의 통합체인 늘봄학교의 프로그램을 공급했다. 리박스쿨은 자신들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민간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지원한 뒤 이들을 늘봄학교 강사로 투입했다.

일제 식민 지배도 미화

지난 7월 10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리박스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있다. 왼쪽은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남소연

윤석열 정부의 교육부도 이를 거들었다. 2024년 6월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손호숙 리박스쿨 대표를 교육정책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손호숙 대표는 자문위원회의 다섯 분과 중 하나인 '국가책임 교육·돌봄 분과'에 배치됐다.

보도에 따르면, 위촉 당시 이주호 장관은 손호숙이 리박스쿨 대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이주호 장관은 지난 7월 10일 국회 교육위원회 리박스쿨 청문회에서 교육부를 대표해 사과해야 했다. "책임자로서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라고 그는 밝혔다. 교육부가 리박스쿨과 연루됐음을 드러내는 사과 발언이다.

리박스쿨과 그 유관단체의 늘봄학교 진출에는 대통령실도 개입했다. 이주호 장관이 사과한 그날, 국회 교육위원회에 출석한 김천홍 교육부 책임교육정책관(국장급)은 늘봄학교사업 공모 심사와 관련해 윗선의 압력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천홍 정책관은 교육부의 늘봄학교사업을 총괄하다가 대통령실로 옮겨간 신문규 당시 비서관의 압력을 받았다. 글로리사회적협동조합을 챙겨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조합은 손호숙이 이사장인 리박스쿨 유관단체다. 김 정책관은 "평가 결과가 굉장히 안 좋게" 나왔기 때문에 글로리사회적협동조합을 탈락시켜야 할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그런 연락을 했다고 증언했다.

리박스쿨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교육료 명목의 지원도 받는 등 윤 정권의 지원하에 이곳저곳에서 공적 지원을 받았다. 그런 지원을 배경으로 리박스쿨은 초등학생들의 머리에 거짓을 주입시키는 역사파괴 활동을 벌였다.

민주당이 지난 6월 1일 공개한 리박스쿨 교육 동영상은 마치 전체주의 수업 현장을 참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상에 등장한 초등학생은 "제가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리박수클의 좋은 점입니다"라며 "그중에서 첫째는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을 배운다는 것입니다"라고 고백한다.

영상에는 강사로 보이는 인물이 "이승만 대통령은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만큼 존경받아야 할 위인이다"라는 문장을 낭독하도록 유도하는 장면도 나온다. 또 윤석열 옹호 집회에 참가한 어린이가 "리박스쿨의 강의를 듣고 바른 역사를 알게 됐습니다"라며 "저희가 일어나 나라를 지키지 않으면 나라를 빼앗길 것 같아서"라고 발언하는 장면도 나온다.

리박스쿨은 일제 식민 지배도 미화했다. 6월 19일 자 MBN 뉴스가 보여준 리박스쿨 교육 동영상에 따르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찍은 단체사진 앞에 선 역사강사는 "이 사진 너무 행복하지 않아요? 행복한 노예들 아니에요?"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선택받은 삶"이라고 찬미한다. 친일 세뇌교육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반공세력의 허황되지만 위험한 상상

지난 6월 4일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실현전국학부모회, 혁신교육학부모네트워크 공동주최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리박스쿨이 끝이 아니다! 극우세력의 학교 침투 발본색원!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이정민

윤 정권을 배후에 둔 리박스쿨은 이승만·박정희의 역사를 반공세력의 관점에서 왜곡하고 이를 전파하는 무대 중 하나로 초등학교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들이 겨냥한 타깃은 정규 수업시간이 아닌 방과후 시간이다. 방과후 수업을 거쳐 정규 수업시간으로 진출하는 우회적 전략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정권을 등에 업고도 정규 수업이 아닌 방과후수업을 타깃으로 삼은 것은 이들이 내세우는 극우 역사관의 힘이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드러낸다. 역사교과서부터 개정하지 않고는 극우 역사관이 정규 수업시간에 침투하기 힘든 현실을 리박스쿨이 보여준 셈이다.

1998년 김대중 집권 이후로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해방 이후의 한국을 주도한 쪽은 김대중의 반대편인 반공세력이다. 이들 반공세력은 실제로는 대중의 정치참여를 억압하면서도 겉으로는 민주공화제를 외쳤다. 또 실제로는 친일 노선을 걸으면서도 겉으로는 반일에 동조하는 듯이 했다.

이는 1919년의 구속력이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이다. 3·1운동은 반일운동인 동시에 민주공화제 운동이다.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민주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이 이 운동의 정신이다. 반공정권하에서 나온 역대 헌법들도 첫 문장에서 3·1운동을 언급하고 본문 제1조에서 민주공화국을 언급했다. 3·1운동은 반공세력이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반일과 민주공화제는 한국 극우세력이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다. 그 두 가지가 역대 반공정권하에서도 헌법 전문의 첫 문장과 헌법 본문의 제1조를 차지했다. 헌법 내에서 가장 목 좋은 곳을 그 두 가지가 차지한 것이다. 반공세력이 지배하는 나라의 헌법 규정이 이렇게 된 것은 3·1운동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이었는지를 되새겨보게 만든다.

반공세력이 지배하는 해방 이후의 교육현장에서 항일 자주독립과 민주공화제가 강조된 것은 그 때문이다. 정권의 지원을 받는 리박스쿨이 정규 수업시간으로 직진하지 못하고 방과후로 우회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구도를 극복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박스쿨은 학교종이 땡땡땡 울리고 수업이 끝난 다음에야 학교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리박스쿨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이것은 우리 사회에 교훈을 남겼다. 윤석열을 비롯한 반공세력이 얼마나 위험한 상상을 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초등학생들을 세뇌시켜 이승만·박정희의 신도들로 만들고 제2·제3의 이승만·박정희에게 순종하는 우민들로 키우고자 했던 한국 반공세력의 허황되지만 위험한 상상이 리박스쿨 사태에서 한층 명료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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