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05 11:52최종 업데이트 25.09.0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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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의견을 피력할 때에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이 표현이 공식 국호이고, 조선이 '남조선'이 아닌 대한민국(한국)으로 표현하면서 자신도 공식 명칭으로 불러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서로가 국가성을 인정할 때 대화와 관계 개선도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한 것입니다. 이에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기자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차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지난 2일 인공기를 단 차량 행렬이 베이징 시내를 지나고 있다.베이징 교도=연합뉴스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 국무위원장의 방중이 숱한 화제와 해석을 낳고 있다. 이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7·271953'이라는 숫자를 주목했다. 9월 2일 오후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를 타고 베이징역에 도착한 직후 주중 조선대사관으로 이동하기 위해 탑승한 전용차의 번호판에 이 숫자가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전용차에 이 숫자가 식별된 것은 이번에 세 번째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6월 평양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판 롤스로이스'라고 불리는 아우루스를 김 위원장에게 선물했는데, 조선은 이 차의 번호판에 '7·271953'라는 숫자를 달았다. 지난해 8월 김 위원장이 평북 의주의 수해 현장을 방문했을 때 포착된 벤츠 스포츠 실용차(SUV) 번호판 숫자도 같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53년 7월 27일은 한국전쟁을 멈추기로 한 정전협정일을 의미한다. 조선에선 이날을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로 부른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이 숫자를 대내외에 선보인 이유는 '대미 장기전'을 선포한 8차 당대회 기조와 반미 메시지를 부각하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 정도 해석에 머무는 것은 결코 실용적이지 않다. 조선의 의도를 이렇게 해석하면, 한국의 외교적 입지와 선택도 위축될 소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략적 해석'이 필요하다. 상대의 의도를 예단하기보다는 우리의 전략적 목표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이러한 방향으로 상대를 유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 이때가 기회다

조선의 의도를 떠나 '7·271953'라는 숫자는 72년이 지나도록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을 내포한다. 전쟁도 평화도 아닌 휴전 상태가 이토록 오래 지속되어온 것도 비정상적이지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협상다운 협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때마침 계엄 선포의 구실을 찾기 위해 정전 상태를 전시 상태로 뒤바꾸려고 했던 윤석열 정권이 파면되고 "평화가 경제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도 3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는 '동결→감축→폐기'로 이어지는 단계적 비핵화를 추구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진전을 통해 이러한 접근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단계적 비핵화의 실효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정부가 평화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한국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9월 한달간 한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을 맡게 되었고 23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뉴욕 유엔 총회 연설이 예정되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 대통령이 유엔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협상 개시를 제안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같은 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이 예정되어 있고 한미 정상이 만날 기회도 자연스럽게 생길 가능성도 높기에 더욱 그러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월 김 위원장과의 1차 정상회담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로 합의한 바 있고, 한국전쟁을 끝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여러 차례 말한 바도 있다. 2기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지구촌 곳곳의 전쟁과 분쟁 해결에 강한 의지를 피력하면서 한반도 문제 해결 의사도 밝혀왔다. 이에 따라 한반도 평화협정은 한미 정상이 공감하고 추진할 수 있는 분야 가운데 하나이다.

한반도 평화협정 추진은 6년 동안 단절된 남북·북미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비핵화를 의제로 하는 대화는 당분간 불가능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가 평화협정 협상을 제안하면 조선도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반도 정전체제의 불안정성이 가중될수록 한미일의 결속도 높아지고 이에 대응해 북중·북러 결속도 강해지는 패턴을 보여왔다. 이에 따라 평화협정 추진은 동북아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신냉전 기운을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이재명 정부의 제안으로 평화협정 추진이 탄력을 받으면 꽉 막힌 남북관계를 푸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조선은 "적대적이고 교전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고착하려고 한다. 나는 이에 대한 가장 효과적이고 실효적인 대응책이 평화협정 추진에 있다고 본다. 평화협정이야말로 "적대적이고 교전 중"이라는 조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해소하고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조 가운데 하나인 '평화공존'을 실현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평화체제 구축 노력 있어야 북핵 해결도 가능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그럼 비핵화는?'이라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비핵화 협상이 실패했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미가 평화협정을 조선에 주는 선물로 인식하고 '선 비핵화, 후 평화체제'라는 프레임에 집착했던 데에 있었다. 그런데 이는 '마차가 말을 끄는 방식'과 마찬가지였다. 북핵 문제는 정전체제의 장기화와 불안정이 가중되면서 발생하고 악화된 성격이 짙다.

이는 평화체제 구축의 실질적이고도 획기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북핵 해결에도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협정 추진을 통해 이제는 '말이 마차를 끄는 방식'으로 전환해보자는 것이다.

다만 "북한의 비핵화"나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실용적이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강조해온 '세계의 핵군축과 비핵화'에 북핵 문제를 담아낼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하여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교감을 거쳐 오는 23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두 가지 점을 특히 강조했으면 한다. 하나는 한반도 평화협정이고, 또 하나는 세계의 핵군축과 비핵화의 필요성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입니다. 최근에 쓴 책으로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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