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네 백반의 한상차림. 6000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푸짐한 한끼였다.
여운규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이 가게의 중심이랄까, 가장 돋보이는 집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던 '유라네 백반'이었다. 여기도 거의 모든 메뉴의 가격이 6000원이었는데, 나오는 음식의 양과 질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백반을 시키면 밑반찬만 해도 6, 7가지가 항상 나왔고, 국물도 커다란 대접에 담아 주셨다. 거기에 따로 제육볶음 같은 메인 메뉴가 나오기 때문에 쟁반에 공간이 모자랐다.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와 정말 할머니 손도 크시다. 이래가지고 남는 게 있으시려나.
그러니 음식백화점으로 들어가면 나는 항상 유라네를 먼저 들렀다.
"할머니, 오늘은 뭐가 좋아요?"
"오늘? 동태찌개 맛있게 해놨어. 그거 해드릴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6000원을 내면 동태찌개와 함께 또 부러지게 한 상이 차려져 나오는, 마법 같은 집이었다.
음식백화점, 지금은?
모든 것은 변하고, 아무리 좋은 것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다. 미친 물가는 매일매일 성실하게 올랐다. 압도적인 가성비를 자랑하던 이곳 음식백화점의 가게들도 하나둘 가격 인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24년에 접어들면서 6000원짜리 메뉴들이 하나둘 7000원으로 인상되기 시작했다. 덮밥도 칼국수도 오르더니 결국 유라네 백반도 7000원이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7000원이라 하더라도 아무 불만이 없었다. 여전히 다른 가게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이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점심시간, 오늘도 백반이나 먹을까 하고 들어갔더니 유라네 식당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나의 최애 백반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거다. 할머니 오늘 안 나오셨네. 어디 편찮으신가? 하고 안을 둘러보는데 집기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영영 장사를 접으신 것 같았다. 쟁반이 넘치도록 차려주시던 그 푸짐한 한 상을 이제 더 이상 볼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얼마 뒤 그 자리엔 다른 가게가 들어섰다.
그 뒤로는 내 발길이 좀 뜸해졌다. 여전히 가성비 최강의 식당임은 분명했지만 그만큼 유라네의 존재감이 컸던 탓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찾아가 본 음식백화점에는 한식 뷔페 코너가 새로 생겼고, 다른 가게들의 음식값은 대부분 8000원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처음 여기를 왔을 때 먹었던 돈가스 세트를 시켜 보았는데, 순두부찌개 국물은 그대로였지만 비빔밥은 세트에서 빠져 있었다. 큼직한 양푼이 안 보이니 조금 휑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칼국수 쟁반에는 계란 후라이가 두 개씩 올라가 있는 게 보였다. 그걸 보니 조금 안심이 되는 느낌이었다.
모두들 힘든 과정을 겪어나가고 있다. 학생들도 직장인도 자영업자도 저마다의 짐을 짊어지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는 중이다. 삶은 갈수록 팍팍한데 날씨마저 너무 덥고 습하다.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찾아오더니 처서가 지나도 식을 줄 모르는 더위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이럴수록 잘 먹어야 힘이 날 텐데, 이제는 마음 편하게 백반 한 그릇 먹기도 힘들어진 것 같아서 또 슬프다. 하지만 빌딩 숲 한구석에는 아직도 고마운 밥집들이 여전히 남아서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 비록 힘든 상황이 누구라도 비껴가지는 않아서 한 해 한 해 변해가는 모습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감사한 집들이다. 요즘 같은 때에 8000원으로 한 끼 때우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푸짐하게 잘 먹고 힘을 내어 볼 일이다. 버티다 보면 폭염도 물러가고 이제 곧 가을을 맞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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