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산재사망 배달노동자 추모 행진에 참가한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을 비롯한 배달 노동자들이 12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산재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며 약식 추모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훈님,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 16명의 얼굴 없는 영정사진이 걸려있는 걸 아시나요? 지난 5일 라이더유니온 조합원 김용진씨가 쿠팡이츠 배달을 하다가 사망했습니다. 라이더유니온이 조사해보니 올해 상반기에만 16명이 배달을 하다 사망했습니다. 이에 라이더유니온이 플랫폼노동자에 대한 근본적인 산업안전대책을 마련하라는 요구를 걸고 대통령실 앞에 분향소를 차린 겁니다.
대한민국 산재 1위 기업은 배민, 2위는 쿠팡이츠 입니다(2025년 1분기 기준). 이런 와중에 라이더 오픈채팅방에 배민 고객센터와 배달 라이더가 주고받은 대화 내역이 올라왔습니다.
플랫폼 산업의 본질이 드러나는 대화
"픽업언제되나요?"
배민은 문제가 생기면 라이더에게 전화를 하는 대신 핸드폰 앱으로 메시지를 보냅니다. 안전한 소통을 위해서는 전화통화가 낫습니다. 대부분의 라이더들은 헬멧에 부착되어 있는 블루투스로 통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측은 효율적으로 여러 라이더들과 소통하기 위해 굳이 채팅 상담만을 고집합니다.
라이더 입장에서는 일단 앱에 메시지가 뜨면 긴급 상황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행 중이라도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토바이를 옆으로 안전하게 세우고 손으로 채팅을 하면 좋겠지만, 픽업 언제 할 거냐는 질문에 한가하게 멈춰서 채팅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해서 길고 정성스럽게 메시지를 작성할 시간도 없습니다.
"좀걸려요"
배달 중 채팅을 하려면 띄어쓰기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배달 일을 하는 사람은 잘 아는 사실을, 다른 사람은 알기 어렵습니다. 라이더의 짧은 대답이 거슬렸을까요? 고객센터 직원의 반응도 심상치 않습니다.
"왜요?"
이쯤 되면 이미 서로 감정이 상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고객센터 직원은 일은 해야 하니 "얼마나 걸리세요"라고 다시 묻습니다.
"그건정확히모르죠3배차인데"
라이더도 빈정이 상했습니다. 3배차란 3개 음식점의 배달을 동시에 수행하는 겁니다. 배민은 인공지능(AI)이 라이더에게 자동으로 음식 배달 명령을 내립니다. 라이더 입장에서는 회사가 AI를 앞세워 자신에게 3개의 배달주문을 동시에 수행하라 해놓고서는 인간 상담사를 앞세워 늦게 온다고 다그치는 겁니다. 라이더의 '3배차인데'는 일종의 항의였던 거죠. 역시 띄어쓰기를 할 새가 없습니다. 순순히 물러날 고객센터 직원이 아닙니다. 2분 뒤에 라이더에게 다시 메시지를 남깁니다.
"마라탕 음식 나왔다고 빨리 픽업해달라고 가게 전화왔어요 빨리해주세요 픽업시간 지났습니다."
라이더는 폭발합니다.
"장난합니까 사고나면 책임지실건가요"
고객센터 직원도 지지 않습니다.
"그걸 왜 저한테 장난하냐하고 제가 책임을 지나요;;; 가게에서 픽업시간 지났다고 전화가 와서 전달하는건데"
"문의 종료"

▲라이더와 고객센터 직원의 대화
라이더유니온

▲라이더와 고객센터 직원의 대화
라이더유니온
라이더 입장에서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문의 종료' 문구일겁니다. 라이더가 픽업을 독촉한 고객센터 직원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채팅창에서 수많은 자동응답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해당 직원과 다시 대화를 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이처럼 주행하느라 채팅방에서 라이더가 더 이상 메시지를 남기지 않으면 '문의 종료'가 뜨고 처음부터 다시 연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화로 자동응답시스템(ARS)과 씨름하는 과정을 라이더들은 앱에서 겪어야 합니다. 주소오류, 손님의 부재, 포장불량 등 배달을 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도 라이더들은 전화가 아니라 채팅을 해야 합니다. 온전히 채팅만 하다가는 수익이 줄어드니 주행을 하면서 틈틈이 답변을 남겨야 합니다.
고객센터 직원이라고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닙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상황을 고객센터 직원들이 모두 알기 어렵습니다. 결국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는 배달공장의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겁니다.
저 대화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장이 있습니다. '가게에서 픽업시간 지났다고 전화가 와서 전달하는 건데'입니다. 플랫폼의 또 다른 이용자인 가게주인의 항의를 전달한 것 뿐이라는 고객센터 직원의 말은 플랫폼 산업의 본질을 잘 드러냅니다. 플랫폼은 음식가게와 라이더를 연결할 뿐 라이더에게 빨리 가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책임도 없다는 말입니다.
플랫폼은 중계만 할까?
정책 결정권자들조차 '중계만 할 뿐'이라는 플랫폼 기업의 주장에 수긍합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닙니다. 노동자의 입장이 아니라 플랫폼 산업의 입장에서도 플랫폼이 중계만 한다면 망합니다. 가게가 애써 만들어놓은 마라탕을 배달 해줄 라이더를 매칭하지 못한다면 플랫폼 기업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일단 배민이라는 플랫폼을 믿고 주문을 한 손님으로부터 신뢰를 잃습니다. 배민에 접속해서 주문하는 손님이 줄어들면 가게주인도 배민에 수수료를 내고 입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결과 배달량이 줄어들면 배민에 접속해서 일할 라이더도 줄어들겠지요. 하나의 중계만 실패하더라도 플랫폼에는 치명타입니다.
반대로 손님이 많아지면 배민에 접속하고 싶은 가게도 많아지고 배달 물량이 많아지면 라이더도 늘어나겠지요. 라이더가 늘어나면 배달 속도가 높아지고 손님과 가게의 만족도도 높아집니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손님이든 가게든 가입자를 늘리는 게 중요합니다. 따라서 플랫폼은 단순히 중계를 하는 게 아니라 질 높은 배달 서비스를 가게와 손님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배달 라이더에게 지금 어디냐고 직접 묻기도 하고, 배달앱이 예상한 시간을 넘기면 자동으로 '현재 이 배달을 진행하고 계신가요'라고 묻는 메시지가 뜨기도 합니다. 효율적인 배달 수행을 위해 AI가 배달지와 배달순서, 배달료를 설정합니다.

▲쿠팡이츠의 미션 시스템
쿠팡이츠 배달파트너앱 캡처
배달 라이더들에게 특정한 건수를 수행하면 추가적인 보너스를 주는 경우도 있지요. 고 김용진 조합원도 이 보너스를 받기 위해 무리하게 일하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그가 쿠팡이츠에서 달성하려고 했던 미션은 2주 동안 AI가 배정해 준 배달을 400건 이상 수행하면 주는 '골드플러스'였습니다. 이 등급을 받으면 30%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김용진이 사망한 8월 5일은 400건을 채워야 하는 2주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실제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중 사고 경험을 한 라이더 131명을 심층조사했는데, 88.2%가 배달앱에서 시행하는 미션, 프로모션, 등급제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답했습니다. 미션을 하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설문에 참석한 라이더는 '미션을 안 하면 수입이 없어 살 수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보너스가 추가되지 않는 배달 라이더는 배달 한 건당 얻을 수 있는 소득이 2500원에서 3000원에 불과합니다. 배달 플랫폼들은 미션과 프로모션 없이는 사실상 한 시간에 시급 1만 원도 안 되는 임금구조를 만들어놓은 겁니다. 8월 28일 분향소 앞에서 개최된 증언대회에서 사고 라이더들은 사고 당시의 사항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플랫폼은 배달 단가는 낮추면서, '몇 건 더 하면 인센티브 준다', '몇 분 안에 배달하라'는 식으로 조급하게 몰아붙입니다. 그 결과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고,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 사고라이더 A씨의 증언
"단가도 좋지않고 콜도 없는 와중 주말에 미션이 주어졋습니다. 미션이 주어진 와중 콜이 뜨지않는 '콜사'가 이어지고 조리대기가 걸리고 하니 마음이 급해져 과속을 하게 됐습니다." - 사고라이더 B씨의 증언
이처럼 플랫폼 사업자는 단순한 중계 사업주가 아니라, 플랫폼에 접속한 다양한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업주인 겁니다.
라이더가 죽는 게 당연하지 않은 사회를 위해서

▲대통령실 앞에는 상반기 산재사망으로 숨진 배달노동자를 추모하는 얼굴 없는 영정이 걸려있다.
공공운수노조
배달노동자가 죽는 게 더 이상 충격적인 뉴스가 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현재 배달 플랫폼 산업은 사람이 죽는다는 전제하에 운영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는 재해조사도 하고 산업안전보건법도 만들고, 중대재해처벌법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중대재해가 나면 고용노동부가 해야 하는 중대재해 사고원인조사도 사업주가 도로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진행하지 않습니다. 국가는 배달 노동자가 어떤 노동환경에서 산재 사망사고가 났는지 원인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겁니다.
산재예방을 위해 필요한 산업안전보건법은 특고 플랫폼 노동자라는 이유로 전면 적용되지 않아 플랫폼기업들은 면허확인, 헬멧확인, 안전교육 등만 수행하면 됩니다. 그나마 유의미한 조항은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규칙 제673조 ②항 '배달플랫폼이 산업재해를 유발할 수 있을 정도로 배달 시간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인데 이 조항으로 플랫폼 기업을 처벌을 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특고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적용되나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그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만 적용이 가능합니다. 도로는 사업주가 관리하기 어렵지요.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 다양한 미션 제도와 앱에서 벌어지는 배달 독촉은 사업주가 지배 관리할 수 있는 디지털 공장입니다.
플랫폼 산업이 새로운 산업이라 기존의 노동법으로 규율하기가 어려울까요? 배달라이더가 겪는 독촉은 옛날부터 있었습니다. 단지 과거에는 회사에 소속된 라이더가 회사에 소속된 인간 매니저에게 독촉을 당했다면, 오늘날에는 플랫폼이라는 이름표를 단 라이더가 AI를 통해 간접적으로 독촉을 당할 뿐입니다. 여기에 어떤 새로움이 있습니까? 노동법 없었던 산업혁명 초기의 야만만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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