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27 11:46최종 업데이트 25.08.2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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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6단체장 등이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노조법 개정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요즘 대기업을 상대로 하청 노동조합을 조직해 교섭과 투쟁을 지도하던 노동조합 간부나 고용노동부 고위공무원에게 기업의 러브콜이 자주 들어옵니다. '노란봉투법'이라고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2조와 제3조 개정안의 통과 때문입니다. 과거 대기업을 상대로 하청 노조 측의 투쟁을 기획했거나 하청 노조의 운영 생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노조 간부, 혹은 향후 법적 분쟁에 대비해 노동 행정을 담당한 전관을 영입해서 노사관계 전략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됐습니다. 주요 내용을 보면 첫째로 사용자 개념을 기존의 근로계약 관계에 있는 당사자에서 특정한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 지배력을 가진 자"로 넓혔습니다. 이제부터는 임금이나 근로시간 등 노조에 속한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고 있다면 실질적인 근로 관계가 없는 원청 기업도 교섭에 나서야 합니다. 원청 기업이 기존처럼 근로계약 관계가 없다고 교섭을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습니다.

다음으로는 정리해고처럼 근로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 노사교섭의 대상이 됩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텐데요. 놀랍게도 지금까지는 구조조정이나 생산시설 이전 등의 사안은 노사교섭의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를 기업의 '고도의 경영상의 판단'으로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경영자 단체와 일부 친기업 언론에서는 노조가 마구 파업을 할 것처럼 보도하는데 파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노조법상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사 간에 교섭과정에서 의견이 일치되지 못한 사안을 '노동쟁의'라고 하는데요. 교섭 과정에서 '노동쟁의'가 발생하면 지방노동위원회라는 곳에서 의무적으로 조정을 거쳐야 합니다. 조정이 결렬 되어야 조합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어 파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동쟁의' 대상이 아닌 것은 조정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정리해고나 사업장 이전, 그리고 사업장의 폐업은 조정 대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정을 거치지 않은 정리해고나 폐업에 반대하는 노조의 생존권 투쟁은 대부분 불법파업이 됩니다. 이제 기업은 정리해고나 생산시설의 이전 등 사업경영상의 결정 내용 중 근로조건과 밀접한 결정은 노동자들과 성실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파업한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의 청구를 책임에 맞게 제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파업한 노조와 조합원에 대해 기업이 막대한 손해배상금액을 청구하여 노조활동이 위축되고 노동자의 생계가 위협 받는 사례가 반복됐습니다. 이제부터는 책임 정도에 맞게 손해배상 책임이 부과됩니다.

기업은 노란봉투법 인정하고 장기적 노사관계 전략 마련해야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통과되자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과 유최안 한화오션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오른쪽)이 기뻐하고 있다.연합뉴스

노란봉투법의 통과로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자단체는 울상입니다. 하청 노조의 무리한 교섭 요구와 파업으로 노사관계가 불안정해질 것이라 우려합니다. 사업 경영 결정까지 노동쟁의에 포함되면 글로벌 경쟁에서 어려움이 가중된다며, 일부 외국계 기업들은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노사관계 불안으로 인해 사업을 국내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노조법의 개정 내용들은 없었던 노동자의 권리를 새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법원에서는 판결을 통해 대기업이 하청 노동자를 사용해 이익을 누리면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모순을 꾸준히 지적해 왔습니다. 2010년 현대중공업의 하청 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사건을 시작으로 원청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결정했다면, 노조법에 따라 하청 노동자의 노조 활동을 보장하고 교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쏟아졌습니다.

최근에도 법원은 CJ대한통운이 집화점과 위수탁 계약을 체결한 택배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만큼, 택배노조와 교섭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또한 하청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조의 교섭요청을 거부한 한화오션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처럼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대기업의 교섭의무를 인정한 법원의 판례를 기반으로 이를 입법화한 것입니다.

기업들은 엄살을 그만 부리고 노란봉투법이 현실화된 상황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노사관계는 기업의 안정적인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하청 노사관계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과 부정적인 미디어 노출은, 고객사에 대한 적절한 제품과 서비스 공급에 지장을 주고 기업의 이미지에 타격을 줍니다. 기업의 리스크 관리 역량 부족이 드러나는 것이므로, 지속가능성 평가에서 중요한 감점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동안은 대기업은 소송 등 법적 대응에 주력해 하청 노조와의 교섭의무를 회피해 왔습니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어 교섭의무가 구조화된 지금은, 노조 간부나 전직 고용노동부 고위 공무원을 영입해 노조의 교섭요구나 분쟁에 대응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적 미봉책보다는 하청 노조와의 소통 채널을 마련하고 노동쟁의 발생 시 효과적인 분쟁 해결 매뉴얼을 마련하는 등, 노사관계가 기업의 리스크가 되지 않도록 장기적 노사관계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노동조합이 해야 할 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노조법 2·3조 개정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어 노조법 개정안 논의 상황과 노조법 개정안 통과 이후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총과 국민의힘의 주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유성호

노동조합도 이제 노란봉투법 이후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동안 노동조합은 다단계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불합리한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사회적 공감에 기반해, 대기업의 탐욕에 대해 사회적 비난을 조직하는 한편 장기농성 등 물리적 투쟁으로 원청 대기업을 협상으로 이끌어냈습니다.

이제 원청 대기업과 교섭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시점에서 노동조합은 얼마나 준비가 되었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원청 대기업과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한 상설적 협의 창구를 마련하고 분쟁의 가능성을 줄여야 합니다.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과 같은 상급단체는 노란봉투법 적용이 예상되는 산업 분야의 다양한 노동조합 조직 수요를 파악하고, 이를 조직화할 수 있는 활동가들이 준비되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조선업, 자동차 등 주요 제조업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노란봉투법이 이슈화되었지만, 노란봉투법의 적용으로 하청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업종은 더 다양합니다.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과정은 복잡합니다. 원청 대기업의 이윤을 하청 노동자에게 배분하는 과정에서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이해관계가 대립될 수도 있습니다. 기업별 노조의 이해관계를 넘어 원청과 하청 노동자가 윈윈할 수 있도록 상급단체가 원하청 노동자 연대의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교섭을 지도해야 합니다.

정부, 시행령으로 노란봉투법 취지 훼손해서는 안 돼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영훈 고용노동부장관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을 방문, 자신을 기다리던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전달받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이정민

정부에도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하청 노조의 교섭요구에 원청 대기업은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을 부인하며 법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럴 경우 하청 노조는 노동위원회에서 원청 대기업이 갖고 있는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력'을 입증해 원청 대기업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원청 대기업이 막무가내로 사용자성을 회피한다면 불가피하게 고용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노조법상 사용자 판단기준과 노동쟁의 범위를 구체화시키고, 교섭의 절차 등을 규율하는 것은 정부에서 정한 시행령과 행정지침입니다.

노란봉투법은 기업이 다단계 하청 노동을 사용해 이윤을 취하면서도 정작 사용자 책임을 회피해 왔던 모습에 대응하여, 하청 노동자의 노동3권을 폭넓게 확대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정부가 시행령으로 사용자 판단기준과 노동쟁의 범위를 너무 좁게 해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노란봉투법으로 이름 붙여진 노조법 제2조와 3조 개정안의 명칭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서 유래됐습니다. 당시 회사는 47억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노조 활동을 무력화시키려 했습니다.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고통받았던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노란봉투에 성금을 담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수많은 노조 간부들이 기업의 손해배상 가압류로 목숨을 잃었고, 하청 노동자들의 교섭요구를 회피한 원청 대기업의 탐욕에 맞서 스스로를 가두고 농성했습니다.

기업의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 반대 캠페인을 주도한 시민단체 손잡고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 잡고)는, 노란봉투법의 국회 통과에 대해 아래와 같이 평가했습니다.

"우리는 이번 '노란봉투법'이 법을 지키지 않는 자본가들이 법의 허술한 점을 비집고 들어가 만들어낸 창살없는 '돈의 감옥'에 갇힌 '노동권'이 해방될 수 있는 '작은 출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돈의 감옥'의 처참함을 온 몸으로 세상에 드러내준 건, 사법부가 기존 '판례'를 변경할 수밖에 없도록 천문학적 손배청구에도 굴하지 않고 '교섭'을 시도해온 많은 노동자들의 투쟁 덕분이었음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제 기업이, 노동조합이 그리고 정부가 이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노란봉투법 너머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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