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26 16:29최종 업데이트 25.08.2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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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지난 25일 독립기념관으로 출근하던 중 독립운동가 후손들로 이뤄진 단체 회원들에게 출근 저지를 당하고 있다. [독자 제공]연합뉴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퇴진시키기 위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투쟁이 줄기차게 전개되고 있다. 최근에는 출근 저지 투쟁도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임명된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임기 3년을 채우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독립기념관은 김형석 관장의 소신과 충돌하는 곳이다. 그가 세상의 반발을 무릅쓰고 관장실에 출근하는 모습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그는 취임 이전의 행적으로도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취임 이후에도 자격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광복이 '연합군의 승리로 얻은 선물'인가?

경축사에서 그는 백범 김구가 중국 충칭에서 벨기에 신부인 샤를 미우스(Charles Meeus)에게 "당신은 우리에게 복을 주려고 성심껏 도와주고 있으니"라며 한국인들을 만나면 독립운동에 동참시켜 달라고 당부한 사실을 거론했다. 그는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했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 배후에는 광복군 활동을 지원한 이름 모를 국내외 후원자들과 벨기에 출신의 미우사(미우스) 신부와 같은 세계인이 자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광복은 세계사적인 사건입니다."

김구가 서양 선교사에게 '당신은 우리에게 복을 주고 있다', '우리를 돕고 있다'고 말한 사실을 근거로 '광복은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의 광복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로 얻은 선물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들의 필독서이던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는 '해방은 하늘이 준 떡'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해석은 '항일독립전쟁 승리로 광복을 쟁취했다'는 민족사적 시각과는 다른 것입니다."

독립운동의 결과로 광복을 쟁취했다는 것은 민족사적 시각이라면서, 세계사적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연합군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김형석 관장이 하고 싶었던 말인 듯하다.

한국 독립군이 중국국민당·중국공산당·러시아공산당의 도움을 받고 미국·영국과 제휴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어느 나라의 독립운동에서나 흔히 나타난다. 오로지 자기 민족만의 힘으로 외세를 몰아내는 일은 드물다.

한국인들의 독립전쟁이 무시해도 될 만한 수준이었다면, 미국이 3년 만에 군정을 끝낸 사실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남의 땅을 계속 점령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점령하지 않는 국가는 드물다. 일제 패망에 대한 한국인들의 지분이 명확했기에 미군정이 3년 만에 끝날 수 있었다.

김형석 관장은 이런 사실을 감안하지 않고 김구가 말한 "당신은 우리에게 복을", 함석헌이 말한 '해방은 하늘이 준 떡' 등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면서 광복은 '남이 준 선물'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함석헌 같은 종교인들에게 '하늘'이 어떤 의미를 띠는지를 감안하지 않은 결론 도출이다.

경축사에서 그는 윤봉길을 사실상 폄하하는 발언도 했다. 그는 윤봉길이 거사 전에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여 에디슨 같은 발명가가 되어라"라고 아들들에게 당부했다는 말을 한 뒤, "윤봉길이 조국독립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희생하면서도 두 아들은 과학자가 되기를 소망하였던 것처럼 역사의 이면에는 다양성이 존재합니다"라고 말했다. 아들들에게 독립운동가가 아닌 다른 직업을 추천했다는 이유로 "역사의 이면"을 운운했던 것이다.

농민도 독립운동을 하고 노동자도 독립운동을 하고 학자도 하고 군인도 했다. 과학자도 독립운동을 할 수 있고 발명가도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 윤봉길의 말은 '독립운동가가 되지 말고 꼭 발명가가 되어라'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데 대단한 발견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을 광복절 경축사에 담았다.

독립운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독립기념관장

김형석 관장 사퇴를 요구하며 독립기념관 겨레누리관에서 농성 중인 독립투사 후손들. 김종훈

관장 취임 이후의 김형석은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의 국적은 일본 국적'이었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독립기념관 국정감사 때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일제강점기 국적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민병덕 의원은 "일제강점기 때 국적이 일본 국적이라는 것이 역사학자로서의 학문적 소신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까"라고 물었다. 김 관장은 "예"라고 대답했다.

강점기의 한국인들이 서류상의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19년 이후의 한국인들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그 심정으로 일제 지배를 견뎌냈다. 몇몇 독립운동권 인사뿐 아니라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3.1운동의 환희를 간직하고 살았다. 이런 사람들을 일본 국적자로 분류할 수는 없다.

또,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인들에게 일본 국적을 부여한 일도 없었다. 일본은 청일전쟁의 결과로 강점한 대만과 러일전쟁의 결과로 강점한 사할린에는 자국 국적법을 적용하면서도 식민지 한국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1910년 7월 15일, 식민지 법률정책에 관여하는 야마다 사부로 도쿄제국대 교수는 초대 조선총독이 될 데라우치 마사타케 한국통감에게 '합병 후 한국인의 국적 문제'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 의견서에서도 확인되듯이, 한국인들에게 일본 국적을 부여하지 않은 한 가지 이유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대등해지는 것을 막는 데 있었다. 대만인과 사할린인에게는 일본 국적을 줘도 무방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동등한 국적을 부여하지 않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일본 국적법 제20조가 한국 독립운동진영에 의해 역이용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있었다. 제20조는 외국 국적을 취득하는 일본인은 일본 국적을 상실한다고 규정했다. 일본은 '이 조항을 한국인들에게 적용할 경우, 중국 국적을 취득해 항일운동을 하는 한국인은 자동적으로 일본 국적을 상실하므로 이들을 일본 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우려했다.

1925년 11월에 총독부가 작성한 '제51회 제국의회 설명자료'는 한국인들에게 국적법을 적용하지 않는 이유와 관련해 "그들이 지나(중국)의 국적을 취득했을 경우, 지나 영토에서 배일운동을 일으켜 독립운동을 시도하더라도 우리에게 단속할 방법이 없고"라고 설명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일본은 한국인들에게 국적을 부여하지 못하고 별도의 호적 체계를 만들었다.

일제는 한국인들이 두려워 국적을 부여하지 못했다. 친일파들은 자신들이 일본 국적자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김형석 관장은 한국인들이 일본 국적자였다고 강변한다. 사실관계를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일제가 한국인들에게 일본 국적을 부여했다는 주장은 식민지 한국과 일본제국주의의 일체성을 강조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취임 이후의 김형석은 1945년 8·15를 통해 한국이 해방되거나 광복된 엄연한 사실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난해 8월 26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동수 민주당 의원과 나눈 질의응답에서도 이 점이 확인된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유동수 의원이 "관장님은 1945년도에 광복됐다는 걸 인정하십니까?"라고 묻자, 김형석은 "관장 자격으로 지금 얘기를 하라면 제가 코멘트를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유동수 의원이 "예스도 아니고 노도 아니다?"라고 다시 묻자 "예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관장 자격이든 학자 자격이든 1945년에 한국이 일제 지배로부터 벗어난 일을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독립기념관장 자격으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는 식의 답변을 내놓았다.

독립기념관의 장이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의 독립운동도 제대로 평가해 주지 못하고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이 일본 국적자가 아니었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았다. 또 1945년에 한국이 일제 지배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도 입에 담기를 거부한 것이다.

심지어 지난해 8월 14일 취임식에서 그는 "친일인명사전의 내용들이 사실상 오류들이 있더라"라며 "잘못된 기술에 의해서 억울하게 친일인사로 매도되는 분들이 있어서도 안 되겠다"라며 친일인명사전 청산의 의지를 표출했다. 독립기념관장이 독립운동의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하겠다고 말하지 않고 '친일파들의 누명을 벗기겠다'는 엉뚱한 각오를 내놓았던 것이다.

독립운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이를 폄훼하는 인물이 독립기념관장실을 계속 '점거'해서는 안 된다. 속마음을 감추지도 않고 아예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은 더욱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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