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옌이 택배 일 경험을 인터넷에 올린 후, 1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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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들으면 '한 노동자의 운 좋은 인생 역전'이라고 감 잡는 독자가 있겠다. 하지만 그는 버텨낸 노동의 날만큼 자기 삶을 자유의지대로 살고자 그야말로 고요하게 번민해왔다. 20대엔 박봉에 시달리며 만화 잡지 수습생과 애니메이션 잡지 편집 일을 하며 '로큰롤 정신'을 익혔고, 여전히 적은 임금을 유지했다. 국가가 개인에게 행하는 간섭에 저항하는 심지도 틈틈이 길러냈다.
저자는 사회에서 '주류로 부상하는 (국가주의) 가치관'을 함께 비판하던 친구들이 혐오하는 작품을 만드는 회사에 취직한다. 이윽고 '부패한 사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된 데 자책감을 가진다. 그곳에서 "쓰레기를 제작"했음을 밝히는 저자의 솔직함을 따라가다 보면, 이따금 이 사회의 부조리에 가담하고 있다는 양심에 시달리는 보통 사람의 노동 생활도 만나게 된다.
그 틈에서 "원래라면 절대 읽을 리 없는 책"들을 읽으며, "적당히 맞춰 살면 된다고 생각했던 과거"에서 후안옌은 차츰 벗어난다. 그 움직임의 기록이 정직한 몸부림으로 느껴지는 것은 후안옌이 써내려가는 노동 일지에 미사여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문장에 아우라를 입히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일 없는 날에 글쓰기에 전념하는 대신 "자유로웠고, 나머지 절반의 시간은 일하는 대신 자유롭지 않았다".
후안옌은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살피는 '자기 삶의 재편 과정'을 겪는다. 레이먼드 카버, 리처드 예이츠 등의 문학 작품을 읽으며 현실과 문학 세계 간 간극마저 맹렬하게 흡수해낸다. 저자는 자신이 놓인 노동 현실을 주춧돌 삼아 글쓰기를 계속한다. 그로써 척박한 현실 세계만큼 한동안 자신의 정신 세계는 풍요로웠다고 밝힌다.
그렇다 해서 저자는 노동 세계를 폄훼하지도, 작가라는 꿈과 이상에도 사로잡히지 않는다. 일하고, 쓰고, 지치며, 현실을 기록할 뿐이다. 노동을 예찬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으며 급변하는 노동 시장에서 인간이 지킬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한다. 그래서 그가 쏟아내는 노동에 대한 분노는 건강하다.
"나는 뒤에서 다른 사람을 욕한 적은 없어도 사업을 위해 주도적으로 남의 이익을 해치고 어떻게든 경쟁자를 몰아세우려 했다. (중략) 대부분 시간에는 분노에 증오에 휩싸여 있었다." -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 중에서
그는 재고 관리가 엉망인 자전거 가게에서, 하늘이라곤 보이지 않는 폐쇄된 실내의 쇼핑몰에서, 쌓여가는 자기 분노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쓴다. 글쓰기는 그가 인간을 노동 기계로 바라보는 도시에서 가까스로 직립보행을 하고자 택한 해방구이자, 존엄을 지켜내는 필사의 도구였다.
[후안옌의 이력서 ③] 나를 증명하지 않을 권리
책 끄트머리엔 후안옌이 처음 했던 일을 회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호텔 종업원으로 취직한 그는 한 번에 의자를 여러 개씩 옮기며 성실을 다했고, 동료들은 비웃는다. "네가 빨리 일할수록 저들은 더 많은 일을 줄 거"라고 지적한 동료들은 신임을 얻는 저자가 마뜩잖았던 것. 그 묘한 관계의 긴장을 줄타기하며 저자는 점차 "타인에게 자신을 증명하려 전전긍긍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간다.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 책날개에 수록된 후안옌이 거쳐온 19가지 직업들.
윌북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나운 인간관계 또한 지탱해야 하는 노동자의 삶은 어쩌면 전쟁터에 가깝겠다. 그 눅눅한 관계망을 통과해가는 노동 중에 후안옌은 "진실하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의 진실함을 믿게 할" 순 없음을 알아간다. 그는 점차 나를 '증명'하는 대신 타인의 노동 현장을 눈에 담기 시작한다. 그렇게 기록해낸 관찰은 어색한 포옹도, 인공적인 다정의 색채도 입지 않는다.
"어쩌다 들리는 파편적인 말로 농민공들이 임금을 다 받지 못했음을 알았다. 도시에서 매달 조금씩 생활비만 받으며 1년간 일했는데 공사가 끝나자 원래 받기로 한 임금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설을 쇠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거의 무일푼이 된 그들이 얼마나 난감할지 선하게 그려졌다. 그러나 그들은 슬퍼하거나 분개하지 않았다. (중략) 설을 쇠고 공사장으로 돌아가 행복의 기반을 다지고 싶어 했다." -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 중에서
노점을 하기 위해 시장 조사를 하러 버스에 몸을 실었던 후안옌이 당시 기록한 글의 일부다. 살던 지역을 떠나 도시로 일하러 간 사람들을 '농민공'이라고 하는데, 후안옌은 그들이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나누던 이야기를 들으며 휴대폰으로 글을 썼다.
내 삶을 살아갈 권리, 그 '품위'에 대하여
그는 이 글에서 농민공을 "숙련된 조타수"라 칭하는데, "불행의 암초가 행복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대비해온 평범한 사람들 덕분에 우리 사회 행복 총량이 늘어날 수 있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후안옌은 고통이 얼룩진 일터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타인 또한 가까스로 오늘을 견디고 있음을 마침내 발견한다.
이 책의 부제는 '일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품위에 대하여'다. 책에서 의미하는 '품위'를 다르게 말하자면, '내 삶을 살아갈 권리' '하고 싶은 걸 할 자유'를 뜻하겠다. 자유란 사실 매우 모호해서 우리의 노동 현실과 유리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후안옌이 그랬던 것처럼, 가까스로 자유를 생각할 때 치밀하게 짜인 노동의 각축전에서 오늘 내가 누리고 싶은 무언가를 잃지 않을 힘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겐 마땅히 품위가 있다. 단순히 "나태할 권리가 아니라 다른 노동의 꿈(자크 랑시에르, <프롤레타리아의 밤>)"을 꿀 자격이 있다. 택배를 옮기는 트럭 안에, 작가가 기댄 책상에, 물류창고 선반 앞에, 선원이 지키는 한밤의 갑판 위 변화무쌍할 모든 인간에게 말이다.
하여 나를 잃지 않으며 살아내는 꿈은 유토피아에 있지 않다. 후안옌이 그랬던 것처럼, 번민하고 분노하는 지금의 마음을, 진짜 내 이야기를 허들 없이 할 자유가 있다. 그것을 '품위'라고 불러보자.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 - 일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품위에 대하여
후안옌 (지은이), 문현선 (옮긴이), 윌북(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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