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6일 서울 종로구 이화장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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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권도 '현대판 우남기념회관' 건립을 추진했다. 서울중앙지검 검사 출신인 박민식 당시 국가보훈처장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한국인들은 이승만이 왜 하와이로 갔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런 국민을 상대로 이승만을 미화하고 기념관 건립에 관한 동의를 얻으려면 역사 왜곡과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승만 미화는 민심이 윤 정권을 등지게 된 주요 요인이다.
이승만 미화에 앞장선 박민식 처장은 2023년 5월 17일 자 <한겨레> 인터뷰에서 자신이 2~3년 전까지만 해도 이승만을 오해했다면서 "보훈처장이 되고 나서 많은 자료를 보고 학자들과 토론도 하면서 내가 이승만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승만에 대한 '깨달음'을 부각시켰다.
'지적 퇴행'을 '깨달음'으로 자평한 그는 '이승만의 공과 과를 두루 보자'며 이승만 왜곡에 앞장섰다. 그는 취임 2개월 뒤인 2022년 7월 19일에는 이승만 57주기 추모식에서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졌다며 "이제는 이승만 대통령을 음지에서 양지로 모셔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승만 출생 148주년인 2023년 3월 26일에는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공식화했다. 4월 7일에는 보훈처가 예산 460억 원을 책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는 태평양 너머로 날아가 이승만 메시지를 역송출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미국 시각으로 그달 28일, 그는 워싱턴에서 미국 학자들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 재조명' 좌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미국인들은 이승만이 일본과 긴밀했던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를 청원한 일, 친일 청산을 저지한 일, 친일파를 중용한 일 등을 호평했다. 상당히 어이없는 좌담회였다.
박민식은 '메이드인 아메리카' 망언들을 서울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국민 인식을 바꿔보고자 했다. 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이승만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해줄 권위 있는 학자들이 국내에 있었다면, 이승만에 관한 논리적 준비가 덜 된 미국 학자들의 입을 빌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방식은 이승만 미화가 한국 역사학계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박민식은 5월 17일에는 '민간이 건립을 추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그러더니 6월 28일, 민간이 주도하는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뒤이어 9월 10일, 기념관 건립을 위한 국민 모금이 시작했다. 11월 1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500만 원을 기부했다.
11월 9일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광화문 동편의 송현동을 기념관 부지로 거론했다. 12월에는 국가보훈부가 이승만을 '2024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2024년 2월 1일에는 영화 <건국전쟁>이 개봉되고 윤 정권이 힘을 실어줬다.
그해 8월 13일, 기념관 부지가 서울 용산으로 발표됐다. 하지만 석 달 뒤 12·3내란이 실패하면서 기념관 건립은 동력을 잃었다. 이승만 때는 기념관 건립 공사가 시작되기라도 했지만, 윤석열 때는 삽도 못 뜨고 동력을 잃었다.
불안하고 초조했던 반공세력

▲2024년 3월 26일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탄생 149주년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화환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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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권이 역사 왜곡을 무릅쓰면서까지 이승만을 미화한 일은 탈냉전 시기의 이승만 재평가 움직임과 맥락을 같이하는 측면이 있다. 4·19혁명으로 추락한 이승만의 위상이 탈냉전과 제1차 북핵위기를 계기로 일정 정도 되살아난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탈냉전 시기에 한반도에서는 문익환 목사 등이 김일성과 회담하고(1989.3.27.) 전대협 대표 임수경이 평양을 방문하고(6.30.) 노태우 정권이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1991.12.13.)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제안(1993.2.25.)하는 등의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을 받던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1993.3.13.)하면서 한반도는 탈냉전과 어울리지 않는 제1차 북핵위기에 휘말렸다. 이로 인한 한반도 긴장은 1994년 상반기에 다소 누그러졌다.
탈냉전으로 한국인들의 의식이 변하는 가운데서, 커질 것 같던 북핵위기가 더 크게 확산되지 않은 상황은 냉전시대 주역인 반공세력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는 그들이 독재자이자 반공주의자인 이승만에 대한 그리움에 빠지는 원인이 됐다. 4·19혁명 이후 숨죽였던 이승만 지지자들이 노골적으로 이승만을 미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시기에 친일군인 백선엽과 반공검사 오제도 등을 규합해 긴급모임(1994.2.4.)을 갖는 등의 움직임을 보인 반공주의자 이철승(1922~2016)은 1994년 3월 13일 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여야 정치인 할 것 없이 전범의 테러리스트인 김일성을 못 만나 안달을" 하는 상황을 비판하면서 "건국의 지도자 이승만 대통령"을 거론했다.
1994년 6월 15일 지미 카터(1924~2024) 전 대통령의 방북은 북핵위기를 새로운 국면으로 진전시켰다. 북·미 양국은 그해 10월 21일 제네바합의를 체결하고 위기를 봉합했다. 카터의 방북은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 합의(6.18.)라는 뜻밖의 성과도 낳았다. 탈냉전의 훈풍이 한반도 냉전을 동요시킬 가능성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자 반공세력의 행보가 더욱 빨라졌다. 그해 6월 30일의 일이 다음 날 <조선일보>에 이렇게 보도됐다.
"30일 정오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우남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활성화를 위한 모임이 각계 인사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이 기념사업회는 70년대 초반에 조직됐지만 그동안 활동이 지지부진해오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의 국가 기반을 닦은 위인을 푸대접해서는 안 된다'는 원로들의 의견이 높아지자 활성화를 위한 모임을 갖게 된 것이다."
8개월 뒤에는 조선일보사도 이승만 미화에 나섰다. 1995년 2월 8일 자 <조선일보> 사설은 "조선일보의 '이승만과 나라 세우기'전(展)이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다"라며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이 그의 사후 30여 년 만에 처음 역사적인 조명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한 뒤 "광복 50년 동안의 대한민국 정통성 확립사(史)를 분명히" 하는 것이 이벤트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탈냉전을 단속하고 반공세력 나름의 국가 정통성을 정비하려는 기획에서 이승만 미화 작업이 일어났던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몰락하지 않았다면

▲2023년 3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반공세력은 말로는 언제라도 북한을 때려눕힐 듯 말하지만, 실상은 대체로 수세적이었다. 전쟁을 일으킨 쪽도 북한이고, 무장공비를 주로 파견한 쪽도 북한이다. 반공정권들의 반공은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거리두기'에 불과했다. 반공정권들이 주로 압박한 대상은 남한 대중과 진보세력이다. 반공세력은 이들에 대해서는 거리두기를 하지 않았다. 반공정권들의 주된 표적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었다.
윤석열 정권이 계승한 반공정책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에 드론을 띄웠던 윤 정권이 국민을 상대로는 군대까지 동원했다. 윤석열의 반공정책도 실상은 북한이 아니라 국민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런 윤 정권이 불러들인 유령이 이승만이다. 1990년대 반공세력이 반공체제를 지키고자 이승만을 소환했듯 윤 정권 역시 반공정책을 목표로 이승만을 소환했다.
정치지도자에 대한 미화 혹은 우상화는 대부분의 경우에 역사 왜곡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승만을 앞세운 윤석열의 반공정책도 마찬가지다. 이승만을 미화하려면, 그의 분단정책, 불법 계엄, 불법 개헌, 선거부정, 민간인 학살, 친일청산 방해 등을 은폐하거나 재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승만 미화에 앞장선 박민식은 '공과 과를 고루 보자'며 이승만을 유공자로 둔갑시켰다. 윤석열이 임명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김광동은 이승만 시기의 민간인 학살을 합리화하고 북한군에 의한 학살을 부각시켰다.
윤 정권이 몰락하지 않았다면, 이승만을 몰아낸 4·19도 재평가될 수밖에 없고, 4·19가 재평가되면 이를 계승하는 부마항쟁·광주항쟁·6월항쟁·촛불혁명에 대한 평가도 뒤집힐 수밖에 없다. 이는 4·19에 의해 계승된 독립운동-3·1운동-동학혁명 등에 대한 해석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윤 정권이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착공했다면, 한국 근현대사는 아주 엉망이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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