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 2024년 6월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22대 국회에서 반드시 제정되어야할 차별금지법에 담겨야할 원칙과 방향 발표 기자회견'을 연 모습.
이정민
그의 이름을 <오마이뉴스>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봤습니다.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화재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대리인, <조선일보> 본사 앞에서 고 장자연씨 죽음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를 요구했던 민변 여성인권위원장, 2017년 대전성폭력피해청소녀 사망사건 유족 대리인, n번방 성착취 사건의 공동대책위원회 피해자 변호인단,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민·관·군 합동위원회 분과위원장, '윤석열 방어권 보장' 권고 안건 의결에 반대했던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등등. 일관된 삶의 궤적이 보였습니다.
더불어 그가 지난 18일 인사청문회 준비 집무실로 첫 출근을 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을 들으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황당하게도 '부처 해체'를 목표로 했던 김현숙 전 장관, 그리고 1년 6개월 간의 공석을 끝으로 3년 3개월 만에 여성가족부의 업무를 제대로 해낼 장관이 왔다고 느꼈습니다.
"지난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이슈 속에서 부처 위상과 정책이 많이 위축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성평등가족부 확대 개편을 통해 성평등 정책 총괄 조정과 성평등 거버넌스 기능 강화, 부처 위상과 정책을 확대 강화하는 힘 있는 성평등가족부를 만드는 것이 가장 우선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교제폭력과 디지털 성폭력, 성매매와 같은 폭력 문제, 여성 경제활동 참여 및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 해소 위기, 취약가족과 청소년에 대한 보다 두터운 지원 체계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 고무적이었던 부분은 차별금지법 추진에 대한 그의 의견이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불합리한 차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사회적 약자의 빈곤을 보호할 구제 수단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과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법 제정에 대한 이해가 달라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향후 다양한 주체들이 서로 의견을 경청하고 종합적으로 논의하는 토론의 장이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그동안 차별 시정과 해소를 위해 노력해 왔던 국가인권위원회와 적극 협력해 나가고자 합니다."
기자가 "차별금지법은 대통령 포함해서 국무위원들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유보적인 태도인데, 제정이 시급하다고 보느냐"라고 재차 질문하자 원 후보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가운데 본인의 행복감이 증진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고 하는 헌법적 가치에서 저희가 다시 한번 그 부분을 논의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원 후보자는 "필요성과 의미가 매우 크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협력해 나가겠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에서 논의하면 좋겠다"라며 차별금지법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도 차별금지법은 '사회적 합의'라는 레토릭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논란이 있기 때문에 추진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죠. 국회의원 개개인은 찬성하거나 그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정부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원민경 후보자는 '필요하기 때문에' 논의를 시작하자는 말을 했습니다. '새로운 장'을 연 것입니다. 가슴이 괜스레 찡했습니다.
원 후보자는 비동의강간법(강간죄 개정)에 대해서도 "현행 형법상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성폭력의 판단 기준을 기본권의 측면으로 보고자 하는 논의로 알고 있다"라며 "일본에서도 오랜 사회적 토론 과정을 통해서 입법이 되었다. 반대 의견과 현장 전문가, 당사자, 관계 부처인 법무부와 다양한 의견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 최선의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밖에 생활동반자법 추진, 여성의 건강권(임신 중지 보장) 보장, 청년 세대의 젠더 인식 격차 해소 등의 의제에 대해서도 앞으로 사회적인 논의를 진전시켜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계속된 여성가족부 위기를 헤쳐나가려면
여성가족부는 폐지 위기를 넘기고 성평등가족부로의 확대 개편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티 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청년 남성들의 주요 공격 대상은 '페미니즘'이며, 정부 부처중에서는 여성 차별과 폭력에 대응하는 '여성가족부'이기 때문입니다.

▲〈시사IN〉·한국리서치 '6·3 대선 이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에서 "지나친 페미니즘의 영향을 막기 위해서라면 법규칙을 어기거나 무력을 사용하는 게 정당화될 수 있다"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표
한국리서치
정훈님, 놀라지 마세요. 〈시사IN〉·한국리서치 '6·3 대선 이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1]에선 "지나친 페미니즘의 영향을 막기 위해서라면 법규칙을 어기거나 무력을 사용하는 게 정당화될 수 있다"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20대 남성은 23%(매우 동의함 12%, 동의하는 편 11%)가, 30대 남성은 24%(매우 동의함 10% 동의하는 편 14%)가 "동의한다"라고 답했습니다. 전체 평균은 찬성이 11%에 불과하고, '페미니즘'의 정의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벨 훅스)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섬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차별 금지, 혐오 철폐'를 정부가 추진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답변이 20대 남성은 29%, 30대 남성은 21%나 됐습니다. ('추진해서는 안 된다' 전체 평균은 12%)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질문에서도 반대한다는 답변이 20대 남성 51%, 30대 남성 53%로 과반을 넘겼습니다. 전체 평균을 살펴봤을 때 차별금지법 찬성 여론이 61%, 반대 29%라는 걸 감안한다면 2030 남성의 반대 비율이 너무나 높습니다. 또한 고위공직자 여성 할당제에 대한 질문에선 20대 남성 13%, 30대 남성 19%만이 찬성(전체 평균은 찬성 45%)할 뿐이었습니다.
이는 앞으로 성평등가족부가 추진하는 반 성차별, 반 성폭력 정책에 대해서 청년 남성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안티 페미니즘의 목소리에 휘둘리다 보면, 정작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정책을 실현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런 점에서 원민경 후보자가 장관이 된다면 매우 무거운 짐을 지게 될 것입니다. 혐오에 기반한 부당한 공격을 막아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동시에 청년·청소년들이 어떻게 성평등한 인식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차별과 혐오 선동을 '청년 남성들의 목소리'라며 정치적으로 승인해 주는 순간, '극우화'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윤석열 정부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그릇된 인식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선을 긋고, 군 복무나 '맨박스(남성을 둘러싼 성별고정관념)' 등 실질적으로 남성들의 불안과 어려움을 해소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이 더 필요합니다.
극우화 막기 위해선 '성평등' 정책 필요해

▲남성에게도 성평등 정책이 필요하다.
pixabay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책 <폭주하는 남성성>에서 "극우의 특징은 이데올로기적 일관성을 가진 총체적 세계관이 아니라 현존하는 권력 구조에서 다른 누구보다 자격을 갖춘 자신이 소외당했다는 울분으로 만들어진다"라고 진단하며, 박근혜 탄핵 이후 극우 세력이 결집시키려는 주요 타깃은 '청년 남성'이었고, 이들을 묶는 주요 정서는 '안티 페미니즘'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현상은 2030 남성들 대다수가 '극우화' 되었다기보다는 2030 남성 집단에서 '극우'의 의미와 영향력이 확장된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피해자 남성'의 정체성을 심고자 하는 극우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것이, 현 시점에서 2030 남성의 극우화를 막는 관건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재명 정부, 나아가 앞으로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자 남성'을 넘어서기 위해서, 여성가족부는 물론 범정부 차원에서 새로운 가족 모델과 '탈가부장적 남성성'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책 <광장 이후>를 통해 "2025년 현재 2030 남성들은 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생계부양자로서의 권능이 상실된 상황에서 전환기에 걸맞은 새로운 역할 모델을 부여받지 못했고, 스스로 찾지도 못했다"라고 진단합니다. 이어 "맞벌이 확산과 여성의 사회 진출, 안정적인 정규직 신화의 해체 등 노동시장이 빠르게 변화했으나, 남성에게 부과된 생계부양자로서의 전통적 성역할은 그 속도에 비례하여 빠르게 해체되지 못했다"라고 밝힙니다. 청년 남성들은 여전히 '가부장'이 되고 싶어 하지만, 노동시장이나 사회문화의 변화로 인해 그렇게 되지 못한 데서 오는 불안감과 혼란, 분노를 느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이성애-혼인 기반의 가족 제도는 청년 남성들에게 가부장 이외의 다른 남성 역할 모델을 상상하지 못하게 만들며, 삶이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걸 제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보편화시키는 일이, 남성들 스스로 느끼는 가부장제의 압박(맨박스)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정훈님도 동의하시나요?
또한 앞서도 말했지만, '고용, 재화 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 공공서비스의 제공·이용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혐오와 배제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시그널'이 될 것입니다. 주류 편입을 호시탐탐 노리며 청년 남성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극우 헤게모니'의 영향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꼭 필요한 것은 '성평등 교육(포괄적 성교육)' 확대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 등의 영향으로 그릇된 젠더 인식이 퍼져나가고, 딥페이크 성범죄 등으로 10대 여성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인권, 성인지감수성, 성평등한 관계 맺기 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시점에서도,윤석열 정부는 성교육 예산을 계속 삭감해 왔습니다. 지난 정부의 '퇴행'을 원 후보자가 하루빨리 되돌리기를 바랍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