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21 11:56최종 업데이트 25.08.2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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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에 실패한 직후의 윤석열이 그 다급한 상황에서도 지켜낸 것이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임명이다. 자유선진당 비례대표 국회의원(2008~2012년)을 지내고 2024년 10·16 서울시교육감보궐선거에 나서려다 불출마를 선언한 박선영 전 의원이 김광동 위원장의 후임으로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온 것은 비상계엄 나흘 전인 11월 29일이다.

당시 박선영 내정자는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2024년 12월 5일 페이스북에서 "파렴치한 범죄자들 처리를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나라가 이 모양"이라며 "국기를 문란하게 하는 자들이 판치는 대한민국, 청소 좀 하고 살자"라고 밝혔다.

이후 비상계엄 실패로 리더십이 땅에 추락한 상황에서도 윤석열은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다음 날인 12월 6일의 일이다.

진실화해위원장들의 자격을 묻는다

박선영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2024년 12월 17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서 열린 93차 위원회 회의 중 위원들의 비상계엄 등 관련된 논쟁이 이어지자 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진실화해위의 설치 근거인 과거사정리법 제1조는 이 기구가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는 곳이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지난 4월 22일의 진실화해위 제106차 전체위원회 회의에 관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선영은 1950년 12월 5일경 전북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웃마재 토굴에 숨어 있다가 국군 제11사단이 던진 수류탄에 희생된 71세 및 67세 주민의 죽음이 '불법 학살'이 아니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두 주민은 토굴 밖으로 나오라는 군인들의 경고를 2회 받았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혀 나가지 못했다. 이때 박선영은 '나오면 살려준다고 경고했다'는 점을 근거로 수류탄 투척의 불법성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국민 생명을 최우선시하는 것을 국가와 군대의 책무로 인식한다면, 이런 판단을 하기 힘들지 않을까.

한국 현대사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다. 그런데 다른 국가기관장도 아니고 진실화해위원장이 인권과 민주를 억압 당한 쪽을 홀대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를 무시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진실화해위원장과 어울리지 않는 생명관(觀)과 업무처리 방식은 윤석열이 임명한 전임자인 김광동 전 진실화해위원장에게서도 나타났다. 김광동은 최대 3만 명이 학살 당한 제주 4·3항쟁의 책임을 미군정과 서북청년단이 아닌 제주도민 유격대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그는 2014년 4월호 <한국논단>에 실린 '제주 4·3폭동은 반한·반미·반유엔·친공 투쟁'이라는 글에서 "무장유격대는 군경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판단한 양민들과, 유격대에 협조하지 않거나 지원을 거부하는 자를 대상으로 학살과 방화를 자행했다"라며 학살 책임을 제주도민 유격대에 전가했다.

그는 5·18 광주 학살과 관련해서는 '북한 개입설'을 주장했다. 대한민국이 책임져야 할 것을 제주도민들의 책임으로 돌리고 북한의 책임으로 돌린 것이다. 진실화해위원장은 국가가 국민에게 무릎 꿇게 만드는 직책이다. 그런데 윤석열은 이 자리에 맞지 않는 인물들만 골라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추락

2024년 10월 25일 당시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행정안전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인사혁신처, 경찰청, 소방청에 대한 종합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유성호

김광동의 취임은 진실화해위가 현대사를 이상하게 해석하며 파행으로 달려가는 시발탄이 됐다. 진실화해위가 엉뚱한 기구가 되고 있다는 점은 그가 2023년 10월 10일 경북 영천 국민보도연맹 학살 피해자 유족들에게 했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그날 김광동은 이승만 반대파로 몰려 감시 대상이 됐다가 학살당한 보도연맹 희생자의 유족들을 만났다. 김만덕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영천유족회장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김광동은 '재판도 할 수 없고 법으로 다스릴 수도 없는 전시 상황에서는 방화와 살인을 한 적색분자와 빨갱이를 군인과 경찰이 죽일 수도 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한국전쟁 중의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 사건 중 하나인 노근리 사건도 불법·위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5월 28일 진실화해위 전체회의에서 노근리 학살을 "전쟁 중 부수적 피해"로 평가절하했다. 점령군사령관의 입에서도 나오기 힘든 발언이 진실화해위원장의 입에서 서슴없이 나온 것이다.

진실화해위를 망가트리는 일은 김광동의 하급자들에게서도 나타났다. 국정원 대공수사처장 출신인 황인수 진실화해위 조사1국장이 대표적인 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23년 10월 5일의 직원 교육에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과 적대세력 사건의 비율을 억지로라도 맞추라'는 취지의 주문을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서도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으므로 이 역시 당연히 규명 대상이다. 하지만 남한 군경에 의한 학살과 북한군에 의한 학살에 대해 똑같은 에너지를 투입하면, 신속하고 제대로 된 진실 규명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진실화해위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달 15일까지 조사1국에 배정된 1만 7135건 가운데, 남한 군경에 의한 학살은 1만 195건이고 미군에 의한 학살은 219건이다. 현재의 제2기 진실화해위는 미군에 의한 학살을 '역사적 중요 사건'이라는 모호한 명칭으로 표시한다. 그리고 북한군 등에 의한 것은 4096건이다. 항일독립 및 해외동포 관련은 131건, 기타는 2494건이다.

북한군에 의한 학살도 적지 않지만, 남한 군경에 의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당연히, 후자 쪽에 더 많은 조사 인력을 투입해야 진실규명이 신속히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도 양쪽의 균형을 맞추라는 요구가 나온 것은 윤석열 정권하 진실화해위의 정치적 관점이 편향됐음을 보여준다. 국민의 관점이 아닌 국가권력의 관점에서 민간인 학살을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땅의 역사를 왜곡한 윤석열 정권

지난 2024년 12월 17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진실화해위) 앞에서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주최로 ‘박선영 진실화해위 위원장 퇴진 촉구'집회를 열고 있다.연합뉴스

과거사정리법 제2조는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을 해야 할 대상으로 항일독립운동가들의 피해, 주권을 지키고 국력을 신장시키고자 했던 해외동포들의 피해,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피해, 권위주의 정권 시기의 인권침해, 적대세력에 의한 인권침해 등을 열거했다.

이런 피해를 당하는 쪽은 민중들이다. 진실화해위는 이들의 입장에서 과거사를 규명해야 한다. 이 땅 민중을 괴롭힌 국가권력이 있다면, 그것이 어느 국가권력이든 진실화해위는 그 권력의 반대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 제2조에서 확인된다. 이 같은 역사 인식이 진실화해위의 분기별 보고서에 반영돼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국가 공권력의 입장에 서서 반공과 색깔론의 시각으로 과거사를 바라봤다. '경고를 듣지 않았으므로, 전시 상황이므로, 불순한 사상을 가졌으므로 학살을 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말이 나오고, '국군에 의한 학살과 적대세력에 의한 학살의 숫자를 맞추라'는 식의 말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의 진실화해위가 설립 취지를 도외시하고 엉뚱한 기구로 변질됐음을 보여주는 발언들이 아닐까.

중국과 일본이 한국 왕조들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문제지만, 대한민국 국가권력이 이 땅 민중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잘못이다. 윤석열 정권의 진실화해위원회는 민중의 관점에서 민간인 피해 역사를 조사해야 할 책무를 방기했다. 국민의 시각으로 과거사를 봐야 할 기구가 공권력의 검은 색안경을 끼고 과거사를 재단하고 훼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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