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자별 온열질환 예방 메뉴얼의 ‘고령층 논밭 작업자’ 대상 온열질환 예방 건강수칙질병관리청(2025). 대상자별 온열질환 예방 메뉴얼의 ‘고령층 논밭 작업자’ 대상 온열질환 예방 건강수칙(pp.6)
질병관리청
'근로감독관'을 파견하고, 관리해서 규제되는 사업장이라면 효과를 기대해 볼 만도 하다. 그러나 실내노동과 거리가 먼 노동환경이라면 대책이 효과를 발휘할 리 만무하다. 인구 감소의 시대, 한국의 지방은 정규직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서울 수도권에 빼앗긴 채, '노동'으로 규정되지 못하는 노동을 통해 지역 경제를 견인해 왔다. 문제는 노지의 농업노동에 냉방설비가 가능할 리 없다는 데 있다.
고령 농업인들이 갑작스레 노동 습관을 바꾸며 스스로 2시간에 20분 휴식을 하기도 곤란한 노릇이다. 고용노동부는 외국인이 다수 근무하는 사업장을 점검한다는 말도 덧붙였으나, 이미 한국의 농촌은 국가의 '미등록 노동자' 단속으로 인권과 경제, 모든 부분에서 피해를 겪었다. 원인이 겹친 결과 한국의 농촌노동을 사실상 견인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폭염 속, 취약성의 사각지대가 겹친 환경 아래로 내몰린다.
이뿐일까, 질병관리청은 이번 재난 앞에서도 '예방 수칙'을 거듭 강조하는 중이다. 올해는 특별히 '대상자별 온열질환 예방 매뉴얼'을 개발했다며, 질병관리청 누리집에서 "누구나 손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관련 자료 :
장애인 온열질환 예방 건강수칙을 포함한 「대상자별 온열질환 예방 매뉴얼」 개정(7.24.목)). 그러나 질병관리청이 '대상자별'로 맞춤형 대책을 추진한다 한들, 인터넷 홈페이지 접속은 고령의 농민, 그리고 장애인과 보호자에게 결코 '손쉽지' 않다. "누구나 손쉽게"라는 말에 담긴, '누구나'가 누구인지 의심하는 까닭이다.
위기 앞에서
위기는 정치공동체를 통해 '위기'로 규정될 때 비로소 위기가 된다. 그리고 이 '위기'를 규정하게 만드는 권력이야말로, 그동안 주민들을 '재난 무대책' 속에 놓아둔 원인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며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도쿄대 대학원과 도쿄도가 공동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에어컨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아 사망에 이른 사례가 도쿄 23구에서 213건 발생했고, 이 중 약 80%는 혼자 사는 사람이나 고령자 가구였다. 에어컨의 설정이 '냉방'이 아닌 '난방'으로 되어 있거나, 리모컨의 배터리가 방전된 사례 등이다. 두 기관이 2013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10여년을 조사한 결과다 (관련 기사:
日 마이니치신문 7월 27일자 보도).
"강화된 취약함은 오랜 착취의 결과다. Enhanced vulnerability is the legacy of centuries of bleeding."
기후위기를 오랫동안 다뤄온 스웨덴의 학자 안드레아스 말름은 그의 2021년 저작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불평등에 시달려 온 지역 주민들이 기후위기의 영향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되고, 대책에서마저 소외되는 현상은 말름의 문장을 닮았다.
한국의 기후위기는 국가가 상상하는 방식대로 찾아오지 않는다.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대책에서도 소외되는 자리에서 주민의 삶을 억압한다. 그리하여 이 위기 앞에서, 대책을 말하는 관점을 의심한다. '재난 대책'이, 그 재난의 원인을 닮아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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