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19 15:13최종 업데이트 25.08.1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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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날씨는 농어촌 주민들에게 유난히 가혹했다. 날씨가 따뜻해져야 할 5월에는 산간지방에 서리가 내렸고, 직전인 4월에는 '봄 폭설'이 찾아왔다. 6월에는 이른 더위가 반짝하더니, 7월에는 하늘 뚫린 폭우가 내리며 농업 재난을 야기했다.

자연과 더불어 노동하는 현장, 농어업 분야에서 기후 위기를 체감한 시기가 하루이틀 일은 아니었지만 올해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영농 현장 곳곳에서는 봄철 수분을 해야 할 벌이 집단 폐사하는가 하면, 사과나무에는 꽃눈 대신 잎눈이 앉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추운 시기, 북부 동해안의 식탁과 경제를 책임지는 도루묵은 씨가 말랐다. 어민들은 그물에 걸려오는 복어와 해파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기의 의미

지역 주민들, 그리고 농어민이 겪는 위기는 오랜 기간 '사회적 위기'로 인정받지 못해 왔다. 고랭지에 기후위기가 다가오며 감자 생산량이 급감했을 때, 배추밭에 역병이 돌아 수확할 배추가 없었을 때. 이 위기는 주로 '금감자,' '금배추'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등장했다. 철저히 도심 소비자 위치의 명명이다.

반면 농민이 겪는 수확량 급감, 생계 곤란의 위기는 호명조차 드물다. 위기는 언제나 어떠한 입장에서의 명명이기에, 위기가 '위기'로 규정되는 방식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그리고 주민이 겪는 위기의 상당 부분은 그 흔한 '재난안전대책본부'조차 차려지지 않는, 사회적 무관심 속에 있었다.

도심 대학병원 전공의 이탈로 발생한 위기는 금세 '위기'로 규정됐지만, 주민이 오래 겪어온 불평등은 오랜 기간 무관심 속에 방치됐다. 줄어드는 인구와 늘어가는 빈 집, 농촌의 '돌봄 위기'가 오랜 기간 진행중이었어도, 이 '위기'조차 수도권 인구를 위협할 때가 돼서야 '위기'로 의제에 올랐다.

'폭염 재난'이 연일 화두로 오르는 시대, 이 재난이 '위기'로 규정되는 방식 역시 다르지 않다. 이미 농어촌 주민들에게 '폭염 재난'은 오래 전부터 삶을 위협하는 위기였다. 그리고 이 위기는 도시민들이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흔히 '냉방비 지원' 혹은, '폭염시 휴식' 등을 효과적인 폭염 재난 대응법으로 생각하지만, 그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탓이다.

폭염이 계속된 8일 경북 고령군 다산면 한 밭에서 농민이 잡초 뽑는 작업을 하다 땀을 닦아내고 있다. 2025.7.8연합뉴스

지역의 '폭염 위기'라고 하면, 흔히 뙤약볕 아래 농업을 하다 쓰러지는 고령 농업인, 혹은 냉방비가 없어 고온에 노출된 주민들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뿐일까, 고령화되는 지역, 돌볼 이 없는 지역 환경에서 상당수의 고령 주민들은 에어컨을 켜지도 못한 채 고통 받는다.

도심 중산층 관점에서야 에어컨을 켜는 일은 버튼 한 번으로 해결될 문제지만, 관점을 바꿔 보면 버튼을 누르고, 적절한 사용 방식을 선택하는 일에도 '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능력'은 도심의, 충분한 문해력을 가진 사람 관점에서 설계돼 있다.

주민들이 냉방비를 지원받더라도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때로는 설치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해 고통받는 이유다. 그동안 날씨가 선선해 굳이 에어컨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던 지역의 고령층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러한 지역의 주민 상당수는, 마땅한 산업이 없는 지역 환경에서 소규모 농어업에 종사한다.

구체적인 정부 대책으로 들어서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폭염 재난'이 이어지자 고용노동부는 '폭우·폭염 재해 예방 및 노동자 안전과 생명 보호'에 신경 써 달라며, '안전수칙'을 강조하고 나섰다(관련 자료 : 고용노동부 차관, 폭우·폭염 재해 예방 및 노동자 안전과 생명 보호 최우선 당부). 폭염 시에는 2시간마다 20분씩 쉬어야 한다는, '예방수칙'과 '적극적인 대응'을 당부하는 풍경도 이어졌다. 지난해도, 그리고 그 이전 해에도 반복된 장면이다.

대상자별 온열질환 예방 메뉴얼의 ‘고령층 논밭 작업자’ 대상 온열질환 예방 건강수칙질병관리청(2025). 대상자별 온열질환 예방 메뉴얼의 ‘고령층 논밭 작업자’ 대상 온열질환 예방 건강수칙(pp.6)질병관리청

'근로감독관'을 파견하고, 관리해서 규제되는 사업장이라면 효과를 기대해 볼 만도 하다. 그러나 실내노동과 거리가 먼 노동환경이라면 대책이 효과를 발휘할 리 만무하다. 인구 감소의 시대, 한국의 지방은 정규직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서울 수도권에 빼앗긴 채, '노동'으로 규정되지 못하는 노동을 통해 지역 경제를 견인해 왔다. 문제는 노지의 농업노동에 냉방설비가 가능할 리 없다는 데 있다.

고령 농업인들이 갑작스레 노동 습관을 바꾸며 스스로 2시간에 20분 휴식을 하기도 곤란한 노릇이다. 고용노동부는 외국인이 다수 근무하는 사업장을 점검한다는 말도 덧붙였으나, 이미 한국의 농촌은 국가의 '미등록 노동자' 단속으로 인권과 경제, 모든 부분에서 피해를 겪었다. 원인이 겹친 결과 한국의 농촌노동을 사실상 견인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폭염 속, 취약성의 사각지대가 겹친 환경 아래로 내몰린다.

이뿐일까, 질병관리청은 이번 재난 앞에서도 '예방 수칙'을 거듭 강조하는 중이다. 올해는 특별히 '대상자별 온열질환 예방 매뉴얼'을 개발했다며, 질병관리청 누리집에서 "누구나 손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관련 자료 : 장애인 온열질환 예방 건강수칙을 포함한 「대상자별 온열질환 예방 매뉴얼」 개정(7.24.목)). 그러나 질병관리청이 '대상자별'로 맞춤형 대책을 추진한다 한들, 인터넷 홈페이지 접속은 고령의 농민, 그리고 장애인과 보호자에게 결코 '손쉽지' 않다. "누구나 손쉽게"라는 말에 담긴, '누구나'가 누구인지 의심하는 까닭이다.

위기 앞에서

위기는 정치공동체를 통해 '위기'로 규정될 때 비로소 위기가 된다. 그리고 이 '위기'를 규정하게 만드는 권력이야말로, 그동안 주민들을 '재난 무대책' 속에 놓아둔 원인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며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도쿄대 대학원과 도쿄도가 공동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에어컨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아 사망에 이른 사례가 도쿄 23구에서 213건 발생했고, 이 중 약 80%는 혼자 사는 사람이나 고령자 가구였다. 에어컨의 설정이 '냉방'이 아닌 '난방'으로 되어 있거나, 리모컨의 배터리가 방전된 사례 등이다. 두 기관이 2013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10여년을 조사한 결과다 (관련 기사: 日 마이니치신문 7월 27일자 보도).

"강화된 취약함은 오랜 착취의 결과다. Enhanced vulnerability is the legacy of centuries of bleeding."

기후위기를 오랫동안 다뤄온 스웨덴의 학자 안드레아스 말름은 그의 2021년 저작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불평등에 시달려 온 지역 주민들이 기후위기의 영향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되고, 대책에서마저 소외되는 현상은 말름의 문장을 닮았다.

한국의 기후위기는 국가가 상상하는 방식대로 찾아오지 않는다.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대책에서도 소외되는 자리에서 주민의 삶을 억압한다. 그리하여 이 위기 앞에서, 대책을 말하는 관점을 의심한다. '재난 대책'이, 그 재난의 원인을 닮아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HSC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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