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4일, 지방의회 해외연수 문제를 취재하는 KBS 기자와 뉴질랜드 로토루아 시의회 마크 굴드 의원 인터뷰
KBS 유튜브
대표적인 사례가 뉴질랜드 로토루아 시의회를 들 수 있다. 로토루아는 화산, 온천, 마오리족 문화로 유명한 관광지로, 로토루아 시의회 방문은 호주·뉴질랜드 해외연수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일정이다. 2019년, KBS뉴스에서 로토루아 시의회 의원을 인터뷰했는데, 그는 "한국 지방의원들을 1년에 30번씩 만난다"며 "(한국 지방의회 의원들이) 우리 의회가 건강이나 복지 문제에 관여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우리는 전혀 안 합니다. 실업, 질병, 연금에 대해서도 물어보는 데 우리는 그런 부분은 담당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해당 지역의 실제 현황을 모른 채, 관광지를 방문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기관 방문 일정을 더하다 보니 이런 우스운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계획서에는 '관계자 면담' 등의 일정을 기재해 두고, 실제로는 관계자와의 만남 없이 보고서 작성을 위한 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심사를 받을 때도 관계자 면담으로만 적어놓고,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나겠다는지는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해외연수 추진 과정에서 여행사와의 유착 문제도 심각하다. 공개입찰을 해야 하지만 의원들이 알고 있는 인맥들을 통해 수의계약을 맺는 사례가 많다. 출장 이후 제출된 보고서의 부실함도 심각한 문제다. 인터넷 글을 짜깁기하거나 심지어 이전 보고서를 그대로 옮겨붙인 사례가 빈번하다. 실제로 의원이 아닌 동행한 직원들이 보고서를 대필하거나, 출장을 담당한 여행사가 비용을 받고 작성해주는 관행도 존재한다. 여행사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의원들이 각자 소감을 한 페이지 정도 작성하고, 직원들이 전체 보고서를 편집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런 문제 모두 해외연수가 '단체 여행'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의원과 직원들까지 십수 명이 함께 움직이는 단체여행이니 여행사를 끼게 되고, 여행사의 이윤을 남겨야 하니 예산을 짜고 집행할 때 허위 청구를 불사하게 되고, 정말 의욕이 있는 의원은 가고 싶은 곳을 방문하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유명무실한 공무국외여행심사위원회
이런 외유성 출장을 걸러내야 할 공무국외출장심사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도 큰 문제다. 지방의회마다 심사위원회가 있지만, 심사위원회 회의에서 계획의 문제를 지적하더라도, 출장 자체는 의결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권익위 발표에 따르면 의원이 심사위에 참여해 동료 의원의 출장을 심사하거나, 심지어 자기 출장을 자신이 심사한 경우도 79건이나 된다고 한다.
실제로 한 기초의회 공무국외여행심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심사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토로하기도 했다. 여행 바로 한 달 전에 회의를 잡고, 자료를 주면서 검토를 요청하면, 관광 일정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니냐고 지적을 하더라도 이미 비행기표를 예약해서 일정을 바꾸기 어렵다, 다음번에는 더 잘하겠다고 답변하며 그때그때 모면하려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연수 자체를 가지 말라고 할 수는 있어도, 세부 일정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긴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위원회 내에서도 의견을 정리하기가 쉽지가 않다.
특히 문제적인 것은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바로 며칠 전, 해당 의회에서 10월에 공무국외여행을 갈 예정이니 심사위원회를 열겠다고 연락이 왔다. 권익위 실태점검 결과 경찰서에 수사 의뢰가 된 의회임에도, 그런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위원에게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에서, 위원들이 지방의회에서 제출하는 자료를 아무리 꼼꼼하게 살펴보더라도 제대로 심사를 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지방의회 단체연수 폐지하고, 공모제로 전환해야

▲2022년 6월 7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의회에서 직원들이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경기도의회 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해당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연합뉴스
이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갈 수 있으니까 가는 해외연수가 아니라, 정말 가고 싶어 하고, 배움의 의지가 있는 의원들에게 지원하는 해외연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해외연수 제도가 본래 목적인 정책 학습과 역량 강화의 기회로 제대로 활용될 수 있다.
이제는 기존의 의회 단위 단체연수를 폐지하고, 행정안전부, 또는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다른 기구가 주관하는 공모제 연수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지금처럼 각 지방의회별로 따로 운영하는 방식은 중복과 낭비, 외유의 악순환을 초래할 뿐이다. 전국 지방의원을 대상으로 연수 계획 공모를 실시하고, 심사를 통해 선발된 의원들에게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고, 연수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다.
이때 테마별, 전문분야 별 그룹을 구성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사실 같은 지역의 의원들끼리만 연수를 가야할 이유는 없다. 환경 정책에 관심이 있는 의원들, 복지정책 전문가들, 도시계획 관련 상임위 위원들끼리 각각 그룹을 이뤄 연수를 가거나, 유사한 인문지리 환경을 공유하는 권역의 의원들이 힘을 모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신뢰 회복 위해 해외연수 문제 해결해야
지방의회 해외연수 문제는 단순한 예산 낭비를 넘어 지방자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다. 가뜩이나 지방의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대다수 의회에서 외유성 관광도 모자라 항공료를 조작해 예산을 부풀리고, 부정 집행했다는 것은 지방의회 30년의 성과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일이나 다름 없다. 이제는 정말로 제도의 존폐 자체를 논해야 할 상황이다.
무엇보다 투명성 확보가 급선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수사 의뢰 대상과 감사 대상 의회, 구체적인 위반 내역과 관련 의원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 지방의회들 역시 계속 감추고, 미루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잘못을 드러내고, 오남용한 예산을 자진 반납하며,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눈치 보고 시간을 끌면서 버틸 수록, 지방의회에 대한 시민의 불신도 더욱 커져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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