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시끄러운 감정 이야기발달장애인이 본인의 감정을 알아채고, 발달장애인 조력자들도 자기 자신과 발달장애인 감정까지 알아챌 수 있는 워크북.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박정경 제주지부장이 글을 쓰고 누리리아트를 운영하는 장누리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장누리
-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나서 내게 일어난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무엇인지?
장: "내가 가진 미술 능력을 다른 장애 가족을 위해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개별화교육계획(IEP)협의회를 잘 하는 방법을 카드뉴스로 만들어 알렸더니 많은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연락을 주시더라. 많은 부모님들에게 방법을 나누고 면담도 했는데, 10명 중 한 명의 엄마는 실행으로 옮기기도 했다. 선생님들도 개별화교육계획 회의를 거쳐 자료를 만들고 싶어도 이런 과정을 아예 모르거나 장애 학생을 위해 참여하고 싶어도 요청조차 받지 못했다는 경우도 많았다.
온유를 돌보느라 풀타임 직업을 갖는 건 생각도 못 하고 있다. 남편이 출근할 때마다 미안하다고 하지만, 규칙적인 일을 못 하는 현실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은 그림 그리기와 통합 교육 두 가지 일만 하고 있다."
이: "누리님이 하는 이런 작업은 매우 귀하다. 실제 특수학급에서 모든 교육을 진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특수교사 혼자 모든 수정 자료를 만들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며 일반 교사가 참여하는 게 당연한 건데 이제야 이 부분이 이야기되기 시작됐다. 게다가 특수교육대상자는 학습뿐 아니라 사회성, 적응 등 모든 면에서 도움이 필요한데, 현장은 '학습'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특수교사의 일이 여러모로 과중되는 문제가 생긴다.
나의 경우는 아이의 자폐로 쉽지 않았지만 아이 자폐를 탐구하다 보니 특수교육 석사, 자폐 정서 행동 교육 박사학위를 받아서 여러 가족과 청소년들을 상담하고 있다."
- 무의도 두 분과 연대하면서 더 강해진 느낌이다. 부모들끼리 연대했던 경험, 연대의 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장: "2018년부터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했고, 이후 발달장애 부모들과 작은 카톡방으로부터 시작해 함께 도움 될만한 자료를 나누고 강의를 여는 '와이낫'(왜 안돼?) 모임을 만들었다. 21명의 부모님, 두 명의 전문가와 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 경기, 전북, 울산 등 각 지역에 계신, 개인이라고 하기에는 각 지역에서 장애 옹호 모임과 활동을 크게 하시는 분들이다.
와이낫 톡방에서 필요한 자료를 공유하고, 어려운 사안을 나누며 도움을 받기도 하며, 캠페인을 벌이거나 장애학생 학습권 옹호 활동을 함께 한다. 예를 들어 전남의 한 장애학생이 특수학교 입학을 거부당하고 재택 순회 교육만 받게 될 위기에 처했을 때, 각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할 때, 와이낫에서는 SNS에 해시태그 캠페인을 함께 벌여 교육청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
이: "얼마 전 양산 '오봉빌리지'라는 곳을 다녀왔다. 발달장애 부모들이 모여 아이들과 함께 꿀을 생산하고 지역과 통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곳이다. 이곳에 통합 돌봄 센터가 생길 예정인데, 비슷한 아이들이 모여 살면서 가족 외의 행정 네트워크, 지역사회가 함께 돌보는 구조를 만드는 거다. 발달장애인 자립에 있어서 학교는 인큐베이터 수준밖에 안 되고 특수학교도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성인 발달장애인 자립이라고 하더라도 노동과 생활만 지원하고 의료나 법체계는 빠져 있는 분절적인 상황이다. 부모가 없을 때의 대안은 없다. 그 대안을 마련하려고 부모들이 자조적으로 지역 활동과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는데 이런 건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장: "특수학교냐 통합 가능한 일반학교냐 고민들도 하는데, 특히 일반학교 안에서 비장애 아이들과의 '통합'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아이가 지역사회로 안전하게 나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학교 안에서도 지역사회와 어우러져서 하는 활동들이 꽤 많이 있다. 온유는 청소년 발달장애인 방과후활동서비스를 잘 이용하고 있는데, 체육으로 특화된 곳에서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활동이 나중에 직업이 될 수도 있고 문화생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자기 결정이 어려운 사람도 있으니, 모든 발달장애인이 사회에 완전히 통합 가능한 시스템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은 특수학교가 시설화되지 않아야 한다. 개념 정립을 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장애 당사자에게 돈과 자원을 주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시설도 형태를 전환해서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 앞으로 두 분의 계획은?
이: "곧 <발달과 경계>라는 책이 나온다.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상담했던 이야기와 내 아들 승기를 키운 경험을 합친 교육 상담 에세이다."
장: "<이토록 시끄러운 감정 이야기> 책 출간 이후 당사자, 그리고 당사자와 관련 있는 분들을 위한 워크숍을 열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력하는 이들이 먼저 자기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해해야 하지 않나. 발달장애인들이라고 느끼는 감정이 적거나 없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울 뿐, 발달장애인의 행동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감정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물론 비발달장애인까지 스스로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 책이다. 얼마 전 양산 워크숍에서 밀랍 점토로 수업을 했었다.
밀랍 점토는 완전히 굳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리구슬같이 딱딱해진다. 굳은 것 같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만, 손가락으로 아주 조금씩 힘을 주며 만지면 체온 온기로 다시 조금씩 말랑해진다. 발달장애인의 감정 이해도 이와 비슷하다. 끊임없는 따뜻함을 주면 말랑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상대방이 감정을 표현하는 시간에서 그 기준을 정하는 대신, 묵묵히 온기와 관심, 지지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이 책은 발달장애인과 함께 하는 사회적 공감 3부작 시리즈 중 두 번째다. (첫번째는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경계 존중 이야기>) 세번째 책 <관계 이야기(가제)>워크북에서도 그림을 그릴 예정이다."
▲딸 온유와 함께 외출한 장누리 작가
장누리
한국에서 장애아 양육은 부모가 '개별적으로 알아보고 연대하며' 고군분투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가 그만큼의 역할을 잘해주지 못해서다. 이런 정보 불균형 구조는 발달장애인, 성인으로 갈수록 더 심각해진다. 장애인 교육이라고 하면 '특수학교 교육'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미 대다수 발달장애학생들은 일반학교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장애학생들이 일반학급에서 제대로 된 개별화교육을 받을 수 있으려면 특수교사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지우고 있는 통합교육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새 정부의 교육부 장관이 얼마 전 지명됐다. 이경아 박사처럼 지역 내에서 힘들어하는 당사자, 가족, 학교 상담을 통해, 장누리 작가처럼 다른 부모와의 연대를 통해 '발달장애인과의 공존'을 삶으로 실현하려 하는 부모들이 외롭게 투쟁할 필요 없는 교육정책과 사회통합 정책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