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물난리를 겪으면서 곶자왈의 존재를 알게 됐다는 윤지의 곶자왈사람들 사무처장
신정임
"곶자왈에 탐방 올 때마다 나무들 사진을 찍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무슨 나무인지 계속 물었죠. 나무의 잎이나 겉껍질 보면서 특징들도 외우고요."
곶자왈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낼 수 없는 열정이었다. 그는 곶자왈은 갈 때마다 "자연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준다"면서 "마음을 정화시켜줘서 일이 아니어도 자주 간다"고 말했다.
변기, 냉장고까지 버려지고 있는 곶자왈을 지키기 위해
창립한 지 20년이나 됐으니 곶자왈사람들이 해온 활동도 많다. 그중 매달 빠지지 않은 활동이 모니터링이었다. 곶자왈 내 보호종 서식지를 조사해 생태계 보호 지역을 확대하기 위한 활동이다. 윤 처장이 모니터링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제주도에선 5년에 한 번씩 하는 생태계보전지구등급 지정이 중요한데 전수조사를 하지 않아요. 샘플이나 위성 조사로 대체하는데 제주고사리삼 같은 생물들은 위성으로 보이지 않아요. 그렇게 제대로 등급 반영이 안 돼서 개발 허가를 내줬다가 나중에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 지역에 멸종위기종 서식지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도 당장 생태계 등급을 바꾸거나 개발허가 취소가 안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죠. 그러니 저희가 만날 나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덧붙여 그는 영어교육도시, 자연체험파크, 에코랜드 등은 모두 도유지였던 곶자왈을 개발해서 만든 사업들이었다고 열을 냈다.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기 위한 법 등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이 있지만 제주도는 개발사업 앞에 도유지를 내주며 앞장서서 보호종 서식지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이지만 곶자왈사람들은 꿋꿋하게 곶자왈이 파괴되는 걸 막기 위한 감시활동도 이어왔다. 곶자왈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숲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불법으로 설치된 시설물은 없는지 등을 살핀다. 생태계보전지구등급이 1~2등급이면 사실상 개발 행위를 못 하기에 사유지 곶자왈에선 나무를 베어버리거나 땅을 파내는 등 등급을 낮추려는 불법행위들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쓰레기 무단 투기 문제도 심각하다. 햄버거 포장 봉지, 음료수 컵, 페인트통 같은 생활 쓰레기부터 변기, 냉장고 같은 대형폐기물까지 버려져 숲을 훼손하고 있다.
"그 땅에 스며든 빗물이 흐르고 흘러 우리가 먹는 지하수가 되기도 하니까 거기에 쓰레기가 있으면 우리가 오염된 물을 마시게 되는 거잖아요."
이를 막기 위해 불법 폐기물들을 수거해야 하는데 행정당국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면서 그는 아쉬워했다.
"우리가 쓰레기를 발견해서 신고하면 항상 기다려달라는 말만 해요. 인력과 예산이 없다고만 하는데 기다리기엔 치워야 하는 불법 폐기물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죠."

▲곶자왈은 쓰레기 투기, 불법 행위 등으로 계속 훼손되고 있다.
곶자왈사람들 제공

▲곶자왈사람들은 곶자왈의 훼손을 막기 위한 모니터링활동과 ‘곶자왈줍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곶자왈사람들 제공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곶자왈사람들이 먼저 나섰다.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해 쓰레기를 치우는 '곶자왈 줍깅' 활동을 올해 시도하고 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에요. 대형폐기물은 무거워서 둘셋이 마대자루를 잡고 들어야 하거든요. 산에 돌멩이가 울퉁불퉁 나와 있어서 넘어질 수도 있고 위험부담이 크죠. 숲이 우거져서 사람들이 잘 안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 활동을 해야 하나 진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쓰레기를 그냥 두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일단 시작했죠."
국민이 주인인 곶자왈 1·2·
3호
곶자왈사람들은 이와 같은 시민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그중 곶자왈국민신탁운동은 시민의 힘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을 활동이다. 모금과 기부, 증여 등 시민들과 함께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사유지 곶자왈을 매입해 특수법인인 자연환경국민신탁에 기탁해서 영구 보존시키고 있다.
"시민의 이름으로 마련한 기금으로 사면 개발로부터 대항력이 있고 우리 모두, 즉 국민이 주인인 땅이 되는 거죠. 그래서 완전히 보호될 수 있고요. 캠페인 때는 요즘처럼 집 한 채 사기 힘든 세상에 여러분의 땅이 생기는 거라고 말씀드려요."

▲곶자왈사람들은 곶자왈국민신탁 캠페인으로 국민이 주인인 곶자왈들을 늘려가고 있다.
곶자왈사람들 제공
'곶자왈 시민의 힘으로 지켜요' 모금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나무를 재활용한 모금함을 점포나 식당, 은행 등에 배치해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2014년과 2018년 화순과 청수곶자왈에 곶자왈 국민신탁지 1호와 2호를 마련했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올해도 화순곶자왈 근처에 국민신탁지 3호 후보지를 선정해 매입 모금 캠페인을 전개했다. 올해는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제주 오일장과 제주대학교를 비롯해 시내 곳곳에서 홍보활동을 벌여 곶자왈을 알리고 있다.
이처럼 시민들이 마음을 낸 참여가 가능한 건 곶자왈사람들이 곶자왈과 자연환경의 가치를 알리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덕분이다. 나무와 고사리, 꽃, 제주 숲 등 자연의 각 분야를 관찰하고 공부하는 곶자왈아카데미를 계속 열고, 탐사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진행해 왔다. 이러한 교육들을 통해 윤 처장 같은 시민 활동가들도 많이 양성했다.
"동백동산이 시민 활동가 양성 교육 때 자주 오는 교육 장소 중 한 곳이에요. 람사르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돼 있고 제주고사리삼이 유일하게 서식하는 곳이기도 해서요."
오기 전 찾아본 자료에선 동백동산을 남한 최대의 상록활엽수림지대로 설명하고 있었다. 동백나무가 많아서 동백동산이 됐지만 종가시나무·후박나무·비쭈기나무 등 난대성 나무들이 함께 자라 10여만 그루나 되는 동백나무가 많아 보이지 않는단다. 동백동산을 담은 영상에서 아름다운 습지도 봤는데 탐방 중 갑자기 비가 내려서 다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다. 그렇지만 하나는 알았다. 곶자왈에 와본 사람은 곶자왈을 지키고 싶을 거라는 것. 그래서 곶자왈사람들이 탐방 프로그램을 계속 마련하나 보다.
오직 곶자왈, 다른 데 눈 돌릴 수 없어요
(…)크게 보면 개발은 보존만큼 중요하다. 환경을 보존하는 개발은 또 하나의 보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므로 후손의 몫으로 돌려져야 한다.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짧은 시간에 가능하나, 그 회복은 장구한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주의 미래를 곶자왈 지대에서 찾고자 한다.
올해 2월 22일에 열린 곶자왈사람들 창립 20주년 기념식 '오로지 한 길, 오직 곶자왈'에서는 창립선언문을 함께 낭독했다. 아무것도 없지만 곶자왈을 보전하겠다는 마음만은 컸던 20년 전의 결의를 다시 다지며 첫 마음으로 돌아간 시간이었다.
▲오로지 곶자왈을 지키기 위해 달려온 20년이었다. 곶자왈사람들 창립 20주년 기념식 모습.
곶자왈사람들 제공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곶자왈사람들은 곶자왈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곶자왈의 생태적 가치를 알리고, 개발논리 앞에 곶자왈이 파괴되는 걸 막기 위해 애써왔다. 과정에서 한계가 있긴 하지만 곶자왈 보전 및 관리 조례와 함께 곶자왈 관련 행정체계를 만드는 데도 일조했다. 윤 처장은 "단체 이름에 활동방향이 명확히 드러나 있어서 다른 데 눈을 돌릴 수가 없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의 꿈은 곶자왈에서 아무 생각 없이 놀다만 가는 겁니다. '저 나무는 왜 꺾여 있지? 바닥엔 왜 이런 걸 깔았을까? 훼손된 곳은 없나' 예의주시하는 데 온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아이 자체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시절이 오면 좋겠습니다."
"제가 있을 때 될까요?" 목소리가 어두워지던 그가 "곶자왈이 제주도에서, 또 국가적으로 온전히 지켜지고 보호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제 꿈에 한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희망을 꿈꾸었다. 이 꿈이 윤지의의 꿈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꿈이 될 때 제주의 미래는 더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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