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는 한국 출신의 개발경제학자로 현재 런던대 SOAS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은 뒤, 같은 대학에서 오랫동안 강의와 연구 및 저술활동을 해왔다. 2003년에는 뮈르달상을, 2005년에는 레온티예프상을 수상해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주요 저서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국가의 역할’ 등이 있다.
본인제공
이창곤: "복지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나라 재정)은 기업의 세금을 낮춰 GDP 성장률을 높이는 경제성장을 통해 확보될 수 있다고들 많이 생각합니다."
장하준: "네, 그런 말씀하시는 분들한테 제가 하는 질문이 있어요. 만약 법인세가 낮은 게 좋은 거면 세계의 모든 기업이 파라과이로 가서 사업을 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까요? 그 나라는 법인세가 10%예요. 소득세도 최대 10%죠. 그런데도 안 가거든요. 치안이 불안하고, 노동자 교육도 잘 안 돼 있고 사회 간접자본도 잘 안 돼 있으니까요.
우리가 논해야 할 것은 세율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이만큼 세금을 내는데 정부가 그에 상응하는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느냐 입니다, 그리고 법인세라는 게 정부가 강탈해 가는 거 아니에요. 정부는 사회간접자본, 노동자 교육 등 여러 가지 기업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더해 유한책임제도, 특허 제도 등을 법으로 만들어 기업들이 이윤을 내도록 뒷받침하지요. 법인세는 이런 정부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내는 건데, 왜 그걸 그냥 정부가 세금을 걷어가 어디 갖다 태워버리는 거로 생각하는 걸까요? (기업이)노동자들을 고용하는데 그 노동자들의 기본적 교육은 국민 세금으로 낸 공공 교육으로 받은 거 아니에요? 그런 혜택은 왜 생각 안 해요?"
정승일: "이재명 정부가 기본사회를 주창하지만 우려스런 점은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복지 국가에 대한 논의가 안보여요. 아까 (교수님) 말씀처럼 삶의 질이 최악이라 애도 안 낳는데 이런 걸 해결하려면 세금을 더 걷어서 복지국가를 잘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간단 논리에 대한 사회적 토론조차 실종돼 버렸어요.
(다만, 이재명 정부는 '기본적 삶 보장으로 모두가 행복한 사회'란 이른바 '기본사회'를 거시적 비전으로 조만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실현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게 목표이며, '보편적 기본서비스 - UBS, 기본돌봄 등 조건없이 누구나 누리는 사회서비스-' 등이 핵심 실행 전략이다. 특히 국정기획위원회는 대통령 소속 기본사회위원회를 신설해 이런 비전과 전략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무 추진단 구성 등 세부 활동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하준: "복지국가 개념의 핵심은 누구나 겪는 생로병사, 실업 등에 대한 보험을 모든 사람들이 돈을 같이 내서 공동구매를 해서 걱정 없게 해주자는 것이죠. 저는 보편적 기본소득엔 반대지만, 보편적 기본서비스는 좋다고 봐요."
이창곤: "결론적으로 교수님은 대한민국에선 복지 늘리고 성장을 지향하더라도 혁신 성장, 기술 주도 성장을 해야 한다고 이해하면 됩니까?"
장하준: "북유럽을 보면 복지가 잘 돼 있었기에 혁신 성장을 더 잘할 수 있었어요. 노동자들이 잘려도 기본 생계가 보장되고 정부에서 재교육해주고 재취업시켜주니까 자동화나 기술 혁신에 대한 저항이 비교적 없는 거죠. 반면에 미국에서는 자동화로 직장 잘리면 의료보험도 없으니까 목숨을 걸고 저항을 하게 되고, 기술은 계속 낙후되었지요. 혁신성장을 위해서도 복지 국가 확대가 필요한 겁니다."
대부분의 국민은 주주 이전에, 노동자이자 소비자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한 관계자가 신생아를 돌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정승일: "혁신 성장도 그 자체가 국정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죠. 그렇다면 국정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지금 직면한 난제를 해결하는 건데 바로 삶의 질을 높이는 겁니다. 젊은이들이 출산을 안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노동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집에 가도 엄마나 아빠 중 누가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아무도 없고, 특히 둘 다 저임금으로 맞벌이를 하면 애 낳고 키우기가 더욱 힘들죠.
그러니 출산율 높이려면 임금 높이고 노동시간 단축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생산성 낮은 기업은 죽게 됩니다. 그런데도 그걸 반드시 해야만 삶의 질이 높아지고 출산율이 높아져서 이 나라가 100년 뒤에 사라지지 않고 지속될 거예요. 이를 위해 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이고 인공지능과 로봇도 과감하게 채용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 최대한 이윤이 생기면 사내 유보하고 그 돈으로 과감하게 재투자하는데 올인해도 모자라는 판인데, 지금 주주자본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하니 답답하지요."
장하준: "대주주들이 나쁜 짓을 하니 요즘 주주 권한 강화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은데, 저는 '그건 그거대로 잡아라'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런데 재벌을 잡아야 한다고 하면서 배당소득 분리과세하라는 등 슬쩍 금융자본과 부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건 국민에 대한 사기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국민의 3분의 1이 직접 주식 시장, 그것도 심지어 미국 선물 시장까지 투자하는, 국제적으로 예외적인 나라가 된 것도 복지국가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들은 너무 앞길이 안 보이고 미래가 암울하니까, 소위 정상적 방법으로 올라갈 길이 없으니까 주식과 코인을 해서 자기들의 처지를 바꿔보겠다고 투자를 합니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합니다만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몇 주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주주의 입장에서 세상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주주이지만 동시에 노동자이고 소비자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기업으로 하여금 주주에 유리한 일을 하게 만들면 당장에는 주주로서 소액의 이익을 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기 직장이 위험하고 자기 생활비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들로부터 최대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노동자들을 감원하고, 노동 조건을 힘들게 해야, 단기 이윤을 극대화해 이윤을 주주들한테 환원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로 인해 장기적으로 기업이 망하면 일자리는 더 줄어들죠.
국민은 이 점을 의식해야 돼요. 대부분의 국민은 주주이자 노동자이고 소비자란 말이에요. 자기 인생에서 주주로의 역할이 차지하는 부분은 10% 정도밖에 안 되고, 나머지 90%는 노동자이고 소비자인데, 그 10% 되는 주주의 역할에서 이익을 얻겠다고 주주권을 강화하는데 힘을 쓰고 있는데, 몇 년 지나면 나머지 90%에서 자기가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못 해요. 주주자본주의 담론에 말려들고 있기 때문이죠. 자칭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 논리에 말려들어 국민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투자와 혁신이 빠진 주주자본주의

▲독일 뮌헨의 한 애플 스토어의 모습.
AFP/연합뉴스
정승일: "중국의 화웨이는 비상장 기업입니다. 종업원들이 주식을 갖고 있고, 회사가 매출액의 거의 30% 이상을 신규 투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요즘 배당 더 많이 해라, 자사주 매입·소각해라 이런 식인데, 한국은 전기차가 중국에 이미 밀리기 시작했고, 2차전지도 시장 점유율이 5년 전에 비해 반으로 떨어졌어요. 반도체가 그나마 중국보다 나은데 5년 뒤엔 밀릴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하준: "그러니까 큰일이죠. 지금 투자를 더 늘려야 할 판인데 공공연하게 주주 환원율을 76%로 올려야 한다는 헛소리를 하고 있으니. 미국 (제조업)이 망한 이유가 뭡니까? 투자 안 하고 기술 개발 안 해서입니다. 세계를 리드하는 미국 기업들은 차등 의결권이 있어요. 주주 자본주의하는 회사들이 아닙니다. 애플의 경우 스티브 잡스가 이끌 때는 배당도 자주 안 했고, 자사주 매입도 없었어요. 팀 쿡이 들어온 뒤로 자신이 잡스 같은 기술적 비전도 없고 카리스마도 없으니 이윤의 100% 가까이 자사주 매입하면서 주주들을 매수한 것이죠. 그 결과로 애플은 기술력이 떨어지고 있어요.
한때 세계 최고의 비행기 회사 보잉이 망했잖아요. 연구 개발 안 하고 자사주 매입하다가 그랬어요. 반면교사의 사례가 널려 있어요. 지금 투자 덜 하고 주주한테 많이 나눠주는 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는 거예요. 지금 당장 주주환원율을 올리면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없어지고 주가가 올라 주식을 가지고 있는 3분의 1의 국민이 어느 정도 이익을 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80~90%가 힘들게 살게 되는 겁니다."
이재명 정부, 새로운 사회 모델 만들어야
이창곤: "마지막으로 이재명 정부가 임기 내에서 꼭 해줬으면 하는 정책이나 강조하고픈 사항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장하준: "뾰족한 뭐가 있는 게 아닌데, 산업 정책 제대로 하고, 복지 확대하고, 과학 기술 투자 더 많이 하는 것이죠. 쉽게 얘기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이해관계 조정도 잘 해야 하겠지요. 나아가 제가 바라는 것으로는 뭔가 새로운 담론 구조를 만들어 줬으면 합니다. '성장 더 해야 한다'거나 '복지 확대는 재정에 무리'라거나, '재벌을 잡기 위해서 주주자본주의 해야 한다'는 식의 고리타분한 담론에서 이제는 벗어났으면 합니다.
기술주도 성장, 혁신성장, 그리고 복지국가 확대라는 목표들을 잘 정리해 새로운 경제 사회모델을 만드는 게 저는 이재명 정부의 책무라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려면 뭘 해야 하는가를 정부 입장에서 계속 얘기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산재 문제와 관련해 SPC 계열 제빵 공장을 이재명 대통령이 방문한 것은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산재가 많고, 왜 이렇게 인류 역사상 최고로 애를 안 낳고, 왜 다들 의대만 가려고 하고, 왜 자살률이 OECD 최고이며, 왜 남녀 임금 격차가 OECD 최고인가? 왜, 노인 빈곤율이 OECD 최고인가? 이런 얘기를 자꾸 해야 돼요. 이런 수치스러운 기록들을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우리가 이런 것들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정책과 제도를 바꾸어야 하는가, 이런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창곤 <소셜코리아> 편집인 겸 편집위원장
본인제공
필자 소개: 이창곤은 <소셜 코리아>의 편집인 겸 편집위원장입니다. 한겨레신문사에서 일선 기자를 거쳐 편집국 부국장,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상임이사 등을 역임했습니다.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사회정책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중앙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강의를 합니다. 지은 책으로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공저), '복지의 문법'(공저) 등 10여 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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