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군청에서 한빛핵발전소까지 22km의 순례를 마친 생명평화탈핵순례단. 한빛 1호기 수명 연장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들의 끈질긴 걸음은 탈핵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 믿는다.
성덕
지난 5월 17일, 대만 남쪽 끝 마지막 핵발전소가 작동을 영구 중지했다. 이로써 대만은 동북아시아 최초로 탈핵 국가가 됐다. 독일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2022년까지 탈핵 정책을 추진했고 2023년 완전한 탈핵 국가가 되었다. 피폭과 핵발전소 사고를 겪어낸 일본 또한 핵발전소의 위험을 자각하고 축소하는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탈핵으로 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미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에 이어 전 세계 5위의 핵발전소 보유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국 6곳에 핵발전소가 있으며 24기가 현재 운영되고 있고 4기가 건설 중이다. 지난 6월 26일, 정지된 2기 중 하나인 고리핵발전소의 고리 1호기 완전 해체가 확정됐고,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의 운행이 정지되는 추세지만 여전히 국토 면적 대비 많은 숫자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경우처럼,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는 공통점은 핵발전소의 밀집도에 있다. 대한민국은 핵발전소 10기 이상을 보유한 국가 가운데 원전 밀집도(단위 면적당 원전 설비용량)가 세계 최고로 보고된 바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전을 보유한 미국도 밀집도는 한국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부산의 고리핵발전소와 경주의 월성핵발전소, 그리고 영광의 한빛핵발전소 모두 한 부지에 핵발전소가 6기 이상 밀집해 있다. 2016년엔 경주에 강도 5.8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국토지반에 대한 안전성도 흔들렸다. 지구온난화로 기후변화가 격동하는 가운데 핵발전소 사고 위험에서 한반도 또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2016년에 경주에 지진 났을 때, 일본의 탈핵 전문가 히로세 다카시 씨가 그랬어요. 영광에 아무 사고가 나지 않은 건 진짜 천운이라고요. (...) 우리 운명을 운에 맡기고 사는 거죠. 우리나라의 안전이 지금 과학적으로 지켜지고 있지 않아요. 아직까진 운이 좋은 거죠. 80년대부터 탈핵을 위해 싸웠던 영광 주민들의 탈핵 운동 덕분인가 싶기도 해요. '과거가 현재를 구하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도 하고요. 그런데 아직 완전히 구하지 못했다고 봐요. 그냥 아슬아슬 견디고 있는 거지 싶어요." (원불교 환경연대 이태은 공동대표)
삼십 년 넘게 핵발전소의 위험에 대한 글을 써왔던 일본의 저널리스트이자 반핵 반전운동가인 히로세 다카시는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했을 때 일본 또한 핵발전소 사고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강경하게 외쳤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핵발전소의 가동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24년 뒤인 2011년,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그의 말은 예언이 돼버렸다.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히로세 다카시는 한국을 찾아 핵발전소 위험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래의 지진에 대해 어느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경주 지진은 하늘이 주는 경고라고 생각해야 한다. 지진이 더욱 두려운 건 원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경고해도 일본 사람들이 듣지를 않았다. 이대로 가면 한국도 늦어버릴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경고가 현실이 되기 전에....

▲한국수력원자력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핵발전소 원자로 운영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홈페이지
탈핵 순례를 다녀온 날로부터 보름이 채 되지 않은 6월 14일 오후 8시 39분, 계획예방정비 중인 한빛원전 2호기에서 황산 191L 유출 사고가 났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그리고 7월 5일엔 한빛 5호기에서 붕산수가 유실됐다는 사고 소식이 들렸다. 다행히 두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나 방사능 오염은 없었지만, 히로세 다카시의 경고처럼 이 작은 사고가 어쩌면 최악의 상황에 대한 예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혹자는 여전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핵발전소만큼 깨끗한 게 어딨어?" "발전소 덕에 지역이 사는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왜 걱정해?" 그러나 핵발전소 건설은 지역 소외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잠깐의 증상을 억제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몸을 망쳐버리는 독약이 될 수 있다. 핵발전소를 경제적 문제로 축소시키는 건 대단히 위험한 접근이다. 핵발전소가 품고 있는 위험은 기후 위기처럼 우리 인류가 처한 문제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핵발전소의 사고는 단순한 재난 수준을 넘어선다. 일대의 생명이 초토화되는 것은 물론, 핵발전소 내 방사성 물질은 생태계를 교란하고 세대 단위의 위험을 초래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 세계는 여전히 그 사고가 남긴 후유증의 자장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 또한 말이다. 핵발전소가 있는 한 그 모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평화를 위해 탈핵순례를 떠나는 이 우직한 걸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필자 소개] 차성덕 :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이다. 중요하지만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는 것을 세상에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하는 게 영화와 르포의 역할이자 공통점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이야기의 힘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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