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미안함' 대신 '자부심'을 물려주고 싶다.
연합=OGQ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일하는 엄마, 아빠가 죄책감에 갇히면 육아도, 일도 즐겁지 않다. 가슴에 돌덩이를 얹고 숨을 편히 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엄마가 일해서 미안해."
"아빠가 야근해서 미안해."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순간, 아이는 '불쌍한 아이'가 되고 만다. 죄책감을 품은 시선은 결국, 아이에게도 죄책감을 입힌다.
물론, "그 하등 도움 안 되는 죄책감은 당장 버리세요!" 한다고 해서 마음이 곧 사라지진 않는다. 아이에게 38도가 넘는 고열이 나면, 엄마 아빠는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오늘은 엄마가, 내일은 아빠가 휴가를 낸다. 오늘은 아빠가, 내일은 엄마가 출근한다. 누군가 퇴근해야만, 누군가 출근할 수 있다. 아이 곁을 지켜줄 제3의 돌봄이 없다면 더욱 그렇다.
죄책감은 아이 앞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회사에서도 생긴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열이 나서 오늘 급히 휴가를 써야겠습니다."
"아이가 아직 열이 안 떨어지네요. 하루 더 휴가 쓰겠습니다. 급한 일은 김 대리에게 인수인계해뒀습니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죄책감이라는 녀석은 어김없이 명치를 눌러온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처한 환경이 죄책감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아이가 아플 때 유연하게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면? 아이의 유치원·학교 행사가 있을 때, 부모로서 당당히 시간을 낼 권리가 보장된다면? 그렇다면 죄책감이 들어설 자리에 자부심이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일을 하면서도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부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바로 '제도'의 힘이라고 믿는다. 개인의 마음 문제로 치부하면, 변화는 절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의 과제, 조직의 책임으로 바라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시작이 바로 제도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제도, 일하는 부모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특별휴가와 유연근무제 같은 장치들. 이 제도가 바로, 부모에게는 자부심을, 아이에게는 건강한 시선을 돌려줄 첫걸음이다.
예를 들어, 가족돌봄휴가나 부모휴가 같은 제도는 좋은 사례다.
먼저, 법적으로 보장된 가족돌봄휴가. 이 제도는 가족의 질병, 사고, 노령, 자녀 양육 등으로 긴급하게 돌봄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연간 최대 10일, 일 단위로 나누어 쓸 수도 있다. 물론 무급이라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최소한 쓸 수 있게 보장된 권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만약 여전히 '그림의 떡'처럼 느껴진다면, 초저출생 시대인 지금이야말로 그 떡을 그림 속에서 꺼낼 때다.
우리 회사는 경기도 내 공공기관인데, 여기서는 조금 더 나아간 제도가 있다. 자녀가 한 명이면 연간 2일, 두 명 이상이면 연간 3일을 유급 가족돌봄휴가로 보장한다. 게다가 이 유급 휴가는 시간 단위로도 쓸 수 있다.
그래서 아이의 유치원 행사나 갑작스러운 소아과 진료처럼, 하루 종일 쉴 필요는 없지만 잠깐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에 요긴하게 쓰인다. 사실 이런 제도를 쓰지 않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부모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쓰게 된다. 그럴 때 이 제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마치 마음의 보험을 들어둔 것처럼.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부모휴가'라는 제도도 있다. 법정 휴가는 아니지만, 경기도 공무원 등에게 적용되는 특별 유급휴가다. 초등학교 미취학 자녀를 둔 직원이 보육 사유로 필요할 때, 연간 5일 범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법보다 상위하는 제도가 마련되면, 직원은 소속 기관과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절로 생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 앞에서 달라진다. 우울한 얼굴 대신 자신감 있는 얼굴을 보여줄 수 있다. 일하는 엄마, 아빠로서 아이에게 '미안함' 대신 '자부심'을 물려줄 수 있다. 그게 바로 제도의 힘이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편
그렇다면, 일·육아 병행을 위한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결국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일 아닐까. 죄책감에 짓눌리지 않고 일하는 근로자와, 죄책감 속에서 매일 스스로를 탓하는 근로자. 과연 어느 쪽이 회사의 생산성에 도움이 될까?
아이를 죄책감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어른과, 자부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어른. 과연 어느 쪽의 어른과 그 곁의 아이가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이 되길 바라는가?
죄가 없다면, 죄책감도 없어야 한다. 육아가 일에 죄가 되지 않고, 일이 육아에 죄가 되지 않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정말 원하는 사회에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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