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의혹들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1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 경찰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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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건 나이를 몇 살을 먹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개인이 다사다난한 고난과 역경에 익숙해져도 둘러싼 환경도 시대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예상치 못한 종류의 온갖 좋지 못한 사건들은 우리를 찾아온다. 마치 신발을 처음 신어본 강아지처럼 스텝은 꼬인다. 그러면 실수를 한다. 혼자 다치는 실수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 과정에서 주변을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온갖 종류의 참신한 실수를 반복해도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 어떻게 대응하는가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한 것이 있다면 반성하고 책임감 있게 수습에 협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성숙한 인간의 척도란 얼마나 실수 없이 완벽한 삶을 사느냐가 아니라 실수 후에 어떻게 책임을 지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은 이런 나의 가치관에 위기를 초래했다. 물론 윤석열이 상식을 아득하게 초월한 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구속영장이 발부되기까지 수사와 재판에 협조를 하지 않은 주제에 아크로폴리스 지하상가를 활보했고, 영장심사를 마치고 구치소로 가면서도 한 손을 주머니에 넣는 모습은 이를 증명하는 최근의 증거였다.
구치소 독방까지 갔다면 참회까지는 무리라고 해도 이제 자신이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나. 이제는 자신의 과오를 직면하고 책임지는 것 외에 도리가 없다고 인정해야 하지 않나. 꼭 반성을 하진 않았더라도 남은 길이 그것뿐이기에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승복을 해야 하지 않나. 놀랍게도 윤석열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옷을 벗고 드러눕기'라는 전직 대통령으로선 초유의 길을 개척해내고야 말았다.
하지만 사실 윤석열처럼 사는 건 꽤나 큰 유혹이다
무려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저런 수준의 꼴을 보이는 마당에, 이런 세상에서 부러 '어른이 된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도 그냥 속옷만 입고 독방에 눕는 마음으로 온갖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면 안 되는 걸까.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지금 윤석열처럼 살면 안 되는 걸까 유혹에 흔들린 것이다. 물론 지금 세상에 윤석열처럼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건 윤석열 본인조차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윤석열은 내란수괴 혐의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처럼 '되는 것'과 '사는 건' 다르다. 내 앞으로 도착하는 모든 책임을 거부하고 뻔뻔하게 드러누울 수 있다면 그리고 회피에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다면? 아무 실수와 잘못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면? 사실 이건 아주 달콤한 유혹이다. 왜냐하면 현실을 직시하고 책임을 다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과오를 인정해야 할 때는 겁도 난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길 차라리 바라게 된다.
특검의 공보 내용은 매우 적절했다

▲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각종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 오정희 특검보가 8일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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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지난 1일 김건희 특검팀이 체포영장 무산 과정을 설명하는 브리핑 과정에서 한 기자가 공보 내용의 (표현) 수위가 특검 내부에서 협의가 된 것이냐는 질문을 했다. 잠시 이야기가 곁가지로 새는 걸 허락한다면 이 질문에 대해서 짚고 싶다.
당시 오정희 특검보가 "수의도 입지 않은 채 부분이 공보하기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질문"이냐고 다시 묻자, 기자는 "부적절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외신에서도 공보한 내용이 그대로 나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보 내용이 부적절하지 않다면 외신에서 이를 보도하든 세계인이 이 뉴스를 소비하든 문제가 될 것이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특검팀의 브리핑 수위가 무척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이 거부한 게 무슨 카카오톡 단톡방 초대도 아니다. 무려 체포영장이다. 아마 전직 검사이기도 한 윤석열은 영장이 가지는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행정부의 요청에 따라 사법부가 발부한 명령에 따르는 것은 말 그대로 법과 제도로 통치한다는 법치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전제이자 합의이다.
만약 특검이 영장 집행을 하지 못할 당시의 정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면 너무나 나쁜 메시지가 남게 된다. 앞으로의 영장 집행은 윤석열처럼 거부해도 된다는 뜻이 된다. 혹은 전직 대통령에게만 영장이 집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법은 근본적으로 불평등하다는 메시지가 되거나. 그러니 적어도 이 정도 수준의 설명이 있어야 법치주의가 그렇지 않다는 해명이 된다. 그래, 그런 광경을 봤다면 특검도 당황할 만도 하구나.
또한 이번 브리핑은 다른 맥락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속옷만 입고 바닥에 드러누운 채 자신의 과오를 부정하고 책임 이행을 회피하는 윤석열의 모습은 꽤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경종을 울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과오를 부정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건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라고. 내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지 않거나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모든 걸 어물쩍 넘어가는 건 너무나 큰 유혹이라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떠올리자. 교도소 바닥에 속옷만 입고 누워서 특검팀을 맞이한 윤석열의 모습을. 그 모양새로 영장 집행을 거부한 윤석열의 모습을. 영장 집행을 기어이 거부하다 특검이 돌아가자 조용히 수의를 챙겨 입었다던 윤석열의 모습을. 아무것도 인정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딱 그 수준과 모양새의 행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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