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전 대표가 하이브리드 피클볼을 치고 있다.
홍서윤
- 한국관광공사가 장애 친화적인 '열린관광지' 지역을 운영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공항에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 등의 인프라 변화 없이 열린관광지가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열린관광지는 일단 깔아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유 킥보드 이슈 나올 때 몇만 대를 일단 깔아 놓잖아? 깔아 놓으면 호기심에 타보고 유용성을 느끼기 시작하면 소비자가 되는 거다. 방대한 공급이 되면 수요가 생기는 거다. 이동권 문제도 똑같다. '오는 사람이 없는데 수요가 있어야 공급을 하죠'라고 공무원들이 말하는데, 킥보드 업체를 예로 들면서 '깔아 놓고 이야기해라'고 말했다. 경로를 만드는 게 해법이다."
- 열린관광지가 긍정적으로 작용한 실제 사례가 있나?
"제주도 천지연 폭포의 경우 어르신들이 입구에만 앉아 있다 오셨는데, 열린관광지가 되고 나서는 휠체어 대여가 불티났다. 턱도 있고 계단도 있어 입구에만 있던 분들도 휠체어만 대여하면 다닐만했던 거다. 휠체어가 모자랄 정도여서 대여용 휠체어를 늘렸다. 한국민속촌도 초기 열린관광지였는데 장애인 관광지가 되니 유아차나 왜건 유료 대여도 늘어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애용하기 시작했다.
강릉도 열린관광지가 많이 생겼는데 접근성도 좋아지고 장애인 콜택시 이용 여행자도 많아졌다. 장애인 차량 대여 서비스도 생겼고 강원도에서도 장애인 여행 편의를 위해 인프라를 더 많이 갖추고 있다. 관광지에도 장애인 편의 시설, 어르신, 아이들 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게 부대끼고 어울려야 한다. 장애인들도 이런 여행을 통해 다채로운 사람과 섞여 사는 것을 익혀야 한다. 때로는 아이들이 우선되어야 할 수도 있다."
- 복지라는 개념이 때로는 분리를 의미한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보편적 복지를 지향한다지만 정책, 시설, 프로그램 전반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분리되어 있다. '장애인을 위한'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다. 관광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을 위한) 관광'이라는 말을 탈피하기 위해 애를 썼고 '접근 가능한 관광'이 되기를 바랐으나 '무장애 관광'이라는 단어로 정착되었다. 장애인을 위한 관광? 그러면 분리되어 버린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 장애인 관광은 장애인복지관의 단체 관광 위주였기에 장애인들만 들어가는 전용 해변 같은 것들이 이때부터 만들어졌다. 하지만 사실 모두가 다 함께 하는 '접근 가능한' 해변이 좋은 것이긴 하다.
2017년 서울시 의뢰로 관광업계 서비스 매뉴얼을 만들었는데, 해외 트렌드에 맞춰 장애 유형으로 소개하는 대신 신체적 제약을 유형화해서 나누었다. 장애로 너무 두드러지지 않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당시만 하더라도 접근가능한 관광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지 않아 장애 유형 15개로 나눠 쓰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제는 어르신, 영유아를 모두 포함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확대되는 터라 장애인에게 편한 여행이 모두에게 편하다는 접근가능한 관광 개념이 좀 더 자연스러워졌다."
- 피클볼 클럽에서도 활동한다고 들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피클볼은 2023년 말 서울 마포에서 먼저 시작했다. 코치님이 직접 휠체어를 타보겠다고 해서 빌려드리기도 하면서 배우고 있다. 2024년에는 베트남 피클볼 대회에도 같이 갔는데 휠체어 이용 선수가 많아서 힌트를 얻고 왔다. 서울 강서구와 경기 용인에 휠체어 이용자들이 함께하는 피클볼 클럽이 있고 대전에 발달장애인이 함께하는 피클볼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장애인을 지도할 피클볼 지도자가 많지 않기는 하다. 장애인체육 강좌는 주로 일과 중에 잡혀있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일과 이후 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또 하나, 비장애인들과 함께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피클볼은 장애-비장애인 함께 하는 하이브리드 부문이 있어서 팀을 이룰 수도 있다. 서로 따로 피클볼을 치다가 자연스럽게 복식으로 치게 되기도 한다."
- 현재 장애인 체육의 문제점은 뭔가?
"너무 패럴림픽이나 전국체전 준비 위주, 엘리트 스포츠 위주다. 내 집 가까운 곳에서 운동하는 생활체육 경험을 겪어보지 못하는 거다. 장애 당사자들에게도 '공 한 판 치러 갈 곳'이 있다는 게 중요하고 함께 어울려 활동하는 공간과 분위기가 중요하다. 경기도 용인 피클볼 클럽에서는 휠체어 이용자 7명, 비장애인 수십 명이 함께 운동하고 사무국장을 장애인으로 정하기도 했다.
30대 이하 참여자들은 함께 활동하는 데 어색함이 덜하다. 하지만 장애 인식 교육이 드물었던 연령대 경우에도 함께 스포츠 활동을 하면 훨씬 더 애정이 높아진다. 체력이 낮은 어르신들과 휠체어 이용자들이 함께 하이브리드 게임을 즐기면서 할 수 있더라."
"안 된다고만 생각하지 말자"

▲2023년 무의 장애여성 커뮤니티 행사 '걸즈온휠즈: 멋진 언니들, 그런데 휠체어를 타는' 행사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홍서윤씨. 우측 하단.
홍윤희
- 딸에게 '휠체어를 탄 언니'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장애 청소년, 청년들에게 롤 모델이 있다는 건 얼마나 중요한가?
"TV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을 보며 여성 축구 붐이 일지 않았나. 장애 청소년, 청년들에게 괜찮은 롤 모델이 정말 필요하다. 비장애인 부모가 개입하더라도 해결 안 되는 이슈들이 있다. 망망대해를 떠도는 느낌인데 동질적인 사람이 '그렇게 하면 돼' 한마디 해주면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자랄 때는 그런 롤 모델이 없었다. 장벽에 대한 경험을 다른 장애인도 겪었다는 것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내 편이 있다는 안도감에 소외감이 해소되고 해결 경험도 공유할 수 있다."
- 요즘 젊은 장애인 롤 모델이 느는 것 같다.
"맞다. 장애 당사자들이 삶을 영상으로 공유하는 일이 흔해지고 좋은 모델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다만 장애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노출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철학을 갖고 해야 한다. 자극적인 소재로 해야 이슈 파이팅이 되니까 스스로의 장애를 소비하거나 장애에 대한 측은지심을 부여해서 '극복하고 사는구나'라며 스스로를 대상화하는 경우가 있다. 영향력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반대로 선배 장애인들이 해 온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게도 해야 한다. '턱이 있어도 남이 도와줘서 넘어가면 그게 배리어프리'라고 잘못된 생각을 말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러면 안 된다. 다양한 장애 유형이 있으니 내 경험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장애 당사자들일수록 내 경험을 전부처럼 이야기하는 순간 비장애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의 경우 내가 말한 것이 타인들에게 오히려 방해될까 봐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장애 유형에 대해서는 섣불리 말하고 싶지 않아서 항상 전제를 깔고 말한다."
- 장애 당사자들이 미래를 고민할 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있다. 열심히 찾아보고 활용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세상 물정 모를 때 집 근처 컨벤션센터에서 있는 국제 이벤트에 통역 아르바이트가 필요하다고 해서 지원했다. 이틀 동안 문의전화 받는 아르바이트였는데 해외 관련된 일이라 기본적으로 고용주의 마인드가 열려 있었다. 이렇게 의외로 뚫으면 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정 안 되면 창업이나 창직할 수도 있다. 시도 과정에서 엄청 많이 상처받고 실패할 거다. 하지만 '난 안 돼'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이 사회가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차별 받는 건 팩트지만, 그 정도가 점점 줄어들 것이고 그렇다면 나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피해 의식만 갖고 있다면 너무 힘들어진다.
나만 하더라도 집 밖에도 나오지 못하다가, 횡단보도도 못 건너다가, 이제 식당이나 극장에 휠체어 타고 들어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지 않나? 내가 원하는 보통의 삶에 얼마나 근접한 지가 척도가 될 거다. 안 된다고만 생각하지 말자고 한다."
홍서윤 전 대표는 휠체어 이용 여성 수십 명의 단톡방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본인의 청소년 시절에 없었던 '휠체어 탄 언니'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항상 어떻게 더 즐겁게 통합적으로 사회에 참여할지 고민하는 그가 여행에서 확장해 '장애인들의 여가 활동'까지 연구하고 있는 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여가 활동이 더 많은 여성 장애인들에게 '그냥 즐겨도 돼'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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