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관세협상이 타결된 지난달 3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체제의 제정적 성격은 단지 국내 정치 구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압도적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렛대로 삼아, 근대 국제 질서의 핵심 원칙인 국가 간의 평등성과 상호 존중을 점차 무력화시키고 있다.
제국주의적 외교는 미국을 더 이상 동맹과의 협의나 다자 규범에 기반한 질서의 일원으로 남게 하지 않는다. 일방적 요구와 무역 압박, 심지어 타국의 국내 정책에 대한 간접 개입까지 서슴지 않으며, 저항에는 관세, 물리적 응징 등 보복으로 대응한다.
이러한 협상 방식은 협력보다는 강제에, 타협보다는 복속에 기반한다. 그 결과 국제 정치의 구조는 다시 '제국과 주변부'라는 위계로 되돌아가고, 미국은 스스로를 질서의 중심으로, 타국은 그 질서에 종속되어야 할 존재로 상정한다.
그는 단지 미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제 질서를 재편하는 제국의 '주권적 화신'처럼 행동한다. 그의 외교는 소비에트식 위성국체제를 연상케 하며, 세계를 향한 일종의 '봉신적 외교'로 귀결된다.
2025년 8월 1일 현재, 미국은 경제력을 지렛대로 세계 각국에 강압적 협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관세를 무기 삼아 굴욕적 양보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미국 우선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브라질에는 정치적 응징에 가까운 50%의 보복 관세를 부과했고, 인도에는 25%의 관세 위협에 더해 러시아 관련 거래에 대한 추가 제재까지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극대화하고 있다.
유럽연합과 일본에 대해서도 '15% 관세 적용'이라는 동일한 수치를 반복적으로 제시하며, 미국은 마치 이를 협상 타결의 기준선이자 관세 협상의 상식처럼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실질적인 합의 지점을 미리 고정시켜 놓은 일종의 '프레임 전쟁'이다.
관세율이 낮아졌다고 해도, 이는 미국이 정한 기준 안에서의 타협에 불과하며, 상대국은 선택 여지없이 그 선에 도달해야만 협상이 끝난다. 15%라는 수치는 미국이 설정한 승리선이자, 상대를 겨냥한 지속적 압박의 기준점일 뿐이다.
현지 시간 7월 30일 타결된 한미 무역협상 역시 큰 틀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해 15% 관세가 부과되었으며, 이는 초기 25% 부과 경고에서 낮춰진 수치지만 미국의 예정된 전략적 인하이며, 한국에는 여전히 상당한 압박이다.
이번 협상은 한국이 정권 교체 직후 정치적 공백과 준비 부족이라는 이중의 약점을 안은 채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일방적이다. 특히 전 정권이 협상에 필요한 사전 검토와 전략 수립을 소홀히 한 탓에, 새 정부는 시간적 여유 없이 압박 협상에 임해야 했다.
정권 교체기의 연속성 부재는 분명 한국 정치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미국은 이를 기회로 삼아 협상의 외양 아래 본질적으로는 강제적 복종을 관철시켰다. 이는 동맹을 가장한 제국의 폭력이며, 무력한 상대국을 상대로 한 계산된 압박 외교였다.
제국주의적 횡포가 과연 미국의 국익에 부합할지는 미지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현상이 하나의 체제가 말기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이미 종언을 고하고 있으며, 그 말기적 증상 속에 세계는 신음하고 있다.
자유의 언어로 소비에트를 해체했던 미국은 이제, 'United Soviet of America'라고 불려도 과장이 아닐 만큼 위태로운 선을 넘나들고 있다. 그것은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내부의 피로와 그 피로 위에 자발적으로 쌓인 퇴행적 선택의 결과다.
제정은 언제나 피로한 자유를 틈타 돌아온다. 문제는 시대가 제정을 부르느냐가 아니라, 시민이 여전히 공화정을 지킬 의지를 갖고 있느냐다. 스스로를 통치하려는 자의 고단한 결심만이, 제정의 유혹을 막아낼 마지막 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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