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검찰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기본적으로 단호함과 성실함을 탑재한 법조인들이 무언가에 대해 확고한 기준을 갖는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새 어떤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은 무서운 일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어느새 말끔하게 정리된 잔디밭을 돌아보았던 생각이 난다."(<친애하는>, 32p)
윤석열씨를 비롯해 수많은 검사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말은, 정 검사가 사법연수원 시절에 요양원 봉사에서 풀을 뽑던 일화에서 나옵니다. 어떤 풀을 뽑아야 할지 헷갈리는 상황 사이에서 시골 출신의 정 검사가 '(뽑아야 하는 풀은) 작은 솜털이 있다'는 식으로 다른 연수생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순간 연수생들 사이에서 "털의 유무"라는 기준이 세워지면서 '털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 수많은 풀이 무서운 속도로 제거됐다고 하니, 공연히 뽑혀 나간 풀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전 이사장은 2021년 11월 MBC <시선집중>에 출연해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을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게 추천했습니다. 유 전 이사장은 "이 책은 인간다운 마음, 시민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 검사로 근무하면서 어떻게 자기 일을 대하는지, 어떻게 사건을 파고드는지 등을 다룬 에세이"라며 "사람다운 마음을 가진 검사가 그 일을 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이해하게 됐다. 권하는 이유는 알아서 (해석)하시라"라고 밝혔습니다.
정훈님, 아마 윤석열씨는 이 책을 안 봤겠죠? 그러니 '사람다운 마음을 가진' 대통령도 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에게 야당이나 자신을 비판하는 국민들은 '이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수사를 통해 굴복시켜야 하는 대상이었을 겁니다. 윤씨는 이렇다 할 정치 경력 없이 검찰총장을 그만둔 뒤에 바로 대통령이 되고, 검찰 출신을 측근으로 두고, '유죄와 무죄' '검사와 피의자'라는 검찰의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국정을 운영하다가 결국 비상계엄까지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주의자'였던 윤씨의 정치적 파산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금껏 윤석열 정권을 받쳐주던 중요한 축은 '정적 제거'를 위한 수사를 펼치면서 동시에 김건희씨를 비호하던, 한편에선 감시받지 않고 '특수활동비'를 제멋대로 쓰던 검찰이었기 때문입니다. 범죄에 대해 세밀하게 다루며, 평범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는 검찰이 '권력의 맛'에 취해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진창에 처박힌 존재의 안간힘과 함께 기꺼이 일렁이는 자'(<유무죄>, 289p)가 되자는 다짐도, "사건을 잘 처리했다는 성취 너머로 언제나 슬픈 얼굴을 한 사람이 있었다"(<유무죄>, 290p)는 깨달음이 없었기에 그랬을 겁니다.
검찰 개혁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생각하는 개혁은 시민들이 어디서나 '목이 꼿꼿하지 않은' 검사를 만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범죄 피해자의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검사, 피의자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는 않되 그들의 삶을 헤아릴 수 있는 검사, 무리한 수사 및 기소를 했을 때는 사과하는 검사... 형사부·공판부를 강화하는 흐름 속에서,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기꺼이 자세를 낮추는 검사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아래 정 검사의 호소를 많은 사람들이, 특히 검사들이 꼭 마음속에 담아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범죄의 땅을 일구는 방식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생각과 반성과 촉구가 내려앉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변해갈 것이다. 그 변화의 결과로 어떤 이름의 형사 사법 시스템을 구축하게 될지 단정할 수 없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바는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범죄라는 이름의 재난 앞에 소중한 이들의 다정함을 지켜내고자 하는 것, 그러한 방식으로 인간이라는 연약한 종족에 대한 낙관을 잃지 않는 것."(<유무죄>, 8~9p)"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정명원 (지은이), 한겨레출판(2025)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 ‘외곽주의자’ 검사가 바라본 진실 너머의 풍경들
정명원 (지은이), 한겨레출판(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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