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26 06:53최종 업데이트 25.08.2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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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서 내려다 본 우리 집김동의

작업일 52일. 건축 기간치고는 짧지만, 심경의 변화만큼은 다이내믹했던 시간이 지나고 집이 완성되었다.

집을 지어보니 인생이 바뀐다. 확실히 가난해졌다. 내 생에 이토록 돈이 간절한 적이 있었나 싶다. 매월 금융권에 지불해야 할 이자만 250만 원이 넘는다. 전에는 별생각 없이 그냥 주문했던 스타벅스 커피는 이제 쉬이 범접하기 어려운 사치품이다. 옷? 구입하고 싶은 욕구가 사라졌다.

해외여행도 내 인생에 어떤 금전적인 호재가 있지 않은 한 없다고 생각한다. 배우자에게도 이야기했다. 앞으로는 구글 로드뷰로 세계 곳곳을 랜선 여행하자고. 조만간 모니터 앞에서 피자를 먹으며 나폴리를 방문할 예정이다.

우리 집 엥겔지수는 치솟고, 지난해 초부터 금리가 계속 올라 대출 규제 소식만 들려온다. 그만큼 좋지 않은 시기에 모든 것을 탈탈 털어 넣었다. 다 알고 저지른 일이다. 금전적인 여유는 없어졌지만 나만의 평면도로 지은 나만의 주차장, 나만의 마당, 나만의 공간이 생겼고 공동주택에서의 삶보다 긴장을 풀고 어깨에 힘을 빼며 일상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집 자체만 보더라도 기능 면에서 공동주택과는 비교할 수 없다. 단열과 방음은 물론 열회수환기장치 덕분에 24시간 신선한 공기를 공급받으며 쾌적한 삶을 누리고 있다. 어디선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한 담배 연기로부터 해방되니 정신적인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이는 이제 걷지 않는다. 늘 뛰어다녀도 아무도 이를 제지하지 않는다. 마당에서 지인들과 에어바운스도 설치해 봤다가 고기도 구워 먹어보고 더운 날에는 공기주입식 작은 수영장도 놨다. 천년만년 이 집에서 살 것처럼 스트레스받아 가며 현장을 매일같이 드나들었지만 몇십 년 여생이라도 후회 없이 가족과 건강하게 안락한 삶을 누리길 희망한다.

'무작정 집짓기' 연재는 집짓기 과정에서 느낀 바를 기억이 바래기 전에 일기 쓰듯 기록으로 남기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다. 또한, 집짓기를 준비하는 누구라도 이 글을 읽고 나의 실책을 거울삼아 반복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면, 시간을 들여 기록해 둘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당에 설치한 에어바운스. 아이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김동의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꿈

오해하는 분이 있을까 봐 덧붙이자면, 시공사 혹은 시공업자라면 응당 최소의 이윤만 남기고 제대로 집을 지어야만 한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손해를 감수하며 그렇게 할 시공사도 없겠지만 노동의 가치는 존중되어야 하기에 그래서도 안된다.

시공사는 시공 노하우와 노동력을 들여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꿈일 수도 있는 집을 짓고, 건축주는 비용을 지불하여 그 꿈을 실현시킨다.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 정당히 요구되는 돈이면 시공사의 마진이 1000만 원이든 1억 원이든 그 집이 필요한 소비자는 기꺼이 지불할 것이고 그 마진의 적정성은 시장이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나라 단독주택 시장에서는 건축주가 너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외로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건축주가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이 글이 작은 등대가 되길 희망한다. 언젠가는 그런 눈높이에 맞춰 소규모 건축 시장도 건전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누구나 목돈을 들인 만큼 하자 적고 꽤 괜찮은 집짓기가 가능한 세상이 오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물론 내가 작성한 후기만으로 절대 역부족일 것이다. 비슷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건축주 개인의 노력과 연대, 특히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개방적인 정보 교류가 절실하다.

그와 같은 맥락으로 공사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일에 대해서는 가감 없이 서술해 봤다. 시공사 선정에 있어 더 고민해 볼 필요 없이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던 시공사 사장. 그러나 공사가 진행되는 내내 내가 모든 자원을 들여 집짓기를 맡길 정도로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니면 내가 내 입장만 고수하며 이기적인 심보로 일관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차례 왔다 갔다 했다. 인간은 영화나 드라마 속 등장인물보다 훨씬 더 입체적임을 새삼 느꼈다.

나에게는 책임져야 할 배우자와 아이가 있고 시공사 사장도 동일하게 가장의 짐을 짊어지고 있다. 시공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이윤을 줄이려는 의도가 없었기에 일체 공사비를 깎거나 서비스를 요구하지 않았다. 단 하루도 지체 없이 약속된 건축 비용을 입금하려고 노력했다. 공사 막바지엔 자금 융통이 어려워져 장인·장모님 명의의 대출과 노후 자금까지 빌려 약속된 건축비를 겨우 송금했다. 그런 상황에서 '건축주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정석 시공을 한다'는 시공사 사장의 말은 가증스럽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복 받은 건축주

누차 강조하지만 예비 건축주라면 이런 전철을 밟지 말고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 만큼 더 행복한 집짓기가 되길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교적 성공적인 건축주라고 생각한다. 시공사가 돈만 받고 잠적해 버려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어찌 됐든 집이 완성됐다. 비 올 때 물 안 새기만 해도 이 깜깜한 시장에선 90점 이상은 될 것이다. 앞으로 큰 하자만 없길 기원한다.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4월 1일에 공사가 시작됐는데 6월까지 날씨가 참 잘 도와줬다. 아주 큰비는 내리지 않아 어려움이 없었다. 골조 공사 중 하루이틀 비에 노출되었지만 따로 방수포를 덮지 않았어도 이후 문제없이 적정 함수율 이하로 자연 건조됐다. 경량목구조로 공사하기에는 적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웃을 잘 만나서 행복하다. 막연히 단독주택에서의 삶이라면 많은 이들이 남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사는 것만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의외로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다. 토지 간 경계 문제로 금전적 배상이나 소송으로까지 번진 이웃, 이웃에서 넘어온 나뭇가지 하나로 감정이 들끓는 사이도 있다. 어느 마을은 전체가 서로 원수지간인 곳도 있다고 들었다. 상상만 해도 삶이 녹록지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해 공사 시작부터 수도와 전기를 아낌없이 빌려준 이들이 있다. 그 과정에서 시공사 실수로 누전 차단기가 두 번 내려가고, 곳곳에 시멘트가 튀었으며, 골조에 잘못 박힌 못을 빼다 총알처럼 튀어 나간 못에 값비싼 독일 시스템 창이 손상되었음에도 우리 집이 빨리 잘 지어지기만을 응원해 준 옆집을 이웃으로 둔 것부터 나는 복 받은 건축주이다. 또 다른 이웃도 장기간 자재 적치를 허용해 준 덕분에 수월하게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을 때 큰 자금을 융통해 주신 장인·장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무리 사위이고 자식이어도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 가며 노후 자금을 선뜻 빌려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큰 빚을 졌다.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되겠다.
덧붙이는 글 그동안 건축 후기를 읽어준 독자들에게 그리고 관심은 없어도 억지로 한 번은 들여다봐 준 친척, 친구, 회사 동료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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