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고등학교 고교생 강연 [만년필과 디지털 디톡스]
김덕래
숏폼의 시대, 체득하는 즐거움
IT 용어 중 기고GIGO(Garbage in, Garbage out)라는 말이 있습니다. 단순 번역하면,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좋은 결괏값은 얻기 위해선, 좋은 데이터를 넣어야 한다는 말로 의역됩니다. 좋은 데이터가 경제적 지원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교사는 교사대로 막막할 때가 많고, 또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기운 빠질 일이 많은 세상입니다만, 그중 가장 혼란스러운 건 학생입니다. 아직 성장을 다 마친, 내적으로 안정화된 시점이 아니니까요.
반복된 자극은 중독에 불러오지만, 이로운 경험은 사람을 지혜롭게 합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안에는 무수히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나의 것은 아닙니다. 마치 내 것인 양 여겨질 때도 있지만, 눈으로만 훑은 지식은 바람처럼 흩어지기 쉽습니다. 정보가 너무 없어도 곤란하지만, 지나치게 많아도 문제가 생깁니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영화 <타짜>에서 평경장 역을 맡았던 배우 백윤식의 명대사입니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손이 눈보다 빠른 이유는 '체득'에 있습니다. 체득의 사전적 의미는, 내 몸을 써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숏폼Short-form은 이미 대세입니다. 하지만 내 눈을 스쳐 지나가는 영상에서 지식을 뽑아내어 내 것으로 만드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활자화된 글을 읽는 행위로 섭취하는 편이 현명하고, 그걸 노트에 옮겨 적는 동안 확실한 나의 것이 됩니다.
아빠가 이번 달 여러 곳에서 강연이 잡혀있다고 했더니, 고등학교 2학년인 둘째 딸이 이 말을 꼭 전해달랍니다.
"아빠. 내가 중학생 땐 전과목 과제물을 다 손으로 써서 냈거든?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왔더니, 구글폼으로 내라는 과목들이 점점 늘어나더라고? 처음엔 어색했지만 하다 보니 익숙해지고, 언제부터인가 더 편한 거야. 그런데 1학년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손으로 써서 내라는 선생님이 있어. 한 학생이 물어봤지. 왜 선생님만 손글씨 과제를 고집하냐고 말이야. 선생님이 뭐라고 한지 알아?
"너희가 쓴 글씨... 솔직히 너희들이 봐도 알아보기 힘들지? 선생님은 오죽하겠니. 그런데 선생님까지 구글폼을 써버리면 너희들 손글씨 쓸 일이 그만큼 줄어들 거 아냐? 안 그래도 복사, 붙여넣기에 익숙할 텐데 말이야. 선생님은 적어도 너희들 졸업할 때까진 바꿀 마음 없으니 그런 줄로 알아."
야구의 꽃은 투수입니다. 얼마나 정확한 제구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투수의 가치 평가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빠른 공을 던져도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면 볼일 뿐이니까요. 반면 유능한 타자의 덕목은 선구안입니다. 지금 내게로 날아오는 공이 스크라이크인지 볼인지 가려낼 줄 모른다면 배트는 허공을 가를 뿐이고, 기껏 쳐내더라도 파울볼일 테니까요.
야구 경기에서 어떤 공이 날아오는지가 중요한 것처럼, 정보가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좋은 데이터를 선별하는 일은 중차대합니다. 전교생이 만년필을 쓰는 학교가 있고, 또 기술 특이점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반갑습니다.
▲전교생이 만년필을 쓰는 김제 지평선고등학교
김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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