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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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엘리자베스 워런은 미국 경제가 '무책임 자본주의에서 책임 자본주의(accountable capitalism)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무책임 주주·투자자들을 억제·규제해야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사회적 파괴와 생태파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주자본주의의 기저에는 회사는 오직 주주들의 결사체 즉 '자본의 결사체'라는 사상이 깔려있다. 우리나라 상법·회사법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실 경제는 자본과 함께 노동과 토지(자연)의 3가지 생산요소를 반드시 포함해 작동한다. 생산의 주체인 회사는 자본만 아니라 노동(사회)과 토지(생태)가 반드시 함께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결사체'다.
스티글리츠와 엘리자베스 워런에 따르면, 회사란 주주(지배주주와 소수주주)만 아니라 직원·노동자와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 공동체이다. 게다가 언제든 주식을 팔고 떠나면 되는 충성심 없는 유한책임 주주·투자자와 달리, 직원·노동자들과 가족(지역사회를 포함해)은 때로 평생 회사를 위해 일한다. 심지어 회사가 많은 빚을 지거나 손실을 입어 위기에 처할 경우, 임금삭감과 추가 근무까지 감수하는 '책임질 줄 아는 이해관계자'다.
그래서 워런은 "대기업은 단지 주주·투자자만 아니라 노동자, 지역사회, 국가로부터 법인격과 특권을 부여받은 존재이며 따라서 이들 모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연 매출 10억 달러 이상 대기업은 상장·비상장 불문하고 이사회 구성원의 40% 이상을 독일식 노동이사로 선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Accountable Capitalism Act). 이 법을 둘러싼 논란은 2019년 미국의 주요 대기업 CEO 연합체(Business Round Table)가 '기업 경영의 목적은 주주·투자자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이해관계자의 이익 도모다'라고 선언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고, ESG 논의로도 이어졌다.
즉, 재벌 총수 등 지배주주의 무능과 사리사욕, 순환출자 등의 문제는 주주·투자자 모델만이 아니라 이해관계자 모델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오히려 이렇게 볼 때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설득력 있는 논의들이 제시되어 왔다.
주주권한을 강화하면 경제가 성장할까?
주주·투자자 권리 강화는 주주·투자자 수익성 강화로 이어진다. 주주권 강화를 요구하는 이들은 입을 모아 '한국의 낮은 주주환원율(29~32%)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며, 그것을 미국(약 92%) 수준은 아니라도 적어도 OECD 선진국 평균(68%)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증권사와 투자자단체들은 76%까지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주환원액은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 소각을 합친 액수를 뜻한다. 요즘은 주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통해 ROE(자기자본이이익률)와 PBR(주가순자산비율)을 높이는 방식을 요구한다.
법인세 납부 후 순이익은 주주환원과 이익잉여금(사내유보금)으로 배분된다. 주주환원이 많아질수록 사내유보금이 감소한다. 회사의 실물투자 재원에는 내부자금(사내유보금)과 외부자금(대출금과 회사채·주식 발행)이 있다. 사내유보금은 무이자·무배당이므로 회사 경영진이 가장 선호하는 재원이다. 따라서 사내유보금이 감소하면 실물투자가 줄어들 위험이 있다. 주주환원율을 32%에서 76%로 2배 이상 높이면 우리나라 상장사들의 실물 투자가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정부의 '성장 우선'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지점이다.
고투자·고성장을 보여온 중국의 주주환원율(31%)과 비슷한 수준의 낮은 주주환원율 덕분에 한국 경제는 1인당 평균 소득 3만 6천 달러를 달성하며 겨우 선진국 문턱을 넘었다. 앞으로 OECD 평균 수준의 높은 주주환원율로 저투자·저성장 모델이 고착될 경우, 한국은 선진국 문턱에서 멈춘 채 정체될 위험성도 적잖다.
더욱이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ROE(자기자본이이익률)를 높이면 자기자본(E)이 줄어들어 회사가 파산할 위험성도 커진다. 미국 상장사들은 92%의 높은 주주환원율의 약 절반을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달성하는데,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수익이 감소해 현금흐름이 약해질 경우 즉각 파산 위협에 직면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잉이다.

▲워싱턴주 렌튼에 위치한 보잉 공장에 보잉 로고가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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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은 2014~2018년 기간에 누적 순이익보다 더 많은 액수를 주주·투자자에게 환원했고 그 절반가량을 자사주를 매입·소각하는 데 사용했다. 그 결과 회계상 자기자본이 2014년 150억 달러에서 2018년 4억 달러로 급감했다. 자기자본(E)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순수익(R)은 차이가 없었지만 ROE(자기자본이이익률)와 PBR(주가순자산비율)이 급증해 주가가 급등했다. 그로 인해 주주·투자자들과 경영진(스톡옵션 부여)은 큰 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2019년부터 보잉 737 Max 기종에서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보잉 경영진이 품질·기술 투자를 줄였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2020~22년에는 코로나 셧다운으로 세계 항공기 수요가 급감했다. 2019년부터 누적 적자가 3백억 달러가 넘었다. 겨우 4억 달러의 자기자본은 순식간에 잠식되었고, 회사는 파산 직전의 위기에 이르렀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지원(회사채 보증)과 연방정부, 즉 국방부와 NASA 차원의 보조금(조달계약)이 없었다면 보잉은 이미 파산했을 것이다. 국민의 혈세로 회생한 셈이다. 대동소이한 일이 반도체 기업인 인텔에서도 지난 15년간 벌어졌다. 주주·투자자들은 수익만 빼먹고 손실은 사회와 국가에 떠넘겼다.
높은 주주환원율과 기술투자가 공존하기 어려운 이유
혹자는 미국의 화이자(제약), 엔비디아(반도체), 구글(IT) 등의 사례를 들어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높은 주주환원율과 높은 기술투자(R&D)가 동시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화이자와 엔비디아, 구글은 영업마진율(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이 30~5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순이익이 영업이익의 절반 수준에 이를 정도로 높기 때문에, 순이익의 대부분을 주주·투자자들에 환원해도 나머지 절반으로 세계 최고 R&D 집중도(매출액의 15~25%)를 유지할 수 있다. 미국 연방정부가 지난 80년간 '기업가형 국가'(세계적 경제학자 마추카토의 저서로,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내는 주체로서의 국가'를 강조했다) 정책을 펼친 결과, 미국 회사들이 인공지능(소프트웨어)과 반도체, 바이오·제약, 항공·우주 등 과학·지식 기반 산업에서 세계 시장을 사실상 독과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 정부와 대기업들이 앞으로 수십 년간 노력해도 모방·추격이 쉽지 않은 모델이다.
이재명 정부가 국가전략 산업으로 지정한 인공지능(네이버 등)과 반도체(삼성전자 등), 전기차(현대기아차 등), 이차전지(LG엔솔 등), 바이오·제약(셀트리온 등), 방산(현대로템 등) 산업의 영업마진율은 5~15% 수준이다. 한국만 아니라 유럽과 일본의 대기업 역시 대동소이하다.
미국의 과학·지식 기반 회사들은 제조·공정(공장)을 아웃소싱한다. 그에 반해 한국의 대기업들은 국제적 비교우위를 제조·공정 관련 품질관리와 기술력에서 확보해 수익을 내고 있다. 설비와 공장에 많은 자본과 자산이 투하되는 만큼 ROE(자기자본이익률)와 ROA(총자산이익률)를 손쉽게 높일 수 없다. 그런데도 ROE를 높이고 그 순이익의 70% 이상을 주주·투자자들에 분배하라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경우, 한국의 상장 대기업들은 쇠퇴의 길로, 재무적 부실화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적잖다. '기술 주도 성장'에 부응하고 싶어도 투자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진다. 정부가 국민 혈세를 퍼부어 보조금을 늘려주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
▲정승일/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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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정승일은 베를린자유대학교 정치경제학 박사이며, 2007년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창립을 함께한 멤버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은행·대기업 해외매각과 민영화, 금융·자본시장 완전개방과 주주자본주의화 등 '시장 개혁'을 시종일관 비판했습니다. 그 경험과 견해를 담아 장하준 교수와 함께 <쾌도난마 한국 경제>를 출간했습니다. 또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장하준·이종태 공저), <굿바이 근혜노믹스_정승일의 단도직입 경제민주화>, <누가 가짜 경제민주화를 말하는가>에서 새로운 경제민주화론과 복지국가론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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