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 주택 매매 시장에서 아파트 거래 비중이 2006년 조사 이래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난 14일, 서울 남산 N서울타워에서 한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 시내 아파트단지 전경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출발을 잘했으니 이재명 호는 앞으로 계속 순항할까. 기우인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확신하기에는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사실, <레위기> 25장의 희년 규정에서 핵심은 각 가족이 원래 분배받아서 보유하던 땅을 그대로 회복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모두가 실질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점령한 후, 취득한 토지를 지파별·가족별로 분배할 때 평등하게 하려고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내용이 성경 여기저기에 나온다. 그러니까 희년이 돌아와 원래 분배받아서 보유하던 땅을 회복한다는 말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평등한 토지분배 상태를 복원한다는 뜻이다.
토지가 실질적 자유의 토대라는 점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이 해방 노예들에게 '노새 한 마리와 토지 40에이커'를 받게 되리라고 약속했던 데서도 확인된다. 이 약속은 흑인 노예들에게 신분상 자유를 주더라도 땅을 주지 않으면 자유를 누리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 결과 해방 노예의 다수가 독립적인 삶을 이루지 못하고 옛 주인에게 돌아가서 사실상 노예의 삶을 이어갔다.
실질적 자유를 강조한 희년의 정신이 현대사회에서도 구현되어야 한다는 데 대해 반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방법이 문제인데,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땅 그 자체를 평등하게 분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땅에서 생기는 소득을 공적으로 징수해서 모든 국민이 똑같이 누리도록 하면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토지 그 자체가 아니라 토지에 대한 권리, 즉 토지권(土地權)을 평등하게 부여하자는 이야기다. 이 현대적 방법에 대해서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불후의 명저 <진보와 빈곤>에서 명쾌하게 설명한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희년 정신에 부응하는 길을 향해 첫걸음을 떼면서도 그 핵심, 즉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토지권을 보장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그다지도 걱정하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바로 토지·부동산 소유의 불평등과 그로 인한 불로소득의 편중에서 비롯되는데도 말이다. 토지와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차단·환수하고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토지권을 보장하는 것만이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고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는 길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할 수 있을까.
"주택보급률 100% 시대에 가장 핵심적인 부동산문제는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수요와 부동산가격 불안정에 기인한 공포수요 때문에 발생합니다. 누군가의 불로소득은 누군가의 손실이므로 비정상적 부동산가격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입니다. (…) 불로소득 환수를 위한 부동산세 강화로 투기수요를 억제함과 동시에 무주택자들이 평생 집값 걱정 없이 적정한 임대료로 편안한 주거를 영위하도록 질 높은 장기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면 공포수요 억제에 효과가 클 것입니다."
주택 문제에 국한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실로 정확한 해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불로소득 환수로 생기는 추가 세수는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 지급해서 평등한 토지권을 보장할 수 있다. 깔끔한 해법이 이미 마련되어 있음에도 지금 이재명 대통령은 애써 이를 무시한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불로소득 환수를 위한 부동산세 강화는 아예 금기어로 취급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위에 말은 누가 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2020년 8월 9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썼던 말이다. 그러니까 몇 년 전만 해도 이재명 대통령은 모든 국민에게 실질적 자유를 충분히 보장할 방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을 정책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창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 정책은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로 불렸다.
이재명 대통령, 경기도지사 시절로 돌아가시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억과 위로, 치유의 대화' 사회적 참사 유가족 간담회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억강부약 대동세상(抑强扶弱 大同世上)'!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서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뜻이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이재명 대통령을 상징하는 정치 구호로 알려졌다. 앞에서 소개한 대통령의 세 행보는 분명 부약(扶弱)을 도모하는 것이다. 문제는 억강(抑强)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식의 반쪽짜리 정책으로는 불평등과 양극화의 해소는 요원해지고 대동세상의 실현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민주주의 발전과 실질적 자유의 실현도 중도반단(中途半斷)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조속히 5년 전 경기도지사 시절의 자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일부 약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정도에 머문다면, 끝까지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 지금은 짧디짧은 찬란한 시(詩)의 시절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곧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산문(散文)의 시절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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