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직장인들이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연합=OGQ
모든 개인의 경험과 생각은 다르다. 특히, 전생과 후생처럼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겪는 육아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때로는 육아를 직접 해본 직장 상사가 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그런 상사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다. 어느 날 아이가 아파서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퇴근해야 했다. 그 순간 안 과장의 마음에는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내려앉는다. '상사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이가 아픈데 빨리 달려가야 하는데, 어쩌지?' 서로 다른 두 가지 무게감이 답답하게 누른다.
결국 안 과장은 상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말 죄송한데, 아이가 아파서 지금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 회의를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상사가 묻는다. "아이가 몇 살이죠? 4살이라고 했나요? 약은 혼자 못 먹나요?" 안 과장은 할 말을 잃는다. 상사에겐 아이가 없다.
반면, 안 과장 팀에는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선배가 있다. 안 과장이 아이 때문에 힘들어할 때면 선배는 이렇게 한마디 던진다. "그래도 우리 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잖아. 좋은 제도도 많이 생겼고, 저출산 시대 덕을 보는 거지 뭐." 그 말이 아무 생각 없이 나온 것인지, 어떤 의도가 담긴 말인지 알 수 없지만, 육아 '라떼' 선배의 한마디도 안 과장 마음에 무거운 돌처럼 내려앉는다.
그렇다면 과연 육아 페널티를 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육아 때문에 단축근무를 하는 직원일까? 아니면 육아를 위해 친정엄마 옆집으로 이사 가서 겉으로는 똑같이 정규 근무하는 직원일까? 반대로 육아 페널티를 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육아를 해본 적 없어 전혀 모르는 상사일까? 아니면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육아를 했던 '라떼' 선배일까?
아니다. 육아 페널티는 엄마에게 육아가 기본값으로 설정된 문화의 자동 산출값이다. 과거에 비해 육아를 함께하는 워킹 대디들이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회사에서 육아기 단축근무를 하는 남자 직원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에게 육아라는 변수가 생겼을 때 누가 가장 먼저 육아 현장으로 달려갈까?
대부분의 경우 엄마 직장인이 먼저 달려간다. 그리고 회사에 아쉬운 말, 죄송한 말을 먼저 해야 하는 것도 엄마 직장인이다. 물론 아이가 아플 때 회사에서 '아이가 아파서 가봐야 한다'라는 말이 잘 통하는 쪽도 엄마 직장인이다.
내가 워킹맘으로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가 있었다. 복직한 지 1년쯤 되었을 때였는데 아이가 2~3살로 한창 자주 아플 때였다. 출근하다가도 핸들을 돌려 어린이집으로 다시 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때는 나도 참다못해 남편에게 울부짖은 적이 있다.
"자기, 군대 갔다 왔지? 내가 전방이잖아! 내가 전방에서 불 다 끄고 나면 자기가 오는 거잖아. 자긴 후방이니까! 왜 나만 회사에서 아쉬운 소리 하고, 눈치 보고, 또 애기 병원 데려가야 해?"
그때는 비이성적인 상황이라 한 말이었지만, 이 문제는 한 부부나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을 최우선으로 만들려면, 제도뿐 아니라 문화까지 함께 바뀌어야 가능하다.
제도를 결정하는 사람 vs 사용하는 사람
일과 육아의 균형을 위해 새로운 제도가 많이 생겼고 고용노동부나 여성가족부에서 진행하는 참신한 캠페인도 많다. 하지만 그 제도를 도입하고 승인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다양한 캠페인 구호를 보고 마음에 새기는 주체 역시 사람이다. 특히 회사 안에서 제도를 직접 사용하는 사람뿐 아니라 제도 도입과 사용을 결정하고 승인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제도의 활성화는 더딜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제도를 사용하는 사람은 제도가 절실히 필요한 당사자인 반면, 제도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제도가 크게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문서상의 결재가 문서 내용에 대한 전적인 동의를 뜻하지 않고, 최종 결재자의 사인이 반드시 찬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그 사이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직장인들은 심리적·신체적으로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 즉 보이지 않는 '육아 페널티'는 결국 회사 내 근무 성과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서로 다름과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의사소통의 장애는 근로 의욕 저하와 근무 장애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육아 페널티는 개인 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치러야 할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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