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현 성당.
차유진
네 번째 순례지인 약현성당의 오전 10시 미사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출근길 강변북로 도로 상황이 좋지 않을 게 불 보듯 뻔해, 제 시간에 도착할지 걱정이 앞섰다. 그때 엄마가 자신이 알려주는 길로 가보자며 내비게이션을 자청하셨다. 말씀대로 도심 속 간선도로를 따라가니, 예상보다 훨씬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었다.
엄마는 약현성당도 예전 신촌에 살던 시절, 여러 번 다녀온 곳이라며 지리를 훤히 알고 계셨다. 가족의 평안을 위해서라면 숨찬 오르막길도, 먼 길도 개의치 않으셨던 엄마의 헌신이 다시금 경이롭게 와닿았다.
약현성당은 서울 최초의 서양식 고딕 성당으로, 순교자들의 피와 신앙의 유산이 서린 곳이다. 조선 시대 천주교 박해로 순교한 이들의 무덤 터 위에, 1891년 프랑스 선교사 코스트 신부가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1998년 방화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철저히 복원하여 본래의 모습을 되살렸다.
주보성인은 '성 요셉'으로, 성당 마당 앞에 그의 큰 성상이 세워져 있다. 성전 안으로 들어서니, 아치형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 짙은 나무 의자, 붉은 벽돌 기둥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하기보다는, 오랜 기도 속에 이어져온 절제된 아름다움이 성전을 한층 더 깊은 울림으로 채우고 있었다.
▲약현 성당 성전 내부.
차유진
미사를 마친 뒤, 순례지 도장을 찍고 근처 '서소문 네거리 순교성지'를 둘러본 다음, 집에 와서 티타임을 가졌다. 엄마는 앞으로 가볼만한 순교성지들도 꽤 많다며 해미성지, 남양성지, 배티성지 등을 추천하셨다. 특히 안성에 위치한 미리내 성지는 3년 동안 빠짐없이 줄기차게 다녔다고 하셨다.
"그 먼 길을 왜 3년 동안이나 다녔어?"
"니 오빠 제대할 때까지지. 자식을 최전방에 군대 보내놓고, 잠이 올 턱이 있나(88년 입대 당시, DMZ는 긴장 완화와 국지적 도발이 공존하던 과도기였으며 군복무 기간도 3년이었다). 나같이 빽도 없는 게 어디가서 빌겠냐. 부탁할 곳이라고는 딱 한 군데 뿐인 걸. 3년 내내 새벽기도 올리고, 아침에 돌아와서 종일 일하고 그랬지. 그 덕분인가, 제대할 때 정말 손가락 하나 안 다치고 집에 왔더라."
우리 삼남매가 지금껏 큰 탈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건, 뒤에서 든든히 버텨준 엄마의 기도 덕분이었다는 걸 이제야 절실히 깨달았다. 오랜 냉담을 푼 것도 뜻깊었지만, 희년을 맞아 성지순례를 다니며 성당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긴 시간은 더욱 특별했다. 무엇보다 엄마와 함께한 순간들, 그리고 당신의 오랜 기도를 비로소 헤아릴 수 있었던 점이 가장 큰 선물이었다.
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한 가을이 찾아오면, 다음엔 서울 외곽으로 성지순례 데이트를 떠나기로 엄마와 약속했다. 아울러 순례 여정을 기록하는 도장도 계속 하나씩 늘려갈 생각이다. 30년 만에 다시 걸은 신앙의 길에서 깊은 평화와 위안을 만났듯, 아직 신앙의 문턱에서 머뭇거리는 이들에게 '희년'의 품 안에서 뜻깊은 시간과 안식을 누리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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