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구입한 NC 다이노스 투수 이용찬의 이름이 마킹된 유니폼. 등번호 아래에는 직접 받은 사인이 지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색실로 자수를 박았다.
이슬기
야구는 사실 루즈하지 않다. 알고 보니 그렇다. 피칭 직전 사인을 주고받는 투수와 포수, 이를 간파하는 출루한 주자의 움직임, 코치들의 사인을 뚫어져라 보는 타자 등등. 우아한 백조가 수면 아래에선 미친 듯이 발을 구르고 있는 양으로, 야구장이라는 게 알면 알수록 그렇더라. 사실 여태껏 투수와 타자 간 수싸움이라든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그런 걸 알고 싶어서, 한 번은 여자 사회인 야구팀의 문을 두드린 적이 있다.
그날 나는 3시간 동안 워밍업에 주루 연습, 피칭과 캐칭, 타격 연습을 했는데 끝나고 '문자 그대로' 토할 뻔했다. 그날 나는 코치님께 "평소에 근력 운동 하세요?" 하는 말을 들었는데, 평소 운동과 담을 쌓은 나는 야구를 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더욱 경외의 눈빛으로 선수들을 보게 되었다.
한편으로, '루즈해 보이는' 야구의 면모는 굉장한 장점이었다. 나는 야구에 입문한 이래 여러 친구들에게 야구를 전도했다.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하는 공간'으로써 야구장으로 초대한 뒤, 이닝 사이사이, 투수의 피칭 사이사이 나는 친구에게 야구 룰과 함께 지금 마운드와 타석에 선 선수들의 커리어 등을 설명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그들이 매력이 담긴 '짤' 등을 친구에게 보내며 해당 팀, 선수의 서사를 주입시켰다. 나중에는 친구가 먼저 나에게 짤과 함께 구단의 소식을 담은 기사 링크를 보내왔다. 그렇게 나는 20년 지기 여고 동창과, 나와 그에 버금가는 역사를 지닌 대학 동기를 야구, 아니 정확히는 NC 다이노스에 입덕시켰다.
내가 고향을 떠나온 뒤, 여러 잡음 끝에 창단한 구단이 NC 다이노스다. 이제는 수도권에 거주한 기간이 고향에서 지낸 기간을 넘어서지만, 인생 전체를 지배하는 성장기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그곳의 야구팀을 나는 좋아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2011년 창단해 다른 팀에 비해 역사와 전통이 짧은 언더독이라는 점, 자신이 거쳐 간 팀의 역사와 선수들 커리어는 줄줄 꿰는 해설위원들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라는 점 등은 내가 더 그악스럽게 NC를 응원하는 원동력이 된다.
2023년 정규시즌 4위였던 NC가 와일드카드, 준플레이오프를 거쳐 플레이오프에 이르는 가을야구 대장정을 이어갈 때, 나는 줄곧 야구장이었다. 창원에서 인천, 수원 등을 오가며 엄청난 체력 소모를 감당한 선수들에 대한 애잔함, '흥참동'(흥행 참패 동맹)의 일원인 비수도권 지역 구단의 설움, 당시 에이스 투수였던 에릭 페디를 두고 '태업' 운운하던 기사에 대한 분노에 더해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는 팀을 응원하고픈 마음 때문이었다.
결국 NC는 플레이오프에서 KT 위즈에 패해 한국 시리즈 진출이 좌절됐지만, 정말로 그 시즌은 '졌잘싸'였다. 이것이 모두 나의 NC 입덕 첫 해에 일어난 일이다. 그리고 2024년은 9위, 올해는 7위(7월 13일 기준)다. 역시 첫 끗발이 개끗… (부정타니까 더는 말하지 말자)
또한 팀 내 최고참들이 나와 동갑내기라는 사실은, 내가 NC에 과몰입하게 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보통의 직장에서 30대 후반은 '과장', '차장' 정도의 직함을 갖는다. 근데 누구보다 인생을 빨리 사는 저들은 그 나이에 '최고참'이라는 무게를 짋어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에이징 커브'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에의 두려움을 느끼며, 뼈 마디마디 몸의 이곳 저곳을 수선해가며 야구장에 오르는 인생에 대한 고찰… 그래서 나는 NC의 최고참인 손아섭·이용찬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는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굳센 의지의, 행동하는 NC 팬들을 좋아한다. 지난 3월 29일 NC파크에서 구조물이 추락해 NC팬 한 분이 사망한 이후, 한동안 NC파크는 팬들이 붙인 추모의 메시지와 꽃다발로 뒤덮였다. 이후 KBO와 창원시의 책임 회피를 규탄하며 트럭 시위에 나선 여성 야구팬들과(여기에는 10개 구단 팬들이 힘을 합쳤다), 희생자의 49재를 기려 근조 리본을 만들어 나눈 팬,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라던 <어른 김장하>의 주인공 김장하 선생까지. 내란 국면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더해 NC파크 참사가 안긴 분노와 슬픔 때문에 한동안 야구를 멀리하던 나와 달리, '열렬히 고쳐 쓰기'를 택한 '엔팬'들의 우직함을 사랑한다.
창원시에 요구한다
야구를 알고, NC를 알고, 나의 삶은 급격히 풍성해졌다. 며칠 전, 20년 지기 여고 동창의 결혼을 맞아 친구들과 '브라이덜 샤워'를 했다. 도구리, 창원 시민의 날, 드래프트, 홈 등 갖가지 버전의 NC 유니폼을 입고서였다. 나는 2년 전, NC파크에서 여고 동창들과 조우했다. SNS를 통해 내가 NC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십수 년 세월을 건너 연락 온 친구 덕에 만들어진 '야구 동창회' 자리였다.
그해 NC와 KT의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는, '드디어' 아빠와 직관하기도 했다. 누가 더 야구를 아는지로 티격태격해가며. 인스타그램에 NC 선수들의 '짤'을 올리는 팬 계정을 운영하며 전국의 NC 팬들을 만났고, 종종 야구 얘기를 써서 매체에 기고했으며, 강연을 할 때도 야구 얘기로 예시를 들고, 또 뭐더라… 인생 처음으로 PD가 되겠다며 <최강야구>에 지원했다가 탈락하기도 했다.
덕질 시 집요함 대비, 지구력이 떨어지는 나이지만 예외적으로 야구와 NC 다이노스는 꽤 오래 좋아할 거 같다. (벌써 3년 차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창원시에 요청(혹은 경고)한다. 다이노스를 잃지 말라.
▲2023년 6월 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의 경기를 관람하는 나.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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