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2 국무회의에서 최창윤 총무처장관이 임시국회 소집요구 제안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국가기록원 영상 캡처
그런데 총무처장관의 발언이 끝난 직후였다. 조용하지만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김영삼의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된 상태에서, 화면 밖의 누군가가 발언 기회를 요청한다(당시 법제처장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 않다).
벗은 안경의 다리를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김영삼은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더니 "네네, 말씀해보세요"라고 말한다. 재무장관과 총무처장관에게 발언 기회를 줄 때는 직함을 호명했던 김영삼은 이때는 그러지 않는다. 예정에 없었던 일이라 그랬던 모양이다.
차분하고 조용한 그의 발언에서는 국무회의의 근간에 영향을 주는 이의제기가 나왔다. 대통령이 꺼내든 긴급명령이라는 카드가 지금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긴급명령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만, 긴급재정경제명령이라는 용어가 정확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을 꺼낸 그는 사전에 준비한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헌법 제76조 제1항(긴급재정경제명령 및 처분)과 제2항(긴급명령)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는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포하려면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가 있어야 한다는 점과, 긴급명령을 발포하려면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상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자신의 제안이 용어상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발언 서두에서도 '용어'라는 말을 두 번이나 쓰고, 말미에서도 "명칭만 수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발언이 회의장에서 일으킬 파장을 줄이기 위해서였는지, 그는 '다른 법적 카드를 써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다른 용어를 쓰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했기 때문인지 김영삼은 그의 제안을 대번에 수용한다. "그렇게 하죠"라는 시원한 대답이 김영삼에게서 나온다. 그러더니 그는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키며 "명칭을 수정하도록! 바로 적어요"라고 지시한다. 이날의 국무회의가 회의 내용을 기록하는 가운데 차분하게 진행됐음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그런데 "바로 적어요"라고 지시한 직후에 김영삼의 입에서 "대변인 어디 갔어?"라는 말이 나온다. 잠시 뒤 "대변인 또 나가버렸네"라는 중얼거림이 튀어나온다. 대변인이 자리에 없음을 확인한 그는 법제처장의 말대로 수정할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다. 그러고 나서 각 부처에 대해 개별 지시를 하고 국무회의를 끝낸다.
금융실명제 정착, 그날의 국무회의가 한몫했다
▲1993년 8월 12일 국무회의에서 금융실명제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
국가기록원 영상 캡처
금융실명제에 관한 'YS 국무회의'는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조용하지만 중요한 토론도 있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장관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무회의를 100여 차례 참석했지만, 이번 국무회의처럼 실질적으로 열띤 토론이나 의사 전달이 있었던 것은 처음"이라며 12·3 비상계엄 선포를 높이 평가했다. 정말로 이런 평가를 들어야 할 대상은 12·3이 아니라 8·12 국무회의였다.
그날의 국무회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면 김영삼 정부는 뒤늦게 조롱을 받았을 것이다. 헌법 제76조 제2항이 요구한 "중대한 교전상태"도 없이 무슨 긴급명령을 발포하느냐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윤석열이 비상계엄 선포 뒤에 받은 비판을 김영삼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김영삼 정부는 긴급명령과 긴급재정경제명령의 차이도 구분하지 못하느냐는 비아냥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선포하지 않고 긴급명령을 선포했다면 금융실명제가 초장에 좌초됐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날의 국무회의가 제대로 진행돼 오류를 시정할 기회가 있었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못했다. 경제정의를 한 단계 진전시킨 금융실명제가 정착할 수 있었던 데는 그날의 합법적이고 절차를 지친 국무회의도 한몫했다. 그 국무회의를 12·3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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