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바이올린을 위한 독주' 뒤셀도르프미술대학 공연.
열음사
이 공연에서 백남준은 탁자 앞에 선 채로 바이올린을 서서히 들어 올린다. 이 장면에 최장 5분이 소요됐다. 그가 악기를 내리치려는 순간, 객석에 있던 바이올리니스트가 경악한다. "자신이 밥 먹고 사는 악기가 어느 하찮은 동양인에 의하여 박살이 나려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항의였다"고 이용우 책은 말한다.
바이올리니스트는 문화 테러리스트를 향해 "바이올린을 살려줘라"라고 버럭 고함을 쳤다. 바이올리니스트는 악기를 부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객석에 있던 건장한 남성이 "이봐 콘서트 방해하지 마!"라고 고함쳤고, 뒤셀도르프시립관현악단 단원인 그 바이올리니스트와 언쟁을 벌였다. 건장한 남성은 바이올리니스트를 공연장 밖으로 쫓아냈고,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는 순간에 백남준은 쿵 하고 내리쳤다. 그것으로 공연은 막을 내렸다.
전통적인 바이올린 독주에서는 바이올린이 소리를 내고 관객은 듣기만 한다. 백남준의 바이올린 독주에서는 바이올린이 아니라 관객들이 소리를 낸다. "대체 뭐 하려고 저러나?", "저 비싼 바이올린을!", "바이올린을 살려줘라!", "콘서트 방해하지 마!" 등의 말을 한다.
그러다가 청중들이 몸싸움을 벌인다. 바이올린이 연주자의 어깨 위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관객들이 객석에서 험악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 모든 것이 백남준 공연의 일부였다. 전통의 상징인 바이올린은 침묵하다가 훼손당하고, 관객이 떠들고 몸싸움을 벌이며, 전통을 옹호하는 관객이 쫓겨나는 것이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다. 이 세상에서 누가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지를 웅변하는 공연이었다.
1984년 1월 1일 공연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인의 뇌리에 백남준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파리와 뉴욕에 스튜디오를 두고 한국·일본·독일 등에 송출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생중계 쇼인 이 작품의 주제는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1984>가 틀렸다'라는 점이다.
오웰은 1984년이 되면 독재자 빅 브라더가 텔레비전 스크린으로 사회를 감시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백남준은 100명 정도의 행위예술가를 동원한 이 쇼에서 '인간은 TV에 결코 정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과시했다. 그런 뒤 '인간은 이렇게 TV와 인공위성을 통해 세계적 연대를 구성하고 있다. 조지 오웰은 틀렸다'는 메시지를 세계인들에게 보냈다.
백남준은 세계 대중이 기성 권력에 굴복해서는 안 되며 적극 저항하고 참여해 무대의 주연배우가 돼야 한다고 외쳤다. 인류가 소수 그룹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위적인 방법으로 전달했다. 그것이 그의 공연을 일관하는 메시지다.
우리는 세상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선구자의 모습에서 어른의 풍모를 발견한다. 백남준이 가자고 하면서 가리킨 곳은 평등하고 정의로운 대중의 세상이다. 그는 정치가나 교육자 혹은 성직자 같은 직업이 아닌 행위예술가라는 이례적인 직업 영역에서 이 세계의 어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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