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7.13 19:47최종 업데이트 25.07.13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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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아직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다. 대중의 권력이 그나마 가장 발달한 분야인 정치 영역에서도 국민이 아닌 국회와 대통령이 실질적 주인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나 종교·교육·문화·군대·스포츠 등에서는 봉건적인 지배구조 혹은 의사결정 시스템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투표일에 주권자의 기분을 살짝 느낀 대중은 다음날 직장·종교·군대·학교 등에서 전혀 다른 지위에 놓인다. 대중이 없이는 그런 곳이 굴러갈 수 없지만, 거기서 그들은 유권자가 아니다.

1985년 6월 22일 백남준씨가 '비디오 아트와 TV프로그램'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연합뉴스

엉클어진 머리에 흰색 와이셔츠와 멜빵바지를 입고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을 마구 부순 백남준(1932~2006)의 행위예술은 그런 구도에 대한 도전이었다. 대중이 세상의 관객이 아니라 주연 배우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메시지였다. 한국에서는 괴짜 이미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68혁명으로 상징되는 물결이 서구사회를 지배할 당시 그곳에서 활동한 백남준이 외친 것은 그것이었다.

1963년에 행위예술가 5년차인 백남준을 만난 뒤 동료 겸 친구 겸 애인처럼 지내다가 1977년에 결혼한 사람은 행위예술가 구보다 시게코(1937~2015)다. 그는 <나의 사랑 백남준>에서 "혼돈스럽고 무질서해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는 뚜렷한 사상에 기초한, 그래서 분명한 지향점을 지닌 것들이었다"라며 백남준 예술의 특징을 요약한다.

"그의 정신세계를 관통하는 사상은 당시 독일 내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플럭서스(Fluxus) 운동이었다. '흐름'이라는 뜻을 가진 플럭서스 운동은 무정부주의·허무주의 등을 신봉하는 다다이즘과 맥을 같이한다.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의외성을 기초로 한 반자본주의적 성향의 예술적 행동주의다."

다다이즘(dadaism)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으로 인해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잠시 피로해졌을 때 힘을 얻은 현상이다. 디터 티만 프랑스 투르대학 교수를 비롯한 13인이 공저한 <새 유럽의 역사>는 다다이즘이 출현한 1920년대 풍경을 묘사하면서 "일부 여성들은 어머니와 가정주부로서의 역할에 만족하기를 거부", "여가는 더 이상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등의 설명을 한다.

플럭서스 운동은 자기만족을 위한 예술을 반대했다. 예술은 사회진보에 기여해야 한다는 게 플럭서스의 철학이다. 문화이론가인 이용우 전 고려대 교수의 <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 예술>에 따르면, 플럭서스 창시자인 조지 마키우나스(1931~1978)가 독일 시인 토마스 슈미트에게 쓴 편지에 그런 철학이 나타난다.

마키우나스는 "우리가 예술을 한답시고 사회정치적 문제들로부터 이탈한다면 우리의 행동은 모든 의미를 잃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이 사회와 행동을 같이하여 새로운 물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남준이 뛰어든 곳은 그런 흐름이었다.

예술가가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대중은 감상만 하는 것이 전통적인 풍경이다. 백남준은 그것을 거부했다. 피아노를 부수고 바이올린을 부순 것은 그것에 대한 거부였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에서 형상화되는 전통의 권위를 깨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대중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하게 만들었다. 그가 처음 공연을 할 당시만 해도, 대중과 예술가의 공동 창작은 낯선 개념이었다. 그는 이것을 친숙한 개념으로 만들고자 했다. 공동 창작을 통해 '대중이 주인이다'라는 메시지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버지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백남준아트센터 2013년 전반기 상설전 '부드러운 교란_백남준을 말하다'에 소개된 'TV침대'.백남준아트센터

1972년에 그는 <TV 침대>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TV는 국가권력과 재벌자본가들의 이념을 유포하는 데 많이 동원된다. 요즘에는 CF 모델뿐 아니라 극중의 배우들도 기업 제품을 노골적으로 홍보한다. 이런 속에서 대중은 TV를 매개로 정치권력과 자본의 노예가 되기 쉽다. 이 작품은 그것에 대한 도전이나 조롱이었다.

작품에 등장한 TV 여덟 대는 천장을 향해 눕는다.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화면이 옆을 향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 TV들은 그것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인다. 작가가 하는 일은 TV가 천장을 응시하도록 하는 데까지다. 그다음은 관객의 몫이다. 백남준은 TV 위에 관객들이 누워보도록 한다. 관객이 눕는 순간, 작품은 완성된다. 이 물건에 대한 관객의 지배가 그렇게 형상화된다.

이 같은 행위예술은 백남준의 집안 분위기와 배치됐다. 그의 집안은 유명한 섬유회사 가문이다. 조선왕조 때는 왕실 상복을 독점 공급한 시전상인 집안이었다. 해방 후 최대 섬유업체인 태창방직이 그의 집이 운영하는 회사였다.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제4-7권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 백낙승은 일제를 위해 군용기 제작 비용 등을 헌납했다. 또 침략전쟁에 편승해 군수업체도 경영했다.

백낙승은 친일세력인 이승만 정권에도 자금을 댔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정권을 위한 무기 밀매에도 관여했다. 국군에 제공될 무기였다면 밀매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1949년에 이승만이 사실상의 사병부대인 청년방위대 결성을 추진한 사실을 감안하면, 청년방위대와 관련된 무기 밀매였을 가능성이 크다.

백남준은 아버지의 길이 싫었다. 위의 이용우 책에 따르면, 1949년에 17세 소년 백남준은 싱가포르에서 아버지를 찾아온 사람의 짐 속에 체코제 자동소총이 가득한 것을 보고 놀랐다. 그는 그런 일이 싫었다. 또 "사업을 하기 위해선 로비를 해야 하고 거짓말을 태연하게" 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경기중과 도쿄대학을 거쳐 1956년에 독일로 유학 간 그는 그곳에서 아버지의 길과 정반대인 플럭서스의 길을 걸었다. 아버지가 보내준 돈으로 공부도 하고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을 사서 때려 부수기도 하며 반자본주의운동을 벌였다. 돈의 출처와 돈의 사용처가 상호 모순관계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가 돈을 쓰는 방식은 돈의 출처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었다.

아버지의 돈을 활용해 비싼 물건들을 때려 부수며 행위예술을 펼친 백남준은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칭호를 얻었다. 아버지의 재산과 더불어 이런 칭호도 그의 행위예술에 도움이 됐다. 그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그의 작품 일부가 되는 일도 있었다. 독일 예술도시 뒤셀도르프에서 서른한 살 때인 1962년에 공연한 '바이올린 독주'가 그 일례다.

행위예술가라는 세계의 어른 역할

1962년 '바이올린을 위한 독주' 뒤셀도르프미술대학 공연.열음사

이 공연에서 백남준은 탁자 앞에 선 채로 바이올린을 서서히 들어 올린다. 이 장면에 최장 5분이 소요됐다. 그가 악기를 내리치려는 순간, 객석에 있던 바이올리니스트가 경악한다. "자신이 밥 먹고 사는 악기가 어느 하찮은 동양인에 의하여 박살이 나려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항의였다"고 이용우 책은 말한다.

바이올리니스트는 문화 테러리스트를 향해 "바이올린을 살려줘라"라고 버럭 고함을 쳤다. 바이올리니스트는 악기를 부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객석에 있던 건장한 남성이 "이봐 콘서트 방해하지 마!"라고 고함쳤고, 뒤셀도르프시립관현악단 단원인 그 바이올리니스트와 언쟁을 벌였다. 건장한 남성은 바이올리니스트를 공연장 밖으로 쫓아냈고,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는 순간에 백남준은 쿵 하고 내리쳤다. 그것으로 공연은 막을 내렸다.

전통적인 바이올린 독주에서는 바이올린이 소리를 내고 관객은 듣기만 한다. 백남준의 바이올린 독주에서는 바이올린이 아니라 관객들이 소리를 낸다. "대체 뭐 하려고 저러나?", "저 비싼 바이올린을!", "바이올린을 살려줘라!", "콘서트 방해하지 마!" 등의 말을 한다.

그러다가 청중들이 몸싸움을 벌인다. 바이올린이 연주자의 어깨 위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관객들이 객석에서 험악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 모든 것이 백남준 공연의 일부였다. 전통의 상징인 바이올린은 침묵하다가 훼손당하고, 관객이 떠들고 몸싸움을 벌이며, 전통을 옹호하는 관객이 쫓겨나는 것이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다. 이 세상에서 누가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지를 웅변하는 공연이었다.

1984년 1월 1일 공연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인의 뇌리에 백남준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파리와 뉴욕에 스튜디오를 두고 한국·일본·독일 등에 송출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생중계 쇼인 이 작품의 주제는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1984>가 틀렸다'라는 점이다.

오웰은 1984년이 되면 독재자 빅 브라더가 텔레비전 스크린으로 사회를 감시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백남준은 100명 정도의 행위예술가를 동원한 이 쇼에서 '인간은 TV에 결코 정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과시했다. 그런 뒤 '인간은 이렇게 TV와 인공위성을 통해 세계적 연대를 구성하고 있다. 조지 오웰은 틀렸다'는 메시지를 세계인들에게 보냈다.

백남준은 세계 대중이 기성 권력에 굴복해서는 안 되며 적극 저항하고 참여해 무대의 주연배우가 돼야 한다고 외쳤다. 인류가 소수 그룹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위적인 방법으로 전달했다. 그것이 그의 공연을 일관하는 메시지다.

우리는 세상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선구자의 모습에서 어른의 풍모를 발견한다. 백남준이 가자고 하면서 가리킨 곳은 평등하고 정의로운 대중의 세상이다. 그는 정치가나 교육자 혹은 성직자 같은 직업이 아닌 행위예술가라는 이례적인 직업 영역에서 이 세계의 어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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