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4 오토모빌리티 행사에 테슬라의 로보택시가 전시되어 있다.
AFP 연합뉴스
머스크의 권력은 단순히 한 산업 분야의 성공에서 나오지 않는다. 테슬라는 전기차 제조사이자 배터리 기술과 자율주행 알고리즘, 에너지 그리드 솔루션을 통합한 플랫폼 기업이다. 이로써 그는 운송과 에너지, 인공지능을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결합하며, 국가 차원의 에너지·교통 인프라에 필적하는 통제권을 쥐고 있다.
스페이스X와 스타링크 역시 마찬가지다. 로켓 발사 기업으로 시작한 스페이스X는 위성 인터넷망 스타링크를 통해 전 세계 통신망의 대체 권력을 구축하고 있다. 플랫폼, 인공지능(AI), 우주기술, 통신이라는 네 축은 개별 산업을 넘어 기술자본주의가 기존 국가 체계 위에 새로운 규칙과 표준을 덧씌우는 다층적 권력 구조를 형성한다.
록펠러의 석유 제국과 포드의 자동차 왕국은 산업자본주의가 국가 권력과 결합해 어떻게 거대한 재벌 체제를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의 권력은 국가의 틀 안에서, 국가가 정한 법과 규칙 속에서 성장하고 유지됐다.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을 지배함으로써 권력을 가졌지만, 그 존재 조건은 국가 시스템의 유지였다.
그러나 기술자본은 산업자본처럼 국가의 틀 안에 안착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가 규정하는 질서 위에 자체의 규칙을 덧씌우고, 나아가 기존 권력 질서를 재편할 가능성까지 품고 있다. 국가가 더 이상 유일한 규칙 설정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들은 이미 보여줄 준비를 마친 듯하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데이터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 도로에서 수집된다.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는 국가별 통신 규제를 우회해 지구 전역 어디에서나 인터넷을 제공한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 축적되는 데이터와 통신망은 머스크의 기업들이 이미 '국경 없는 권력'을 실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술자본의 권력은 단지 막대한 자본을 소유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이들의 자본력은 웬만한 건실한 국가의 1년 국내총생산(GDP)보다 크다. 2024년 말 애플의 시가총액(약 2.9조 달러)은 프랑스의 GDP(약 3조 달러)와 맞먹고, 같은 시기 아마존의 시가총액(약 1.5조 달러)은 한국의 GDP(약 1.7조 달러)에 근접한다.
이들이 국가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은 자본의 규모 때문만이 아니다. 그 권력은 기술을 통해 국가가 독점해 온 통제 기능을 대체하고, 나아가 새로운 규칙과 질서를 설계할 수 있다는 데서 나온다. 국가의 승인 없이도 사회의 기본 구조를 운영할 수 있다는 확신, 그것이 기술자본 권력의 핵심이다.
이것은 단순한 시장 지배를 넘어선다. 인간 사회의 이동과 소통, 사고와 의사결정의 구조 자체를 다시 쓰는 권력이다. 기술은 더 이상 국가의 정책을 보완하는 수단이 아니라, 국가 위에서 질서를 재편하는 독자적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 국가가 관리해 온 질서의 언어 위에 기술자본은 자신들만의 언어를 덧씌우고 있다.
기술자본의 '첫 정치 실험'

▲3월 30일(현지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그린베이에서 주 대법원장 선거를 앞두고 열린 보수 성향 대법원장 후보 지지 집회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가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머스크가 적어도 단기적 목표로 삼은 것은 특정 지위를 쟁취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그가 창당을 통해 내건 전략은 중간 선거에서 상원 2~3석, 하원 8~10석의 캐스팅보트를 쥐는 것이다. 미국 의회 권력 구조의 균형을 뒤흔들 수 있는 최소 단위의 권력, 그러나 논쟁적 법안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힘. 그는 그런 권력을 원하고 있다.
머스크의 정치 프로젝트가 품고 있는 함의는 단순하지 않다. 이미 테슬라와 스페이스X, 스타링크를 통해 그는 에너지, 운송, 통신, 우주라는 국가적 인프라 영역에서 사실상의 '국가 밖 권력'을 구축해 왔다. 이제 그는 의회의 캐스팅보트를 통해 국가 시스템의 규칙을 흔드는 정치 실험에 들어서려 한다.
역사는 종종 권력의 명목과 실질이 분리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프랑스 혁명의 발발은 봉건 귀족이 무능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금융과 상업, 제조업을 통해 실질적 생산력과 자원의 통제권을 장악한 부르주아 계급이, 여전히 '왕'이라는 상징 권력 아래 묶여 있던 권력 구조를 깨뜨린 사건이었다.
혁명이 귀족 계급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었다. 이미 붕괴된 귀족 기득권 사회의 몰락이, 혁명이라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공식화된 것뿐이었다. 경제권력과 산업권력, 문화권력의 통제권은 이미 부르주아 계급으로 넘어가 있었고, 혁명은 단지 권력의 명목을 실질에 맞게 재배치하는 절차였다.
어쩌면 오늘의 기술자본과 국가권력의 긴장도 그런 역사적 권력 전환의 전주곡일지 모른다. 기술자본은 아직 국가의 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국가가 장악하지 못하는 질서와 통제를 현실에서 작동시키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경제적 헤게모니를 넘어 사회와 정치의 구조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머스크의 신당 창당과 캐스팅보트 전략은 어쩌면 기술자본이 국가 위에 새로운 통치 패러다임을 덧씌우려는 첫 정치 실험일 수있다. 그의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 최고 권력자의 총애를 받다 반기를 들고 파국을 맞은 러시아의 프리고진처럼 머스크 역시 국가라는 체제의 자가면역 반응에 제거될지도 모른다.
혹은 아닐 수도 있다. 산업자본주의가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뒤 국민국가를 탄생시켰듯, 기술자본주의는 결정체처럼 단단한 국민국가 체제를 무력화하고, 그 위에 전혀 다른 통치 질서를 세울지도 모른다. 국가라는 제도가 더 이상 주권의 최종 보루가 아닐 수도 있다는, 냉혹하면서도 경이로운 미래의 기척. 우리는 지금, 그 문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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