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6월 10일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 박종철 열사의 추모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모습. 509호는 박종철 열사가 경찰 물고문을 받다 숨진 조사실이다.
공동취재사진
짐작건대 구보승은 단 한 번도 살면서 "인간을 위한 공간"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건축 공부를 하면서 배웠던 건축학 교재에 나온 뻔한 구절인 '인간을 위한 공간, 인간을 위한 건축' 따위의 말을 생각했을 것이다. 법률을 공부하면서 '인간을 위한 법'을 책에서는 배웠지만, 그것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보이는 법 기술자들처럼.
여재화는 점점 진척되어 가는 건축 과정에서 의심에 빠진다. 도구적 합리성의 구멍을 느끼기 시작한다.
"한데 이 취조실은 채우면 채울수록 공허함만 커졌다. 건축의 본질이나 사명, 순수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가라앉고 이제는 세속이나 명욕 같은 불순물만 남았다고 여겼던 여재화였지만, 이 공간과 이곳에서 머무를 이들을 상상할 때면 잊었던 초심이 저변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것 같았다. 건축 위에 사람이 있다고 믿었던 한 시기가 서서히."
여재화에게도 "건축 위에 사람이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사람을 고문하는 건물을 설계하고 진행하면서 그는 "잊었던 초심"을 떠올리게 된다. 왜 건축을 하는가라는, 목적 합리성에 따른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모든 물음은 고통스러운 법이다. 고통스럽기에 떠오른 물음을 외면하려 든다.
"구보승이 저렇게 거침없는 이유는 그저 뭘 몰라서라고. 건축 위에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라서라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나보다 저놈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모르는 것이 부처라고, 나와 달리 저놈은 일말의 연민이나 부채 없이 이 공간을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일을 할 때, 특히 사람과 관계된 일을 할 때 "일말의 연민이나 부채 없이" 일을 하게 요구하는 것이 도구적 합리성이 지배하는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쉽게 말해, 생각하지 말고 따지지 말고 그냥 시키는 일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것.
구보승은 그런 도구적 합리성을 철저히 구현한다. 고문실에 "암전이 되거나 인질극을 도모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반드시 전등갓에 철제 덮개를 씌우라는 메모를 읽으며 재화는 혀를 내둘렀다. 이상을 뺀 지독한 합리주의군.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겠지만." 이것도 재능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는 재능은 악마의 재능이 된다. 그런 구보승조차 막상 세워지는 건물을 보면서는 자신의 확신이 흔들린다. "도면이 완성되고 시공에 들어가자 모든 확신이 모호해졌다.
자신이 치밀하게 설계한 것들이 무얼 위함이었는지 자신조차도 알 수 없어졌다. 허나 오기 때문인지 객기 때문인지 구보승은 여재화 앞에서 끝내 단언하고 말았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기이든 객기이든 그렇게 확신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부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건 고문실도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고 자기 합리화하는 것이다. 역시 우리 시대에 많이 발견하게 되는, 자신이 하는 일의 인간적 의미는 애써 외면하고 도구적 합리성으로 매사를 판단하고 행동하는 지식인들, 엘리트들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추진한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게 묻는다

▲이진숙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정 대학을 거명해서 씁쓸하지만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주장하는 소위 '서울대 10개 만들기론'을 보면서도, 나는 이런 도구적 합리성의 문제를 떠올린다. 서울대를 비롯한 학벌 대학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세히 논할 수 없다. 지난 반년 동안의 내란 사태는 서울대가 대표하는 엘리트 교육의 실상을 드러낸 건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적지 않은 이들이 서울대의 특정 단과 대학과 특정 학과를 내란 대학, 내란 학과라고 비웃었겠는가. 그런 비웃음이 옳다는 뜻이 아니다. 왜 그런 비아냥이 나왔는지를 성찰하는 게 먼저다.
그래서 묻게 된다. 철저히 도구적 합리성으로 무장한 헛똑똑이들이 나라를 어떻게 망쳤는지를 따져보지 않고,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교육 정신·교육 철학과 방안을 고민하지 않고, 지역균형발전의 정신과 방도가 무엇인지를 찬찬히 따져보지 않고, 전국에 서울대 같은 학벌 대학을 10개든 수십 개든 만들면 문제가 해결될까? 오히려 문제를 더 확산시키는 게 아닐까?
교육조차 국가 경쟁력의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한가한 소리로 들리겠지만(이런 게 전형적인 도구적 합리성의 시각이다), 지금 대학을 비롯한 한국의 학교 체제에 '교육'은 없다. 있는 것은 입시 준비와 취업 준비다.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지킬 시민을 잘 기르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다. 원래 교육(敎育)의 의미가 가르쳐서(敎) 기른다(育)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기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다시 묻는다.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이런 교육 정신과 철학을 갖고 있는가? 이것 말고도 다수 논문 표절 의혹, 충남대 소녀상 철거 시도, 국립대 통합 졸속 추진과 실패, 환경 파괴를 고려하지 않는 교내 반도체연구소 일방 추진 등 교육의 미래를 설계할 능력과 교육철학이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난마처럼 얽힌 교육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장관 후보자가 있을 거라고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도구적 합리성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치고 기르는 교육의 문제를 깊이 숙고하는 후보자, 구보승 같은 괴물을 만들어내지는 않는 교육을 고민하는 후보자는 찾을 수 있다. 그렇게 하길 대학 선생이자 시민으로서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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