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드는 점자키트 점킷루트임팩트가 도서출판 점자, 노플라스틱선데이와 만든 점자키트 점킷. 원하는 문구를 입력하면 점자 핀을 꽂아 점자 안내판을 직접 만들 수 있는 키트를 보내 준다. 점자 안내판 제작 부담을 낮추는 한편 대중성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제작됐다.
루트임팩트
- 손수 제작하는 (Do-it-yourself) 형태의 점자 안내판인 '점킷'이나 '행사 기획자를 위한 접근성 가이드'를 개발하게 된 배경도 궁금하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에 비해 시각장애인은 겉으로 보기에 잘 티가 안나고 당시에 입주해 있던 시각장애인 멤버도 없었다 보니, 공간을 개선할 때에도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많이 간과하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이 없어서 접근성 개선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접근성이 낮아서 시각장애인 멤버가 없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시각장애인 접근성 개선을 위한 첫 번째 시도로 점킷에 대한 최초 아이디어를 기획하여, 도서출판점자와 노플라스틱선데이에 제품 개발을 제안했다.
점자블록을 실내 동선마다 다 깔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임대인과의 협의가 많이 필요하다. 점자블록 설치 관련 규정을 보면 시각장애인들이 반드시 보조인과 다닌다는 걸 전제로 해서 만들어 놓은 것 같다는 한계도 있었다. 고심 끝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의 변화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점자 표지판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게 할 수 있는 '점킷'을 개발했다.
웹사이트에 점자로 번역하고 싶은 문구를 넣고 출력된 점자를 점자 핀으로 꽂아서 점자 표지판을 직접 만들 수 있다. 점역과 유통은 도서출판 점자가 담당하고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점자 표지판은 노플라스틱선데이에서 생산하는 식으로 1년에 걸쳐 개발했다.
2024년에는 장애 당사자를 고려하는 <
행사 기획자들을 위한 접근성 가이드>도 펴냈다. 실제 상당수 행사기획자들은 장애 접근성을 고려하고 싶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더라. 브릭스 운영 경험과, 장애 관련 조직들의 조언을 받아 직접 가이드를 만들었다. 사실 우리 루트임팩트가 행사를 기획할 때 고려해야 할 내용을 빼먹지 않고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가이드를 만들며 20번 넘게 수정하는 등 고민이 많았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가이드를 쉽게 만들 수 있을까? 혹시 영어 표현이 너무 많은 건 아닌가? 등등… 하지만 일단 배포해야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업데이트하겠다는 신념으로 가이드를 제작했다. 누구나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게 해 두었다."
상상력이 필요하다
- 유리님처럼 생각하는 건축학도, 건축사들이 많아야 현장이 바뀔 수 있을 텐데, 건축학과에서 접근성 교육을 더 확대해야 하지 않을까?
"상도 받고 여러 시도를 하다 보니 건물 투어 요청이 가끔 들어온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유니버설디자인투어'라는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어 무의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 특히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신청이 들어오면 가급적 (조금 저렴하게라도) 꼭 하려고 한다. 이런 투어를 통해서 인식 향상이 되었으면 해서다.
꼭 장애 당사자가 가족이나 친구여야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학교에서, 특히 건축학과에서 장애당사자들을 만나는 경험을 토대로 배리어프리 등 접근성 교육을 강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시절을 돌이켜 보면 관련 수업 들을 때만 약간 신경을 썼지 다른 과목에서는 접근성을 신경 쓰지 않았던 기억이다. 사회인이 될 수록 뒷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헤이그라운드 투어에 오시는 분들께 저는 늘 '구체적인 누군가를 상상해 보았으면 한다'고 말한다(실제 노유리 매니저의 유니버설디자인 투어 강연 슬라이드에는 유튜버 굴러라구르님, 박위, 스티븐 호킹 박사의 사진이 들어 있다). 또한 우리 공간에 대한 자랑만 하기보다는 공간 투어에 동행하는 장애 당사자 멤버들이 '이 공간에서는 이런 점이 부족하다'는 점을 이야기하도록 한다. 투어 참여자들에게 공간 접근성에 대한 상상력이 생겼으면 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돌아갔으면 해서다."

▲모임공간 브릭스 성수 룸에 설치되어 있는 낮은 싱크대루트임팩트가 운영하는 헤이그라운드 브릭스 성수는 낮은 싱크대, 휠체어 바퀴 간섭이 없는 리셉션 데스크 등 휠체어 이용자나 어린이들도 쉽게 이용 가능한 접근성 요소가 돋보인다.
루트임팩트
- 접근성, 유니버설디자인에 대해 고민하는 공간 기획자로서 건축 접근성이 확대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결국 건축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장애 당사자들의 건물 이용 경험을 들어보면 현재 장애접근성 건축 기준 중에 미흡한 게 많다. 예를 들어 점자블록이나 장애인화장실은 너무 최소한도로만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점자블록 설치 규정의 경우 시각장애인이 동행인과 같이 왔다고 가정하고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여러 번 연습하지 않는 한 시각장애인들이 실내에서도 독립적으로 돌아다니기가 어렵다. 화장실도 이상적으로는 층마다 있어야 하는데 법에서는 건물당 남녀 화장실 1개씩만 요구하다 보니 장애당사자들이 불편을 겪는다. 신축 건물이야 장애접근성이 좋아졌지만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축(오래된) 건물에 대해서는 접근성 기준이 너무 관대하기도 하다.
사실 건축 쪽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장애 접근성 요소 반영에 대해 불평하기도 한다. 그런 불평에는 내 경험을 말해주는 편이다. 실제 (장애인) 고객들이 있다고. 진짜 존재한다고. 접근성 가이드를 만들기 위해 우리 공간을 이용하는 휠체어 이용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실제로 성수동에 휠체어 접근 가능한 카페를 찾기가 어려워 하는 수 없이 경사로가 있는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가게에서 인터뷰했던 경험 같은 것 말이다."
- 앞으로 건축 접근성에서 더 고민해 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재난이나 비상상황 때 어떻게 장애당사자들이 대피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헤이그라운드 멤버를 통해 '불이 나면 대피할 방법이 없다'는 고민을 들은 적이 있다. 재난 상황에서 항상 재난약자가 있다는 걸 가정하고 지금은 헤이그라운드 내 디지털 안내판에 대피 경로를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있다. 언젠가는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얼마 전 헤이그라운드 출입문에 출입카드를 대는 공간 위치가 휠체어 눈높이에 맞게 낮아졌다. 노유리 님은 '접근성은 그 자체가 완성이 아닌 과정'이라는 생각을 공간 기획을 통해 조용히 실천하는 사람이다. 나는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첫 단추가 물리적 접근성의 구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배리어프리나 유니버설디자인의 가장 최전선에 있는 이들은 건축 종사자다. 통합을 위해서는 일단 다양한 사람이 만날 수 있어야 하고 물리적 공간부터 접근 가능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건축 종사자에게 다양한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하는 통합의 기본 철학이 없다면 '건축적 요소'라는 미명 하에 분리가 정당화된다. 노유리님과 같이 공간 기획에서 접근성을 조용히 실천하는 건축 종사자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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