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신축한 대전 한화이글스볼파크 경기장에서 열린 한화이글스와 KT위즈와의 지난 6월 5일 경기에서 한화 팬들이 열성적으로 응원하고 있다.
우희창
이랬던 경기장의 폭력적인 응원 문화는 세월이 흐르면서 사라져 갔고 이제는 완전히 건전한 응원 문화가 자리 잡았다. 한화이글스의 응원은 KBO 리그에서 유명하다. 8회만 되면 야구장에 울려 퍼지는 "최·강·한·화!" 육성 응원은 경기장 분위기를 완전히 압도한다. 간혹 이 응원에 대거리하는 팀도 있지만 비교 불가다. 호루라기 소리에 이은 "최·강·한·화!" 소리는 "우리는 최강"이라는 주문이자 확신이다. 근데, '최강 한화'와 '무적 엘지'가 붙으면 도대체 누가 이기는겨?
'행복송'은 한화이글스 대표 응원곡이다. 팀이 지고 있는데도 "나는 행복합니다"를 연발하고 "한화라서 행복합니다"라고 외친다. 연패를 당할 때도 이 노래를 불렀던 한화 팬들은 사리가 나오거나 득도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지금은 대량 득점이 나거나 역전에 성공하는 경우에만 불러서 자주 들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는 '한화라서 행복'하다.
열정적인 응원은 기록으로도 나타난다. 한화이글스는 4월 13일부터 6월 5일까지 홈 24경기 연속 매진이라는 KBO 리그 신기록을 썼다. 전체 350경기 중 169경기가 매진을 기록했을 정도로, 응원 열기는 한여름 날씨만큼 뜨겁고 한국 프로야구를 녹이고 있다.
프로야구가 언제부터였나 되돌아보면 까마득하다. 대학 1학년 때인 1982년부터다. 무려 43년 전이다. 당시 충청 연고 팀은 원년 우승팀 OB베어스(현재의 두산베어스)였다. 박철순 투수와 큰 키의 1루수 신경식 선수가 기억난다. 신경식 선수는 공주고 출신으로 1루에서 양다리를 쭉 벌리며 포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학다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충청도에서는 그 옛날의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두산베어스는 애증의 팀이다.
3년 뒤 OB는 연고를 서울로 옮겼고 대신 한화가 충청을 연고로 한 '빙그레 이글스'를 창단한다. 모기업인 한화보다 빙과류 등 소비재를 판매하는 계열사 '빙그레'가 더 유명해서 그렇게 이름 지었다. 8년 뒤인 1993년 '한화 이글스'로 이름을 바꿨는데, 사실 나는 '빙그레'라는 이름이 더 정겹고 좋다.
빙그레는 창단 이후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주름잡았다.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해태 타이거즈에 번번이 가로막혔고 롯데 자이언츠에 목덜미를 잡혀 우승컵을 들지 못했지만 절대 강팀이었다. 탄탄한 타선과 투수력은 무시무시한 팀으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이정훈, 이강돈, 장종훈을 주축으로 한 타선은 한번 불붙으면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폭발하기 때문에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 불렸다. 화약을 생산하던 모기업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다. 연습생 출신 장종훈은 '홈런왕'의 대명사로 매년 타격왕을 휩쓸고, 2003년 프로통산 첫 1700 안타를 쳤다. KBO 최초의 단일 시즌 40홈런 달성자이자 최초의 3시즌 연속 단독 홈런왕으로 통산 340홈런을 기록한 선수였다.
투수진은 또 어떤가? 창단 초기 이상군과 한희민이 쌍두마차를 이뤘고, KBO 리그 통산 유일한 200승 투수이며, 역대 최다승, 최다 이닝의 기록을 보유한 송진우도 있다. 그는 노히트노런 기록도 가지고 있다. 정민철도 1990년대를 대표하는 선발투수로 명성을 높였고 그 역시 노히트노런의 역사를 썼다. 연습생 출신 한용덕도 국내 야구 경기를 평정한 막강한 투수였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승컵을 향한 열망은 1999년에 이뤄졌다. IMF 외환위기로 전 국민이 우울했던 그해, 롯데 자이언츠를 꺾고 드디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송진우, 정민철, 이상목이 맹활약했고 구원투수였던 구대성이 MVP로 선정됐다. 구대성이 등판하면 지지 않는다고 해서 붙은 '대성불패'란 별명은 명예로운 이름이었다. 로마이어와 데이비스, 두 외국인 타자의 활약도 돋보였다. 2001년 김태균이 신인왕을 차지하고 2006년 괴물 투수 류현진이 입단해 사상 최초로 신인왕과 MVP, 골든글러브 수상을 거머쥐는 등 영광은 이어졌다.
올해는 다르다, "꼭대기에 있으니 어질어질"

▲지난 5월 7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5 신한 SOL 뱅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9회 초 삼성 공격을 막아내고 10-6으로 승리를 확정 지은 뒤 한화 마무리 투수 김서현과 포수 이재원이 승리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2005년부터 장종훈, 송진우, 박찬호 등이 차례로 은퇴하고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면서 팬들은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 노래를 불렀다. 꼴찌 언저리가 편하게 느껴지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타팀 팬들에게 이글스는 '독수리'가 아니라 '치킨'으로 업신여겨졌다. '꼴찌하는 치킨'이라는 뜻으로 '꼴칰'이라고 불리는 수모를 당하고, 화나게 하는 2군팀 수준이라며 '화나 이군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런 무시와 비아냥에도 나는 여전히 이글스의 옛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응원을 멈추지 않는다. 매년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로 끝나더라도 '믿음의 야구', 아니 '응원'이다. 사람들은 시즌 초반에 잘하다가 중반에 무너지면 "첫 끗발이 개 끗발이여"하기도 하고 초반부터 무너지면 "애저녁에 글러 먹었구먼"한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이글스는 지난 5일 전반기 마지막 주말 키움과의 3연전을 모두 쓸어 담으며 33년 만에 전반기 1위를 확정지었다. 외국인 투수 원투 펀치 폰세와 와이스, 그리고 류현진과 김서현 등 국내 투수들의 활약 덕분이다. 10번째 선수 한화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도 한몫했으리라.
"어쩐 일이랴! 해가 서쪽에 떴남? 독수리 둥지에 볕이 들어오네?"
요즘 이글스 팬들에게 금기어가 하나 있다. '고산병'이란 말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생기는 병인데, 시즌 초반 고공행진을 벌일 때, 너무 높은 순위를 달성한 것을 두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지난 5월, 이 문구가 TV 중계에 잡힌 이후 연패에 빠지고 순위가 하락하자 팬들 사이에서는 입에 올리면 안되는 단어가 되었다. 그런들 어떠하리, 입에서는 그 말이 저절로 삐져나오는 것을. 웃음과 해학으로 인내하고 열정적으로 응원한 덕분에 갖게 된 행복인 것을.
"꼭대기에 있으니 어질어질 하구먼."
"아! 나는 고소증세가 왔는지 자꾸만 비실비실 웃음이 나오려고 혀"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이글스의 찐팬으로, 또 원년부터 한국 야구를 사랑해 온 한 사람으로서, 전국의 야구팬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날린다.
"저~~기 아래쪽 분위기는 워뗘유? 꼭대기에 있으니께 잘 모르것구먼유. 그래도 참고 기둘려봐유. 불철주야 성심성의껏 응원하다 보믄 좋은 날 만나지 않것슈? 우린 가유. 우승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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