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7.06 11:50최종 업데이트 25.07.0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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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건 하나를 구매해도 비닐, 종이, 플라스틱이 겹겹이 따라붙는다. 과대포장으로 인한 자원 낭비와 폐기물 문제가 전 세계적인 난제로 떠오른 가운데, 독일에서는 '운페어팍트(Unverpackt)'라는 대안적 소비 문화의 흐름이 퍼지고 있다. 독일어로 '포장되지 않은'이라는 의미의 '운페어팍트(Unverpackt)'는 매장에서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고 소비자가 직접 빈 용기를 가져와 제품을 필요한 만큼 담아 구매하는 방식을 말한다.[1]

일 베를린에 위치한 ‘오리지널 운페어팍트(Original Unverpackt)’의 제품 진열 모습Original Unverpackt

2014년 독일 베를린에서 문을 연 '오리지널 운페어팍트(Original Unverpackt)'는 독일 최초로 일회용 포장재를 완전히 배제한 슈퍼마켓이다.[2] 이곳에서는 식료품, 화장품, 청소용품 등 600여 종의 다양한 제품을 별도 포장 없이 판매한다.[3] 제품은 개별 포장 없이 투명하고 커다란 디스펜서에 담겨있으며, 소비자는 각자 가져온 빈 용기에 제품을 필요한 만큼만 덜어 담아서 구매한다.[4]

'오리지널 운페어팍트(OriginalUnverpackt)'는 "포장 광기에 맞서는 쇼핑(Einkaufen gegen denVerpackungswahnsinn)"이라는 슬로건 아래에, 포장재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기존 쇼핑 방식에 대안을 제시하고 지속 가능한 소비를 일상 속에 정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소비자가 더 의식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산업 전반에 변화의 계기를 일으키는 것 또한 목표이다. 경영 철학은 "제품의 전체 공급망에서 포장 없이, 최소한의 포장만 사용하는 것"이다.


당연히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는 비포장 매장 운영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 오리지널 운페어팍트 지점 관리자 파울리네는 서면 인터뷰에서 "많은 공급업체가 여전히 일회용 포장에 의존하며, 친환경적인 대용량 포장은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라며 "포장하지 않거나 재사용이 가능한 용기에 납품하는 유기농 공급업체를 찾는 일은 매우 어렵다"라고 말했다.

파울리네는 "유기농 등 알부 품목의 가격은 대형 체인점이나 할인점에 비해 저렴하지는 않은 편인데, 지속가능한 생산 방식과 공정한 유통, 소규모 구매량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매장 설계, 제품 배치, 운영 방식 등 모든 요소가 제로웨이스트 개념에 맞춰 조정되어야 하는 까다로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오리지널 운페어팍트(Original Unverpackt)’의 제품 진열 모습 Original Unverpackt

이 매장을 이용하는 고객은 자신만의 용기를 사용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계량 스쿱, 유리병 등을 이용해 구매할 제품을 직접 담아야 하는 수고에도 사람들이 '오리지널 운페어팍트'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울리네는 "고객 대부분이 포장재 없이 필요한 만큼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낀다"라며 플라스틱과 포장폐기물,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는 데에 기여한다는 "깬" 소비자 의식이 가장 큰 동인이라고 전했다. 지역 생산, 공정무역, 유기농 등 의식 있는 소비를 통해 고객이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에 참여한다고 강조했다.

강연, 워크숍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운페어팍트'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오리지널 운페어팍트'를 시작으로, 2024년 현재 독일에는 235개 운페어팍트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5]

미국 샌프란시스코 레인보우 그로서리(rainbow grocery)의 벌크코너레인보우 그로서리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레인보우 그로서리(Rainbow Grocery)'에도 '벌크(bulk)' 코너가 있다. 여기서는 포장 없이 대량으로 진열된 제품을 소비자가 개인의 포장 용기에 원하는 만큼 담은 후 무게에 따라 계산한다. 채소나 과일 외에 샴푸, 세제, 오일류 등 800개 이상 제품이 진열되어 있으며, 커피, 그래놀라, 올리브, 밀가루, 초콜릿, 쌀, 콩 등을 한 꼬집 또는 1파운드(약 450g) 어치만 구매할 수도 있다.[6]

일상이 된 과대포장

환경부에 따르면 생활폐기물의 35%는 포장폐기물이다.[7] 특히 명절 연휴 기간에 폐기물이 급증하는데, 명절 선물의 과한 포장이 주요 원인이다. 환경부가 전국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은 '추석 연휴 쓰레기 발생 현황'을 통해 2019년 11만 8412톤인 쓰레기가 2023년 19만 8177톤으로 4년 사이 1.6배로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8]

커지는 배달음식 시장에서도 포장폐기물이 문제다.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재질이라도 음식물에 오염되거나 비닐로 밀봉된 형태의 용기는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국내 상위 3개 음식 배달앱(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이츠)에서 배달음식 상위 10개 메뉴, 총 30종을 분석한 결과, 메뉴당 평균 23개(180.9g)의 일회용품이 사용됐다. 나무젓가락 등을 제외한 플라스틱 소재 용품은 메뉴당 평균 18개(147.7g)이다.[9]

배달음식에 사용된 플라스틱 사용량 조사 결과를 토대로 1주 평균 주문 횟수(2.8회)를 반영하면, 배달음식으로 연간 1인이 소비하는 플라스틱 사용량은 1342개(10.8kg)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1인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88kg)의 약 12% 수준에 육박한다.[10]

쿠팡의 로켓배송을 이용한 한 고객은 '상품 리뷰란'을 통해 과대포장에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이 고객은 "24개를 주문했는데 상품당 한 개씩 총 24박스에 배송하는 건 무슨 경우입니까?"라며, "에너지 낭비, 시간낭비, 자원낭비"를 지적했다.

정부의 너그러운 규제에 반발하는 환경단체

정부가 제시한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가공식품은 포장 공간 비율이 제품 부피의 15%를 넘으면 안 된다. 음료·주류는 10%, 제과류는 20%, 건강기능식품은 15%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된다. 포장 횟수는 와이셔츠류와 내의류를 제외하고는 2차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11]

그러나 수송을 목적으로 하는 제품포장과 평균매출액이 500억 원 미만인 기업에는 이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환경부는 "포장폐기물의 발생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12]

'일회용 수송포장 방법 기준 가이드라인'을 통해 보냉재나 에어캡 파우치 등은 포장 횟수나 공간 비율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예외사항을 두었고, 규제 시행(2024.4.30.) 이후 2년간 계도기간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히며 규제를 완화했다.[13]

마창진환경운동연합은 21일 창원시청 후문 앞에서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촉구하는 선전 활동을 벌였다.윤성효

환경단체들은 규제 완화에 강하게 반발했다. 규제 완화 발표 직후 녹색연합은 "업계의 요구에 시행을 포기한 것이라면 환경정책 포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계도기간 중에는 일회용 수송포장 방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규제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라며 환경부를 규탄하는 성명문을 냈다.[14] 녹색법률센터 부소장 박소영 변호사는 "플라스틱 양산의 면에서 문제가 많다"라며 "규제가 더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벌거벗은 제품들, 탈(脫)포장의 단계로

포장폐기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며 기업들은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친환경 대체재에서 그치지 않고 이전과 다른 새로운 관점의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오비맥주는 식품표시사항의 일부를 QR코드로 제공하는 '스마트라벨'을 2023년 7월 도입했다. 식품 표시 사항이 수정될 때마다 기존의 라벨 포장재를 모두 폐기해야 했던 이전과 달리, 스마트라벨을 통해 손쉽게 수정하고 폐기물을 줄일 수 있게 됐다.[15]

아큐브는 한국과 유럽 지역에서 제품 포장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비닐을 제거함으로써 연간 10톤의 플라스틱 사용량을 절감했다.[16] 친환경 소재를 활용하기보다 불필요한 포장의 한 단위를 제거하여 자원 사용량을 줄인 것이다.

포장 없이 날 것 그대로 진열된 러쉬의 제품들 박예영

친환경 기업의 대표주자인 영국의 화장품 브랜드 러쉬는 탈(脫)포장에 힘쓰고 있다. 러쉬는 한국을 포함한 52개국에서 전 제품의 66%를 포장이 없는 '네이키드(naked)'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러쉬 매장 이용자 김하은(23, 취업준비생) 씨는 "제품을 다 쓰면 아무 쓰레기가 나오지 않고 그냥 사라지는 게 새로우면서도 환경을 지키는 데 일조하는 것 같다"며 "(별도의 포장이 없는 게) 일상에서 사용하는 다른 물건에도 적용되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러쉬는 네이키드 외에도 폐기물 절감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 러쉬의 '그린 허브(GreenHub)'는 재활용 용기를 모아서 다양한 방식으로 순환경제를 실현하는 곳으로, 2024년 말 기준 약 1700톤의 자원순환을 실천했다. 영국에서 회수한 재활용 용기는 약 90만 개이며, 이 중 81%는 퇴비화하거나 재활용 및 재사용했다. 한국의 회수량은 연평균 20만 개이다.

네이키드 제품 외 리퀴드 타입은 100% 재활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판매하는데, 용기를 고객이 매장으로 반납하면 1개당 쇼핑 보증금(1000원)으로 돌려주거나(또는 적립) 5개당 마스크팩으로 교환해주는 BIB(Bring ItBack) 제도를 운영 중이다.

국내에서는 러쉬 이외에 알맹상점(서울 망원동, 종합 도소매), 늘보따리(서울 서대문구, 친환경용품) 등이 비포장 매장을 운영 중이다.

플라스틱 생산의 '수도꼭지를 잠그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는 사용의 사후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난 3월 10일 1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플뿌리연대(플라스틱 문제를 뿌리뽑는 연대)가 발표한 입장문에서,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의 김혜주 국제협력팀장은 "지금 추세대로라면 2050년에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라며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산을 감축하고 '수도꼭지를 잠그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정책의 중점을 폐기물 단계에 두는 것은 '치명적인 과오'라고 강조했다.[17]

이어 환경운동연합의 유혜인 자원순환팀장은 "환경부는 폐기물 관리라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플라스틱 오염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생산 감축 논의를 회피하고 있다"라며, "한국 정부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 목표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18]

글: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박예영·임세희 기자(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이윤진 ESG연구소 대표
덧붙이는 글 [1] 문창석, 「포장도 안해주는 '불편한 슈퍼마켓' 지구의 미래를 판다」, 뉴스원, 2019.11.30., https://www.news1.kr/industry/general-industry/3781747

[2] Original Unverpackt 홈페이지, Original Unverpackt 정보 / Original Unverpackt

[3] 문창석, 「포장도 안해주는 '불편한 슈퍼마켓' 지구의 미래를 판다」, 뉴스원, 2019.11.30., https://www.news1.kr/industry/general-industry/3781747

[4] Original Unverpackt 홈페이지, https://original-unverpackt.de/faq/

[5] statista, 「Anzahl der beim Verband der Unverpackt-Läden verzeichneten Unverpackt-Läden in Deutschland in den Jahren 2023 und 2024」, Anzahl der Unverpackt-Läden in Deutschland 2024 Statista

[6] Rainbow grocery 홈페이지, https://rainbow.coop/departments/

[7] 환경부, 「(설명자료) 소비자 할인혜택은 그대로. 과대포장 줄여 환경보호는 강화」, 2020.06.20., (설명자료) 소비자 할인혜택은 그대로. 과대포장 줄여 환경보호는 강화

[8] 천권필, 「'과일망'은 스티로폼? 아닙니다…'양파망'은 비닐 재활용으로 [추석 쓰레기 분리수거]」, 중앙일보, 2024.09.2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8973

[9] 한국소비자원, 「배달음식 플라스틱 용기 실태조사」, 2022.02.28., https://www.kca.go.kr/smartconsumer/sub.do?menukey=7301&mode=view&no=1003295881

[10] 한국소비자원, 「배달음식 플라스틱 용기 실태조사」, 2022.02.28., https://www.kca.go.kr/smartconsumer/sub.do?menukey=7301&mode=view&no=1003295881

[11] 환경부,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제품의포장재질ㆍ포장방법에관한기준등에관한규칙

[12] 환경부(자원순환정책과), 「제품의 포장재질ㆍ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 (약칭: 제품포장규칙) [시행 2024. 10. 18.] [환경부령 제1122호, 2024. 10. 18., 일부개정]」

[13] 한국환경공단, 「일회용 수송(택배) 포장 방법 기준 가이드라인 안내」, 2024.05.02., https://www.recycling-info.or.kr/pack/community/view.do?boardid=51&sbbssn=3

[14] 녹색연합, 「[성명] 일회용 수송 포장재 규제도 포기한 환경부를 규탄한다.」, 2024.03.07., https://www.greenkorea.org/activity/living-environment/zerowaste/105195/

[15] 오비맥주 뉴스룸, 「"제품 정보, QR코드로 한눈에" 오비맥주, ‘스마트라벨(QR코드)’ 도입」, 2023.07.21., https://www.ob.co.kr/post/752

[16] 아큐브 홈페이지, https://www.acuvue.co.kr/sustainability

[17] 녹색연합, [보도자료] 플라스틱 생산 감축 의지 어디 갔나? 시민사회, 환경부 비판, 2025.03.10., https://www.greenkorea.org/activity/living-environment/zerowaste/110809/

[18] 녹색연합, [보도자료] 플라스틱 생산 감축 의지 어디 갔나? 시민사회, 환경부 비판, 2025.03.10., https://www.greenkorea.org/activity/living-environment/zerowaste/1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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