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레인보우 그로서리(rainbow grocery)의 벌크코너
레인보우 그로서리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레인보우 그로서리(Rainbow Grocery)'에도 '벌크(bulk)' 코너가 있다. 여기서는 포장 없이 대량으로 진열된 제품을 소비자가 개인의 포장 용기에 원하는 만큼 담은 후 무게에 따라 계산한다. 채소나 과일 외에 샴푸, 세제, 오일류 등 800개 이상 제품이 진열되어 있으며, 커피, 그래놀라, 올리브, 밀가루, 초콜릿, 쌀, 콩 등을 한 꼬집 또는 1파운드(약 450g) 어치만 구매할 수도 있다.[6]
일상이 된 과대포장
환경부에 따르면 생활폐기물의 35%는 포장폐기물이다.[7] 특히 명절 연휴 기간에 폐기물이 급증하는데, 명절 선물의 과한 포장이 주요 원인이다. 환경부가 전국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은 '추석 연휴 쓰레기 발생 현황'을 통해 2019년 11만 8412톤인 쓰레기가 2023년 19만 8177톤으로 4년 사이 1.6배로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8]
커지는 배달음식 시장에서도 포장폐기물이 문제다.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재질이라도 음식물에 오염되거나 비닐로 밀봉된 형태의 용기는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국내 상위 3개 음식 배달앱(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이츠)에서 배달음식 상위 10개 메뉴, 총 30종을 분석한 결과, 메뉴당 평균 23개(180.9g)의 일회용품이 사용됐다. 나무젓가락 등을 제외한 플라스틱 소재 용품은 메뉴당 평균 18개(147.7g)이다.[9]
배달음식에 사용된 플라스틱 사용량 조사 결과를 토대로 1주 평균 주문 횟수(2.8회)를 반영하면, 배달음식으로 연간 1인이 소비하는 플라스틱 사용량은 1342개(10.8kg)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1인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88kg)의 약 12% 수준에 육박한다.[10]
쿠팡의 로켓배송을 이용한 한 고객은 '상품 리뷰란'을 통해 과대포장에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이 고객은 "24개를 주문했는데 상품당 한 개씩 총 24박스에 배송하는 건 무슨 경우입니까?"라며, "에너지 낭비, 시간낭비, 자원낭비"를 지적했다.
정부의 너그러운 규제에 반발하는 환경단체
정부가 제시한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가공식품은 포장 공간 비율이 제품 부피의 15%를 넘으면 안 된다. 음료·주류는 10%, 제과류는 20%, 건강기능식품은 15%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된다. 포장 횟수는 와이셔츠류와 내의류를 제외하고는 2차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11]
그러나 수송을 목적으로 하는 제품포장과 평균매출액이 500억 원 미만인 기업에는 이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환경부는 "포장폐기물의 발생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12]
'일회용 수송포장 방법 기준 가이드라인'을 통해 보냉재나 에어캡 파우치 등은 포장 횟수나 공간 비율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예외사항을 두었고, 규제 시행(2024.4.30.) 이후 2년간 계도기간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히며 규제를 완화했다.[13]

▲마창진환경운동연합은 21일 창원시청 후문 앞에서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촉구하는 선전 활동을 벌였다.
윤성효
환경단체들은 규제 완화에 강하게 반발했다. 규제 완화 발표 직후 녹색연합은 "업계의 요구에 시행을 포기한 것이라면 환경정책 포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계도기간 중에는 일회용 수송포장 방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규제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라며 환경부를 규탄하는 성명문을 냈다.[14] 녹색법률센터 부소장 박소영 변호사는 "플라스틱 양산의 면에서 문제가 많다"라며 "규제가 더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벌거벗은 제품들, 탈(脫)포장의 단계로
포장폐기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며 기업들은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친환경 대체재에서 그치지 않고 이전과 다른 새로운 관점의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오비맥주는 식품표시사항의 일부를 QR코드로 제공하는 '스마트라벨'을 2023년 7월 도입했다. 식품 표시 사항이 수정될 때마다 기존의 라벨 포장재를 모두 폐기해야 했던 이전과 달리, 스마트라벨을 통해 손쉽게 수정하고 폐기물을 줄일 수 있게 됐다.[15]
아큐브는 한국과 유럽 지역에서 제품 포장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비닐을 제거함으로써 연간 10톤의 플라스틱 사용량을 절감했다.[16] 친환경 소재를 활용하기보다 불필요한 포장의 한 단위를 제거하여 자원 사용량을 줄인 것이다.

▲포장 없이 날 것 그대로 진열된 러쉬의 제품들
박예영
친환경 기업의 대표주자인 영국의 화장품 브랜드 러쉬는 탈(脫)포장에 힘쓰고 있다. 러쉬는 한국을 포함한 52개국에서 전 제품의 66%를 포장이 없는 '네이키드(naked)'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러쉬 매장 이용자 김하은(23, 취업준비생) 씨는 "제품을 다 쓰면 아무 쓰레기가 나오지 않고 그냥 사라지는 게 새로우면서도 환경을 지키는 데 일조하는 것 같다"며 "(별도의 포장이 없는 게) 일상에서 사용하는 다른 물건에도 적용되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러쉬는 네이키드 외에도 폐기물 절감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 러쉬의 '그린 허브(GreenHub)'는 재활용 용기를 모아서 다양한 방식으로 순환경제를 실현하는 곳으로, 2024년 말 기준 약 1700톤의 자원순환을 실천했다. 영국에서 회수한 재활용 용기는 약 90만 개이며, 이 중 81%는 퇴비화하거나 재활용 및 재사용했다. 한국의 회수량은 연평균 20만 개이다.
네이키드 제품 외 리퀴드 타입은 100% 재활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판매하는데, 용기를 고객이 매장으로 반납하면 1개당 쇼핑 보증금(1000원)으로 돌려주거나(또는 적립) 5개당 마스크팩으로 교환해주는 BIB(Bring ItBack) 제도를 운영 중이다.
국내에서는 러쉬 이외에 알맹상점(서울 망원동, 종합 도소매), 늘보따리(서울 서대문구, 친환경용품) 등이 비포장 매장을 운영 중이다.
플라스틱 생산의 '수도꼭지를 잠그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는 사용의 사후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난 3월 10일 1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플뿌리연대(플라스틱 문제를 뿌리뽑는 연대)가 발표한 입장문에서,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의 김혜주 국제협력팀장은 "지금 추세대로라면 2050년에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라며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산을 감축하고 '수도꼭지를 잠그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정책의 중점을 폐기물 단계에 두는 것은 '치명적인 과오'라고 강조했다.[17]
이어 환경운동연합의 유혜인 자원순환팀장은 "환경부는 폐기물 관리라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플라스틱 오염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생산 감축 논의를 회피하고 있다"라며, "한국 정부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 목표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18]
글: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박예영·임세희 기자(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이윤진 ESG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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