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7.02 06:43최종 업데이트 25.07.02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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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의견을 피력할 때에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혹은 '조선'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조선에 대한 인식은 달라도 많은 사람들은 대화와 평화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대화는 말 그대로 상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인데, 상대가 반감부터 갖게 되는 표현은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너진 남북관계와 위기에 처한 한반도 평화를 재설계하기 위해서는 적대성의 완화와 대화 재개가 필수적입니다. 서로 '제 이름 부르기'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기자말]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6월 24일 서울 종로구 남북관계관리단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사무실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통일부 명칭 변경 여부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도 이 논쟁은 있었지만,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급부상한 데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입장 표명이 주효했다. 그는 지난 6월 24일 "평화와 안정을 구축한 바탕 위에서 통일도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통일부의 명칭 변경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김건 의원은 "통일부 명칭을 변경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을 밀어붙인다면 이는 제2의 김여정 하명법이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 의원은 "북한 김정은은 2023년 남북한이 같은 민족이 아니라고" 하면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선언하고 통일을 금기어로" 만들었다며, 정 후보자의 입장은 "북한에 동조하는 모습"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이는 적반하장에 해당한다. 조선민주주의공화국(조선)이 내세운 '적대적 두 국가론'은 윤석열 정권이 "자유의 북진"을 운운하면서 노골적으로 흡수통일을 추구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악의 남북관계를 떠넘기고서는 어떻게 해서든 관계 회복을 도모하고자 나온 정 후보자의 고심을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게 가당치 않은 까닭이다.

주목할 점은 여권 내에서도 '통일부 명칭 유지' 입장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박지원 의원은 6월 30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명칭 변경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또 2004~2005년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의 정책보좌관과 문재인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김연철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도 지난 1일 헌법 조항을 근거로 명칭 유지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과잉소비 '북한', 없는 존재 '조선'

정부서울청사 통일부 간판 아래로 직원들이 오가고 있다.연합뉴스

차분히 짚어보고 토론해야 할 사안이겠지만, 나는 명칭 변경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실상 기능 부전 상태에 빠진 통일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사즉생'의 각오로 명칭부터 바꾸는 게 실용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통일부의 핵심적인 역할은 국내외에서 통일 기반을 조성하고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촉진하는 데에 있다. 하지만 국내·남북관계·국제 차원에서 볼 때, 통일할 수 있는 여건은 가장 나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2018년 12월 체육회담을 끝으로 남북대화는 지금까지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고, 교류협력도 '제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부라는 명칭을 유지하는 게 어떤 실익이 있을까?

또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통일부라는 명칭이 품고 있는 '경직성'이다. 저쪽은 통일하기 싫다는데 우리가 이 명칭을 계속 고수하면 남북관계의 경직성을 풀기가 어려워진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다. 남북관계의 미래는 다양한 경로로 설계할 수 있는데, 통일이라는 명칭 자체가 상상력과 유연성을 제안한다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2024년 2월 한국이 쿠바와 수교하면서 대다수 언론은 "유엔 회원국 가운데 남은 나라(미수교국)는 시리아밖에 없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올해 4월 한국이 시리아와 수교하자 "모든 유엔 회원국가 수교를 맺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건 팩트 자체부터 맞지 않는다. 엄연한 유엔 회원국인 조선과는 미수교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보도가 줄을 잇는 이유는 '북한'은 우리 사회에서 과잉 소비되는 반면에, '조선'은 없는 존재처럼 취급하기 때문이다.

'나라와 나라의 관계이자 통합을 지향하는 특수관계'

정부가 민간단체의 북한 주민 접촉을 허용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6일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 경의선 도로에서 차량이 오가고 있다.연합뉴스

통일부 명칭 변경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이러한 진단과 맞닿아 있다. 그건 바로 한국과 조선이 서로의 국가성을 인정하면서 '우호적이고 평화적인 남북관계'를 설계하는 데에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명칭을 '남북관계부' 등으로 바꾼다고 해서 남북대화나 교류협력이 재개된다는 보장은 없다. 조선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조선은 물론이고 우리 국민 상당수도 통일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명칭 변경이 조선에는 '서로가 국가성을 존중하면서 남북관계를 재설계하자'는 메시지를, 우리 국민에겐 '남북관계의 미래에 대해 다양한 상상력을 펼쳐보자'는 취지를 전하는 데 적격이라는 뜻이다.

나는 남북관계의 가장 바람직한 재설정은 '나라와 나라의 관계이자 통합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만들어가는 데에 있다고 본다. 통합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 단어가 통일보다 더 크고 유연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이라는 그릇에는 통일도 담을 수 있기에 헌법과도 충돌하지 않는다. 그 출발점은 통일부를 남북관계부로 개칭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최근 신간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를 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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