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30 15:13최종 업데이트 25.06.3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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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0일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과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특전사령관 등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유성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주도한 12.3 내란에 가담한 육군참모총장 이하 수도방위사령부, 특수전사령부, 방첩사령부, 정보사령부 등 주요 부대 사령관과 장성, 영관급 지휘관·참모들은 하나 같이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모두 구속되어 감옥신세를 지고 있거나 피고인,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과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느라 바쁘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 현대사에 등장하는 군부 쿠데타 역시 모두 육사가 주도했다. 국방부와 군의 요직을 육사가 독식하고, 강고한 기수 질서에 따라 선·후배·동기가 서로를 밀어주고 당겨주며 자리를 나눠 먹는가 하면, 스스로 '대통령을 세 명이나 배출한 학교'라고 자부하며 공군사관학교나 해군사관학교는 깔보는 왜곡된 특권 의식에 대한 비판적 눈초리가 군내에 자리 잡은 것도 이미 오래다. 다만 육사가 군을 주도하고 있으니 드러내놓고 문제를 제기하지 못할 뿐이다.


오죽하면 해·공군 출신 국방부 장관이 인선되면 매번 '이례적'이라는 수사가 따라붙겠는가. 이런 이유로 군 안팎에서는 쿠데타의 온상이자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육사를 폐지하고 낡고 병든 장교 양성 시스템을 군의 현대화 목표에 맞게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18일, 육사에서는 역대 교장 초청 행사가 열렸다. 초청된 역대 교장들은 학교 박물관에서 생도 1~2기가 준비한 특별전을 관람하고 오찬을 진행했다고 한다. 해마다 하는 행사이긴 하지만 육사가 처한 현실과 국민의 따가운 눈초리를 생각하면 지금이 한가롭게 예비역 장군들을 불러 모아 놓고 잔치를 벌일 시기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행사에 참석한 전전임 교장인 권영호 예비역 중장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긴 행사 후기는 더 가관이다. 권영호 예비역 중장은 윤석열 정부의 첫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장을 지낸 뒤 임기제 중장으로 진급해 2기수 후배인 전성대 예비역 소장을 부임 6개월 만에 밀어내고 육사 교장이 된 바 있다. 육사에서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는 문제로 시끄러울 무렵 교장으로 재임했던 그가 남긴 후기는 이러하다.

"전역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그 사이 육사 교장이 두 번 바뀌었다. 1946년 개교한 육사는 올해로 79년째, 현재 61대 학교장이 재직 중이다. 1802년 개교한 미국 웨스트포인트는 223년째, 우리와 같은 61대 교장이 재직하고 있다. 다음 초청행사 때는 지금 학교장이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이야말로 장교 양성 과정 다시 설계해야 할 때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정문.권우성

현직 교장인 소형기 소장은 육사 50기 출신으로 2024년 11월에 61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소형기 소장의 직전 보직은 방첩사령부 참모장이다. 참모장이 되기 전에는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계획편제차장 보직을 맡고 있었다. 그의 상관인 정보작전참모부장은 내란 중요임무종사자로 구속기소 된 여인형이었다.

여인형은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부임하면서 소형기 소장을 참모장으로 데리고 간다. 통상적으로 방첩사령관은 정보기관 통제 목적으로 방첩사 외부인 중에 임명하지만, 실무를 총괄하는 참모장은 위관 장교 시절부터 방첩사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앉힌다. 그런데 여인형은 이례적으로 참모장 소형기, 기획관리실장 김철진 준장(이후 김용현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으로 임명)까지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윤석열이 비상계엄 선포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이 2024년 초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2023년 말에 있었던 이례적인 방첩사 인사가 계엄을 준비하기 위한 포석 아니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의 육사 교장은 방첩사가 계엄을 준비해 온 과정을 수사하자면 반드시 수사해 봐야 하는 핵심 인물 중 하나다.

소형기 소장의 육사 교장 부임 역시 매우 이례적이었다. 전임자인 정형균 교장은 2024년 5월에 부임했는데, 갑자기 7개월 만에 자리를 소형기 소장에게 내주고 전역 예정자들이 가는 정책연구관 보직으로 쫓겨 갔다. 무슨 까닭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계엄을 앞두고 이뤄진 석연치 않은 인사였던 만큼 계엄에 맞춰 장교 양성 기관을 장악해 군부 독재 시절의 영광을 재현해 보려고 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렇듯 권영호 전 교장의 바람과는 달리, 소형기 소장 역시 내란특검 수사망을 피해 내년에도 육사 교장직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정권 입맛에 따라 6개월마다 교장을 갈아치우고, 쿠데타에 가담한 혐의를 받아 수시로 교장이 바뀌는 상황을 두고 태평하게 미국 육사에 견주어 안타깝다고 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내란으로 조직이 쑥대밭이 된 와중에도 우리 군은 환부를 도려내 환골탈태할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낡은 조직을 유지하며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육사에서 보여준 일련의 상황을 보면 작금의 세태를 딱히 문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군의 미래를 책임질 장교를 양성하는 시스템을 이처럼 낡고 병든 육사 카르텔에 맡겨 둬선 안 된다. 군을 바꾸려면 군인을 양성하는 시스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내란으로 육사의 민낯을 재확인한 지금이야말로 장교 양성 과정을 다시 설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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