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23 17:00최종 업데이트 25.06.23 17:00
  • 본문듣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검열에 관한 기사를 미국 영주권자인 시민기자가 보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기사 내용과 시민기자의 신분에 대한 우려로 인해 '이미현'(이것이 미국의 현실)이라는 가명으로 싣습니다.[편집자말]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뉴저지주 모리스타운공항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이 한때 정지된 적이 있습니다. 2020년 미 대선에서 조 바이든이 승리하자 "나라를 위해 지옥같이 싸울 것"을 촉구한 트럼프 연설에 흥분한 극우성향 지지자들이 2021년 1월 6일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사건 때문이었죠. 시위대 중 한 명이 총상으로 사망하고 경찰관 174명이 부상 당했으며 1200여 명은 연방 범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당시 트럼프는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측근들과 함께 부정선거 음모론을 유포하는 등 몽니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트럼프발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가 폭력을 선동한다고 판단한 SNS 회사들은 트럼프의 계정을 정지시켰습니다. 트위터(현 엑스)가 "폭력 조장은 우리 정책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트럼프 계정을 정지시키는가 하면, 페이스북(현 메타) 역시 그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무기한 정지시켰습니다. 유튜브도 트럼프 채널에 업로드 금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트럼프는 이들의 조치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수정헌법 1조를 위반한 것이라며 "완전히 비미국적"이라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과거 자신의 입을 막은 것에 대한 괘씸함이 남아있었던 걸까요? 정권을 다시 잡은 트럼프는 "언론의 자유를 회복하고 연방 검열을 종식한다"며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1월 20일 취임과 동시에 서명된 행정명령인데, SNS와 방송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첫 발걸음이라는 점이 흥미롭네요.

이 행정명령에서 트럼프는 철저히 피해자 행세를 합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가짜 정보, 허위 정보, 잘못된 정보'로 누명을 씌워 정부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론을 이끌었고 SNS 회사에 압력을 행사해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이지요. 물론 희생자는 트럼프 자신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래서 이 행정명령에는 "법무부 장관이 행정부 부서 및 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이 명령의 목적과 정책에 부합하지 않았던 지난 4년간 연방 정부의 활동을 조사하라"고 명시합니다. 조사 기간이 자신의 SNS 계정이 정지되었던 4년 전부터 시작하는 것을 우연의 일치로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이 행정명령은 바이든 정부를 비롯해 애플과 같은 미국 내 빅테크 업체들, 그리고 방송사들과 팩트 체크 회사를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당선인 시절 트럼프와 브렌던 카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은 FCC가 방송사들을 조사하고 면허취소까지 내릴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물론 방송사들이 '공익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라면 말이죠.

이렇게 되면 CBS의 시사 프로그램인 <60분>(60 Minutes)처럼 행정부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언론 매체는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60분>은 이미 200억 달러 규모의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고 CNN 또한 "거대한 거짓말"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4억 7500만 달러짜리 소송에 걸렸다가 기각된 상태입니다.

트럼프는 여기에 대학도 대거 포함시킵니다. 언론이 가짜뉴스 생성자들이라면 대학은 적대세력을 길러내는 온상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불법적'이라고 볼 수 있는 시위를 지지하거나,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과 같이 트럼프 행정부가 불편해하는 주제를 다루는 대학에 연방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해 버립니다.

지난 10일 미국의 공영방송인 NPR은 "트럼프가 대학들을 공략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연방정부가 110억 달러에 달하는 대학연구기금을 삭감했으며, 이 가운데 하버드는 20억 달러 이상이 삭감당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프린스턴과 코넬 등 다른 유수한 대학들 역시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적발'과 '취소' 정책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 앞에서 마흐무드 칼릴이 발언을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인권운동가인 그는 지난 3월 컬럼비아대 반전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이민세관국(ICE)에 체포되어 루이지애나주 이민자 시설에 구금된 지 104일 만에 법원 결정으로 풀려났다.연합뉴스

자국 대학에 으름장을 놓는 트럼프가 외국인들에게 고운 눈길을 보낼 리 없겠죠.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는 컬럼비아대 대학원생이자 미국 영주권자인 팔레스타인 인권운동가 마흐무드 칼릴의 체포에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앞으로도 수많은 체포가 잇따르게 될 것이다. 컬럼비아대를 비롯, 테러를 옹호하고 반미운동에 참여하는 대학들이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데 우리 행정부는 참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칼릴의 사례가 흔히 말하는 '시범 케이스'가 된 것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이민정책 기조를 가장 잘 드러내는 용어가 '적발(Catch)'과 '취소(Revoke)'입니다.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가졌다 하더라도 미국법을 위반하거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해당 체류 자격을 박탈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17일 <비즈니스 스탠다드>는 비자를 가리켜 "특권일 뿐 권리가 아니다"라는 국무부 장관의 말을 실으면서 '적발과 취소' 정책하에서는 경범죄라고 하더라도 체류 자격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은 비자 신청자와 유학생들의 SNS 계정 심사를 대폭 확대하면서 정점에 이르게 됩니다. 5월 28일 BBC는 미국 행정부가 SNS 심사를 확대하려는 가운데 27일부터 유학생 비자 인터뷰를 일시 중단하라고 전 세계 외교 공관에 지시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유학생과 교환학생 비자 신청자의 SNS 심사 절차를 강화할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주한미국대사관의 경우 지난 20일부터 비자 신청자들의 SNS 개인정보 설정을 '공개'로 조정하도록 안내하면서 비자 인터뷰가 재개된 상태입니다. 미 이민국(USCIS)은 미국 내에서 영주권과 시민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SNS 계정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유학생들과 유학 준비생들 사이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데일리 텍산>은 인공지능(AI) 기반으로 운영되는 '적발과 취소 프로그램'이 3월 도입된 이후 최근 몇 달 사이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SNS 검열이 증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보도에서 호프라는 유학생은 미국 사회가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막상 미국에 와 보니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어려운 자신의 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미국 시민이 아닌 한 여기서도 공포는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 일은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컬럼비아대 한인 유학생 정윤서씨는 영주권자임에도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여한 후 추방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미 이민세관국(ICE)이 그녀를 체포하려고 부모의 집에 방문하였으나 찾을 수 없게 되자 "비시민권자 은닉"에 대한 형사법이 인용된 영장을 사용해 기숙사를 수색했으며 영주권을 취소하고 미 이민정책에 위협을 준다는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이 일은 친팔레스타인 성향의 다른 대학 운동가들에게 내렸던 것과 같은 전략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정씨는 변호사를 통해 트럼프와 행정부 고위 관리들을 고소했고 연방판사는 '공동체에 위협을 가할 만한 어떤 기록도 발견되지 않는다'며 그녀의 체포와 추방을 중단할 것을 트럼프 행정부에 지시한 상태입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유학 상담사들은 미 국무부의 주의를 끌 만한 게시글들을 올리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CBS는 지난 5월 30일 자 보도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신입생들이 스냅챗 등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대입 컨설팅회사가 아예 학생들과 같이 보고 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상담사들은 유학생들에게 SNS 계정을 완전히 삭제하는 것은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다며 가자지구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이 논란이 되는 주제의 게시물을 삭제하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2025년, 이것이 미국의 현실

지난 5월 27일(현지사간)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트럼프 행정부가 SNS 심사 확대를 검토 중인 가운데 신규 학생 비자 인터뷰를 일시 중단했다고 보도했다.폴리티코

말을 묶으면 생각도 묶이게 되죠. PBS는 트럼프가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지에 대해 학생과 교수들의 입을 통해 소개했습니다. 이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것은 '공포감'입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조차도 시위나 집회에 참여할 때 '마스크를 써야 할까'나 '사진에 찍혀도 될까' 등을 먼저 고민한다는 것이지요.

이들은 정치나 논란의 우려가 있는 주제를 접할 때 혹시 선을 넘는 발언을 한다면 다른 이들에게 심판받을 것이라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마치 살얼음판 위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합니다. 여기에 비자 취소나 추방이라는 짐까지 지고 있는 유학생들은 스트레스가 더욱 심해 우울과 고립감, 자살의 위험이 훨씬 크다는 의학계의 보고도 있습니다.

"언론 자유 보호"를 명분으로 시작했지만 트럼프의 무리한 정책은 여기저기에서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국무부 관리들이 유학생 SNS 검열 기준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대학 내 시위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심사한다고 쳐도, 엑스에 팔레스타인 국기 사진을 올린 학생을 추가 조사해야 하는 건지 불분명하다는 것이죠.

<뉴스위크>는 트럼프의 비자 인터뷰 유예 결정이 약 440억 달러의 경제 기여와 미국 내 37만 개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유학이 꺼려지는 추세에서 다양한 시각을 지닌 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게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미국으로서도 밑지는 일을 벌이는 셈입니다.

언론에 겁을 주고 대학의 돈줄을 쥐고 흔드는 한편,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SNS를 검열하지만, 정작 트럼프는 SNS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워싱턴포스트>는 취임 후 132일 동안 트럼프의 SNS 포스팅은 총 2262건으로 첫 임기 때보다 무려 3배 이상 상승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12일 비영리단체인 미국언론자유추적(US PRESS FREEDOM TRACKER)은 트럼프가 지난 10년간 하루 한 번꼴로 자신의 SNS에서 언론을 공격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대통령의 언론 길들이기 공략'이라는 부제를 단 이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가 "가짜 뉴스"라고 언급하거나 언론을 "국민의 적"이라고 지칭한 것은 각각 1500회와 70회에 달했습니다.

가까운 제 친구는 팔레스타인 시위에 동참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과 상황을 알리는 집회에 활발히 참여했지만 최근 자신의 게시물을 모두 삭제하고 지인들에게도 단체채팅방에서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의 아들은 미 해병대 군인이고 자신은 미국 국적을 가졌는데도 말이지요.

이쯤 되면 미국 영주권자인 제가 왜 가명으로 미 대통령 비판 기사를 쓰고 있는지 눈치채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검열이 무서워 실명으로 글을 쓰기 어려운 지금은 매카시즘과 이념 검열이 한창이던 1950년대가 아닌 2025년이고 이것이 미국의 현실입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