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곳곳의 주민들은 가까이에서 의료를 이용하지 못한 채 아픈 몸으로 버스를 타며 도심의 병원을 오가는 실정이다.
HSC
의료에 대한 요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사회적 현상은 이미 한국에서 낯설지 않다. 2020년 코로나19 시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누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누가 배제됐는지를 목격하게 됐다.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정치적 요구는 그 안에서 강력한 사회적 당위로 부상했다. 2024년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넘치는 말과 글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낮은 의료접근성 속에서 시름하고 있다. 정치적 위기 이후 새 기조의 정부가 들어선 지금, 보건의료가 말해지는 관점을 한 번 더 의심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무언가가 정부의 문제, 그리고 시민의 문제로 규정되는 지금도, 그밖에 오히려 정치적인 문제에서 분리된 무언가가 남아있다. 서울 미디어가 서울의 관점에서 지역 병원을 '발굴'하고 '모범사례'로 추켜세울 때, 정작 그 의료를 이용하는 주민의 삶은 다뤄지지 않는다.
이번 대선을 거치며 정치적 의제로 부상한 '공공병원'으로 초점을 좁혀도 그러하다. 당장 논쟁의 대상이 된 성남의료원은 명실상부 수도권인 경기도에 위치했다. 주류화된 시민사회 내부에서 논의가 이뤄지는 공공병원 담론 역시 대부분 수도권 혹은 대도심을 위주로 구성돼 있다.
침례병원 공공화가 지역 대선 과제로 언급되고 있는 부산(
국제신문 보도)은 물론, 대덕구 공공병원 설립에 사활을 걸고 나서는 대전(
대전일보 보도) 역시 어지간한 고소득국가 대도시와 견줄만한 도심이다. 시민사회 차원에서 제2의료원 설립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대구(
KBS 보도)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의료원 설립을 약속한 울산(
뉴스 1 보도) 역시 인구 236만, 111만 규모의 광역시다. 각 지역에는 병상 규모로 따지면 서울의 상급종합병원 못지않은 대학병원도 이미 존재한다.
분명한 사실 하나. 의료는 병원 한 번 방문하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야 하고, 누구도 '공공병원' 설립을 장담할 수 없는, 외진 지역의 주민에게 더 필요하다. 의료와 공공병원 설립 담론이 넘칠수록, 이 담론이 누구의 '필요' 아래 쓰여졌는지 묻게 되는 이유다.
산지가 험준한 반도 지형, 그리고 폭력적인 근대를 거치며 계급적 하위에 놓일수록 진한 등고선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지역에 산다. 서울 공화국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공공병원 담론'의 뒤편이다. 아직 도로조차 포장되지 않은, 대중교통도 찾기 어려운 험준한 산길에는 쓰러질 듯, 보행기를 잡고 걷는 어르신들이 모여 살고, 보건진료소의 간호사 소장은 발을 동동 구르며 주민들을 돌본다. 병원은 그곳에 있지 않다.
"한국에서 병원 못 가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되물었던 누군가의 말들처럼, '병원 못 가는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는 곳에 병원이 있다. '의료취약지' 정책도 통계도 현실과 동떨어진 '직선거리' 상상계 속에서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주민들은 아픈 몸으로 버스를 탄다. 한나절 거리 대학병원 의사는 한 달에 한 번 주민들을 만난다. 사람의 삶은 병원 바깥에 깨끗이 분리된 채 놓인다.
숫자는 있지만 사람은 간데없네

▲제21대 대통령선거 본투표일인 6월 3일 오전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구만리 선착장에서 화천댐으로 인해 육로가 막힌 화천 동촌리 주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배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화천댐은 1944년 이래 수도권 전력 공급 등에 동원돼 왔으나, 주민들은 이로 인한 개발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도심이 저마다 나서 공공병원 설립이라는 약속을 끌어내고 있지만, 정작 군 차원에서 공공병원을 설립했거나, 설립 논의를 하고 있는 지역은 과제를 마주한다. 고액의 의사 인건비가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병원을 이용해 수익을 보전해 줄 수 있는 인구는 점차 줄어간다.
최근 군 차원에서 공공병원 설립 논의를 진행 중인 울주군은 지난해 5월 처음으로 지방소멸지수 '위험' 단계를 마주했다. 군립병원 규모 확대를 도모하는 정선군은 어떨까. 한때 국내 최대의 탄광이 있었던 지역이지만, 이제는 인구 3만 명을 유지하는 일이 벅차다. 경제를 견인하던 산업이 하나둘 사양기에 접어드는 지역일수록 공공병원을 운영하기 위한 고민은 깊어진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가 당선된 지금도 사람들 삶의 어려움은 정치의제와 먼 곳에 놓여 있다.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공언한 이 시점, 단지 '경제'를 살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억압의 구조가, 지리정치의 맥을 타고 켜켜이 쌓여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사실 한 가지. 이번 대선 시기에도 여전히 '빨간색'으로 점철된 지역 상당수는 오랜 기간 개발의 혜택 뒤에서 수도권에 자원과 인력을 공급하며 쇠락을 맞이한 곳이다. 주민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무려 배를 타고 나가야 했던 그 지역은, 주민들이 병원 한 번을 가기 위해 커다란 댐을 돌고 돌아 한 시간씩 먼 길을 떠나는 곳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빨간색'으로 물든 지역을 '콘크리트' 혹은 '내란을 겪어도 변하지 않는 지역'이라며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사람의 삶을 중심에 두고, '보수'라는 현상 그 자체보다 현상을 만들어내는 정치를 보자고 제안한다. 그곳이야말로 진한 등고선 뒤 밀려난 삶, 통계표 바깥으로 밀려난 의료의 현실이 존재하는 장소다. 부디 새로운 대한민국은 그 '바깥'을 들여다보는 정치를 할 수 있길, 그래서 의료를 부디 주민의 곁으로 돌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