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23 12:02최종 업데이트 25.06.23 12:02
  • 본문듣기
문영민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홍윤희

문영민 박사가 2024년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에 임용됐을 때 한 인터뷰 기사의 제목은 '중증 지체장애 문영민씨 중앙대 교수 임용'이었다. 지체장애인이 교수가 됐다는 게 특이한 일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문 교수가 연구해 온 주 분야를 보면 이런 헤드라인을 뽑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가 주로 연구하는 분야는 '장애인의 건강과 노동'이다. 그가 쓴 논문 상당수도 장애인들이 제대로 이동하거나 기회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회적 배제와 차별의 결과에 대한 내용이다. '장애인의 출세'는 특이하다는 사회적 시선은 아직도 만연하다.

문영민 교수는 무의에 '지체장애인의 차별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 참여를 부탁해 왔었다. 그 연구 결과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초대된 적이 있다. 지난 2월 발달장애인과 발달장애인 부모, 지체장애인의 조기 노화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는 서울대 장애와 건강 연구팀 DiSEPA(Disability, Social Environment, and Premature Aging)의 2024 연구성과 공유회였다. 특정 사회집단의 건강실태를 연구하는 사회역학 분야를 한국에서 개척한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승섭 교수가 장애인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무려 20년간 수행하는 장기 연구다.


문 교수가 이 연구에 합류하면서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계단 하나는 휠체어로 오갈 수 있는 경사로로 바뀌었다. 중앙대도 그가 교수에 임용되며 여러 편의시설을 갖추기 시작했다. '지체장애인이 교수에 임용되는 게 특이할 게 없는 세상'을 위해 연구하고 있는 문영민 중앙대 교수를 지난 7일 인터뷰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에게 '편의점 상품권' 주면 안 되는 이유

- 어릴 적 가장 선명한 기억이 무엇인지?

"초등학교 때 하교 후 교실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기억이 가장 선명하다. 초등학교 때는 휠체어 안 타고 엄마가 나를 업고 학교를 오가셨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중고등학교 때는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지만 계단을 오가야 할 때는 항상 엄마가 휠체어를 들어서 이동시켜 주셨다. 고등학교 때는 엄마가 나서서 '내가 영민이 이동시켜 줄 수 있으니 학교 잘 다닐 수 있다'라고 학교 쪽에 말하셨다. 장애인은 무조건 특수학교 가라는 권유를 노골적으로 듣던 시대여서였다.

이런 기억이 있는데도 어린 시절에는 차별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다.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거 같다. 생각해 보니 차별을 느낄 무대가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당시만 해도 장애인 인권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2000년대 장애인권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고 그 결과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다. 대학 입학 후 장애인권동아리에 들어가고 '장애의 사회적 모델(장애의 사회적 모델은 장애인이 사회 시스템과 구조 때문에 겪는 배제와 차별을 강조한다.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결함으로 보는 의학적 모델과 구별된다)'을 알게 됐다. 시설에 들어가서 사는 장애인들에게 '불편한 것 없느냐'라고 물어보면 '없다'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차별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어서다."

문영민 교수가 김승섭 서울대 교수와 함께 지난 2월 21일 열린 서울대 장애와 건강 연구팀의 2024년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 팀은 20년 동안 지체장애인, 발달장애인, 발달장애인 부모의 사회적 환경과 건강을 장기 추적 연구하여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의미있는 연구다. 이 행사를 연 브라이언임팩트가 첫 5년 연구비를 지원한다. 문영민

- 김승섭 교수님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박사논문 주제가 '장애인의 건강 생애사'였다. 처음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양적 연구로 하고 싶었는데 데이터를 구할 수가 없더라. 인터뷰 중심의 질적 연구로 방향을 틀었다. 내 개인적 경험도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 장애인 화장실이 없어 화장실을 제대로 가기도 어려웠던 시절의 영향으로 신장 질환이 생겼고 그 영향으로 난청까지 생겼다. 환경적 요인이 건강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논문 마무리할 즈음, 김승섭 교수님이 '앞으로 20년 동안 같이 장애인의 건강을 연구할 사람을 찾는다'고 하시더라. (한국에서 장애인의 생애와 건강에 대해 이 정도의 장기 연구를 하게 된 것은 김 교수 팀이 최초다.) 양적 연구를 하고 싶었던 나에게 그 말이 너무 강렬하게 남았다. 박사 학위를 딴 후 포닥(박사후연구원)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김 교수님의 그 말에 끌려 CV(이력서)를 드렸다.

교수님이 '연구실에 오면 컴퓨터도 제일 좋은 것으로 주겠다. 책상은 어떻게 쓸지?'라고 물으시더라. 이때 큰 감동을 받았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나에게 '잘한다'고 말하지만, 그 생략된 맥락엔 '장애인 치고는 잘한다'는 식의 암시이기도 했고, 어찌 보면 나 자신도 스스로를 저평가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교수님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럴 자격이 있다'고 말씀해주셨을 때, 정말 감동이었다."

- 20년 주기 연구의 첫 연구 과정 중 기억에 남는 인사이트는 무엇이었나?

"연구 결과도 그렇지만, 연구에 참여한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에게 주는 참여 선물로 '편의점 상품권 주면 안 돼'라는 인사이트가 있었다. 편의점 상당수가 휠체어 접근성이 좋지 않아서 편의점 상품권 효용이 낮다는 거다. LG전자가 장애 고객 경험을 높이기 위해 우리 팀에 의뢰했던 연구에서도 인사이트가 있었다. 매장에서의 차별 경험을 얻어내야 하는데 어떤 지체장애인들은 'LG 베스트샵' 같은 매장에 아예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차별을 경험해 본 적도 없고 차별받을 걱정도 안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문턱이나 화장실 문제 등 많은 불편이 있을 수 있는데도. 경험조차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는다. '차별이라고도 말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큰 깨달음이었다.

차별인지 아닌지 애매한 은근한 차별을 뜻하는 마이크로어그레션(미세차별)에도 관심이 많다. 명시적인 차별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다. 반면 은근한 차별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그 자리에서 들어도 바로 반박하기에도 애매하다. 나중에는 '그때 분명히 요구했어야 했는데...' 하면서 자책하게 된다. 당연히 심리적 스트레스와 에너지가 수반된다. 연구자로서 그런 감정과 경험을 구조적으로 풀어내고 싶다."

서울 영등포구 더 현대의 LG 베스트샵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연합뉴스

- 박사 졸업 후 1년 만에 교수 임용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논문을 엄청나게 많이 썼다고 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연구가 가능했는지?

"사실 논문을 박사 초반부터 많이 쓰기는 했다. 한국수력원자력 퇴사 후 (문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후 한수원에서 일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 석사를 하게 됐는데, 학부 때 사회복지 전공이 아닌지라 '여기선 혼자 잘해야겠다' 생각하며 열심히 했다.

건강도 좋지 않아 입원하면서도 주사 꽂고 논문 쓰고... '더 많이,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장애 연구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고, 단순히 내가 장애 당사자로서 이런 연구를 해야겠다는 책임감에서 온 것만은 아니기도 했다. 장애 연구를 하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장애 당사자다 보니 숫자만으로도, 경험만으로도 보이는 게 있다.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 완전히 '덕업일치'였다."

"장애가 저를 더 좋은 연구자로 만들어줬다"

- 문 교수를 수식하는 문구에 '장애인'이라는 수식어가 흔히 붙는데,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실 그 수식어가 싫다. '중앙대 최초 지체장애 교수' 같은 표현이 물론 맞기는 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그걸 강조할 때마다 나의 전문성과 정체성이 '장애' 하나로 수렴되는 느낌을 받는다. 장애를 가진 누구도 전문성을 가질 수 있고, 그걸 기반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사회가 그 바운더리를 자꾸 막는다는 느낌이다. 저는 오히려 장애가 저를 더 좋은 연구자로 만들어줬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단순히 장애가 아니라, 그 장애를 통해 축적된 '전문성'이다."

- "장애가 삶의 자원이 된다"는 말을 했는데 그런 의미인지?

"장애 연구를 하면 차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장애인은 피해자'라는 틀에만 집중하는데 그건 바람직한 시각은 아니다. 장애인은 차별도 받지만, 동시에 법과 제도 개선의 수혜자이기도 하고 어느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능동성도 있다. 나는 연구하면서 항상 이 양면을 함께 보려고 한다 '차별'만 연구하는 게 아니라, 그 차별을 딛고 삶을 재구성하는 능동성도 함께 연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LG전자가 '볼드무브'라는 장애인 접근성 커뮤니티를 통해 제품 개선 아이디어를 수집하는데 이는 '장애 전문성(disability expertise)을 활용하는 사례다. 장애 당사자가 네트워크와 경험을 활용해 자기 삶을 발전시키고 사회가 발전되도록 하는 경험을 장애 전문성이라고 부른다.

장애인이 장애 때문에 생긴 다른 2차적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연구한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투석을 하게 된다든지, 목발을 짚다가 어깨 회전근개가 파열돼 전동휠체어를 타게 된다든지 하는 경우다. 그런데 장애당사자들은 다른 비장애인들 같으면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2차 장애를 비교적 덤덤히 받아들인다. 장애 해석의 경험이 있어서 빠르게 수용하고 삶을 빠르게 재구조화한다. 예를 들어 뇌병변 장애인이 목디스크로 전신을 움직이기 어려워졌는데 그분은 장애인활동지원사를 늘리고 집을 빠르게 바꾸는 등 네트워크를 통해 자기 삶을 재구조화하더라. 장애 당사자들에게 그런 네트워크와 경험은 정말 큰 자원이다."

지난 7일 교수실에서 홍윤희 무의 이사장과 인터뷰하고 있는 문영민 교수.홍윤희

- 연구가 실제 일상과 정책으로 이어지기 위해, 연구자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해석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다. 지금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예측하고, 그걸 잘 설명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를 들어, 장애인과 디지털 기술이 만났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 같은 것? 얼마 전 싱가포르 음식배달앱을 통해 음식을 배달하는 장애인 배달원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 장애인 기사들의 노동권은 어떻게 될까? 이런 주제에 관심이 많다.

또 하나, 1인 가구 장애인의 삶에 대한 주제를 탐구해 보고 싶다. 지금은 '탈시설'이나 '저소득'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제는 지역사회에 사는 1인가구 장애인 지원 체계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개인화에 따른 삶의 양식을 잘 예측하고 대비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

- 공부가 아닌 다른 진로를 꿈꾸는 장애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지금은 법도 많이 바뀌었고, 사회참여의 길이 예전에 비해서는 조금 더 다양해졌다. 장애 경험이 오히려 자원이나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다. 어디서든 '장애인으로서 최초'가 되는 상황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스로를 '장애인 누구누구'라는 타이틀에 가두지 말고, 그걸 넘어서는 삶을 상상하고 만들어가셨으면 좋겠다."

- 휠체어 타는 내 딸은 올리브영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게 꿈이다.

"'멋진 꿈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인터뷰했던 60대 장애여성이 "나는 어릴 때 꿈이 없었고, 나한테 전화 하는 사람이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따님이 올리브영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는 것이 장애인 포용적인 사회 변화의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세상으로 점점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장애와 건강' 2024 연구성과 공유회에서 나온 결과 중 유난히 내 마음을 울리는 내용이 있었다. 지체장애인들이 이동의 어려움으로 인한 아동기 교육적 배제 경험이 많을수록 성인기 자살 생각이 최대 3.8배까지 증가하더라는 내용이다. 아이가 어릴 적엔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밟히면 책임 못진다"라며 거부당하고, 가고 싶었던 고등학교에서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오지 마라"는 간접적 거부를 당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문영민 교수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연구를 해서 이렇게 일상적이며 은근한 차별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또 그가 말하는 '장애 전문성'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하는지 더 깊고 넓게 탐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