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경기도교육청이 인공지능 서·논술 평가 시스템 설명하는 모습.
경기도교육청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18일 경기도 교육청은 다음 달부터 중1과 고1 국어·사회·과학 교과의 서술형·논술형 평가에 대한 채점을 AI에게 맡기는 시스템(인공지능 서·논술형 평가시스템)을 도입하고, 이후 경기도 내 전 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은 "교육의 본질은 정답을 찾는 기술이 아니라, 학생이 살아갈 미래 사회를 위한 역량과 인성을 기르는 것"이라며 그들의 결정을 "학생 성장을 지원하고 입시 중심 교육을 바꾸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임 교육감이 말한 교육의 본질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없으나, 그것을 위해 경기도 교육청이 선택한 방법이 과연 옳은 것인지는 의문을 갖게 한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본격적인 논술형 평가가 광범위하게 이뤄질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을 담당할 교사들의 훈련이 충분치 않고, 교사의 주관성이 개입될 수 있는 채점 결과에 대해 논란이 예상된다는 측면 때문이었다. 한국의 살벌한 교육 환경에서 이는 좀처럼 극복하기 힘든 난관이었기에, 우리 교육은 대부분의 시험을 오지선다에 맡겨왔다.
그런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과감하게 나선 경기도 교육청이 찾은 해법은 논술식 시험 확대를 위해 교사를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채점을 AI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이는 교육의 본질로부터 오히려 아이들을 더 멀어지게 할 수 있는 결정으로 보인다.
7개 시범학교에서 사용해 본 결과 교사들은 "채점 시간을 줄이고, 정확도를 높일 수 있어서 매우 효율적"이라고 했고, 학생들은 "평가 결과에 대해 신뢰할 수 있다"는 반응이 있었다고 한다. 즉, 임교육감이 말한, 미래 사회를 위한 역량과 인성을 기르기는 목표와는 전혀 상관없는 지점에서 AI채점은 효용을 드러낸 것이다.
시리(Siri)의 핵심 엔지니어 창조자이자, 삼성인공지능연구소 부사장을 역임한 바 있는 인공지능 엔지니어 뤽 줄리아(Luc Julia)는 지난 4월 파리에서 가진 강연에서 AI에 대해 이렇게 밝힌 바 있다. " AI는 하나의 도구다. 망치처럼. 못을 박을 때, 우리의 손보다 망치를 사용하는 게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우린 망치를 사용한다. 하지만, 망치는 우리 없이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한 '도구'다. AI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교육청의 결정은 망치를 사용하는 인간의 자리를 망치에게 내주기로 한 결정과 비슷해 보인다. 도구로 쓰여야 할 존재에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양도하는 순간, 인류는 스스로가 만든 기술로부터 공격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AI 도움받은 작문, 프랑스 고등학교에선 낙제 처리
지난 봄에 내 지인인 프랑스의 고교 철학교사 베네딕트 레(Benedicte REY, 56세)는 한 학생이 과제로 낸 철학 리포트가 AI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30년째 학생들의 철학 에세이를 검토해왔던 교사의 눈에 그 사실은 명백했다. 그녀는 낙제 점수를 주었고, 그 이유를 명확히 기재했다. 놀랍게도 학생은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경우, 교육청은 다른 철학교사에게 그 답안을 검토하게 한다. 다른 철학 교사 역시 그녀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학생의 에세이에는 사고가 전개된 자연스러운 흔적, 인간의 육성이 배제되어 있었다.
철학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 당연하게 보이는 사실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비판적 이성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다. 그런 과목에서 훈련 과정을 생략한 채, AI에게 집필을 맡긴 학생에게 낙제점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베네딕트를 비롯한 프랑스의 철학 교사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학생들의 AI 의존 현상을 지적하며,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보다 명확한 교육청의 지침을 요구한 상태다.
같은 일이 경기도에서 벌어졌을 경우, 학교는 그리고 교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AI가 채점하는 답안을 작성하는데 있어, AI의 도움을 받는 일을 부당하다고 여길 수 있을까? 교사 스스로 교사 고유의 권한인 학생의 과제를 평가하는 일을 기계에게 양도했을 때, 학생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분석하고, 사고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오히려 아이들은 AI에게 높은 점수를 받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원을 다니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진정, 미래 사회를 살아갈 역량과 인성을 기르는 교육일까?
주체가 되지 못하면 도구가 된다

▲지난 16일, 프랑스 동부 뮐루즈에 위치한 미셸 드 몽테뉴 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에 응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의 경우, 교사는 학생들의 시험 답안, 혹은 과제를 단지 '채점'하지 않는다. 그들은 채점 대신 교정(corriger)이란 단어를 쓴다. 어느 대목에서 논리의 허점이 있고, 어느 대목에서 탁월한 사고가 보였는지 밑줄 치고, 옆에 코멘트를 단다. 마지막엔 칭찬의 말, 때론 부족한 점들을 지적한다. 점수는 그 모든 입체적이고 적극적인 답안지 교정의 과정에서 나오는 결산이다. 학생은 교정된 답안지를 통해 교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과제 혹은 답안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학생도 교사도 성장한다. 물론 AI가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때때로 교사의 주관성이 개입할 것이다. 세상 모든 인간사가 그러하듯.
미국 MIT 미디어랩 연구진은 최근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활용한 에세이 작성이 단기적 편의를 제공하지만, 장기적으론 학습 능력 저하를 유발한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AI를 사용해 에세이를 작성한 그룹은 즉각적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으나, 그 대가로 깊이 있는 사고, 기억력, 자율적 문제해결능력 같은 학습의 핵심 역량이 훼손되는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인공지능의 도움 없이 스스로 에세이를 작성한 그룹은 글을 작성하는 동안 뇌신경 네트워크가 넓고 강하게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였으며, 높은 수준의 인지적 참여도를 드러냈다고 연구진은 밝히고 있다. 우리가 AI와 관련해 아이들에게 시켜야 할 교육은 어떻게 그것을 지배하고 통제할 것이냐지, 그들의 포로가 되는 법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동의하든 안 하든, 우리의 세상은 점점 AI에 포위 당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이 기계에 의식을 잠식당하지 않고, 또렷한 생각과 판단의 주체로 서도록 지켜주는 최전선은 학교와 교사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의지와 사고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인간들은 전지전능해 보이는 인공지능의 존재 앞에서 무력하게 주인의 자리를 양도할 가능성이 크다. 테크노크라트들이 장악한 프랑스 내각은 채 20%가 안되는 교사들의 AI 이용률을 문제로 지적하며, 그들을 AI 전쟁의 전사로 내몰려한다. 하지만 교사들, 특히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최후의 보루인 철학교사들은 아이들이 AI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막아서서 이렇게 외칠 것이다. '주체가 되지 못하면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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