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은 특수고용노동자 차별 철폐 교섭에 나서라!” 2024년 12월 11일 전국택배노조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택배사들과의 단체협약 체결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전국택배노조
전통적인 산업사회의 포디즘적 일터에서는 명확하고 가시적인 방식의 '사용자'가 존재했다. 그리고 이를 전제로 한 법제도적 사용자 책임이 반영된 사회보장제도와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들이 여전히 굳건하다. 그러나 법의 사용자 책임성이 현실을 담아내기도 전에, 디지털 전환은 사용자 책임을 털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알고리즘을 통한 업무 지시와 데이터 수집을 통한 감시는 사용자가 보이지 않아도 충분히 통제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일의 혁신을 가져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산업 안전과 건강, 고용과 임금을 통한 현재의 생활수준의 보장, 퇴직 후의 삶에 대한 사용자 책임은 점차 약화된다.
쿠팡 로켓배송은 '빠르고 편리한' 배송서비스를 위해 노동자들을 강력한 통제 하에 둔다. 핵심통제 영역에서 사용자는 비교적 명확하다. 그러나 '책임'은 점차 약화된다. 일용직 노동자의 실업과 퇴직을 인정해 주는 고용보험제도의 개선방향과 달리 쿠팡은 취업규칙을 변경해 퇴직금 수령을 더욱 어렵게 했다.
매일 출근 확정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현실, 블랙리스트 사건 등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퇴직금이나 실업급여 수령, 산재 신청 등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2024년 2월 쿠팡에서 취업을 제한하는 노동자 명단을 담은 '블랙리스트'가 공개된 사건이다. 산재 신청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의혹이 일었으며, 출입한 적이 없는 기자들이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저임금 물류 노동자 등은 쿠팡에서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진 월급은 쿠팡을 떠나고 싶은 이유가 된다. 이로 인한 불안정한 생활, 그리고 높은 노동강도, 고정 야간근로 등은 쿠팡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남겨진 현실이다. 쉼 없는 노동과 미래를 그릴 수 없는 현재에 매인 노동자들의 잦은 죽음은 우연이 아니다.
근 몇 년간 이어진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와 배송기사의 죽음으로 제도 개선 운동이 있었다. 그 운동은 고용노동부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라인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일부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 의무를 비롯한 사용자 책임은 묘연하다.
대부분의 물량이 퀵플렉서라는 독립계약 배송기사(특수고용노동자)에게 넘어가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소득이 낮아져 많은 경우 대리점주가 되거나 퀵플렉서로 이직하게 되었다. 2021년 코로나19 시기 배송기사의 과로 사망을 멈추기 위해 얻어낸 사회적 합의에서 야간노동과 소분 등 추가 작업에 대한 개선이 상당히 이뤄졌다. 그러나 당시 쿠팡은 직고용 정규직 노동자들이 배송을 하고 있고, 소분노동자인 헬퍼가 따로 있다는 이유로 사회적 합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최근의 쿠팡은 과로사가 만연하던 2021년 이전의 택배업계 상황으로 돌아간 듯하다. 그리고 타 택배사들도 쿠팡과 경쟁한다는 이유로 주 7일 배송제와 같이 합의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를 조직하는 공공운수노조 물류센터지부의 캐치프레이즈는 '하루를 일해도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 인권이 존중받는 일터'다. 그러나 현실은 하루를 일하면 며칠은 홀로 앓아야 하는 불안정한 삶, 쿠팡에 출근한 지 3일 만에 함께 야간근무를 하던 남편을 잃어야 했던 우다경님과 같은 산재 피해 가족들이 있다.
노동자들의 현실에서 경험하는 디지털 전환은 노동 존중이 아니라 노동자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데 쓰이고 있다. 디지털 기술 변화가 향하는 방향과 맥락을 살피고 이를 규제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기존 제도가 부여하던 노동자의 삶과 안전을 위한 사용자 책임들을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회피시키고 있는지, 노동자의 과로 노동을 어떻게 강제하고 있는지 살피고 이를 바꿔나가지 않는다면 디지털 전환은 우리가 꿈꾸던 미래와 점차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디지털 전환기의 사용자 책임을 다시 논해야만 한다.
▲고태은 / 활동가(중앙대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고태은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고태은은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투쟁에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중앙대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며, 불안정 노동 현장과 정책을 잇는 연구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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