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16 19:01최종 업데이트 25.06.1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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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노 킹스'(No Kings) 시위 이후 한 보안관이 시위대 쪽으로 최루가스 통을 차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79번째 생일을 맞아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열리기 전 수만 명의 시위대가 미 전역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연합뉴스

요즘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다 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있다. "네가 사는 곳은 괜찮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 군이 투입되고, 최루가스와 통금령이 내려졌다는 뉴스가 이어지면서 마치 내전이라도 일어난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79번째 생일을 맞아 워싱턴DC에서 미 육군 창설 250주년을 기념한 대규모 열병식이 열렸다. 대통령이 군대와 함께 생일을 축하받는 모습은 권위주의 국가를 연상케 했다. 동시에 LA, 뉴욕, 필라델피아 등 전국 2000여 곳에서는 '노 킹스(No Kings)'를 외친 대규모 반트럼프 시위가 벌어졌다.


이 같은 흐름 속에 미국 일각에서는 현 사태를 '내전의 전조'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아직 내란으로 진단하기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이번 군 투입 논란을 트럼프와 공화당의 정치적 계산, 그리고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 변화의 맥락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60년 만의 군 투입, 트럼프가 노린 것

이번 사태는 지난 6일 LA 도심에서 벌어진 대규모 불법 이민자 단속에서 비롯됐다. 연방 이민 당국이 수십 명을 체포하자,이에 반발해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고, 트럼프 대통령은 단 하루 만에 캘리포니아주 방위군 2000명을 연방 통제 하에 투입했다.

이틀 뒤인 9일에는 해병대 병력 700명이 추가 배치됐고, 10~11일에는 법적·정치적 충돌이 정점에 달했다. LA 시장은 통행금지령을 발동했고, 주지사는 군 투입이 위법이라며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2일 연방 판사는 즉각 중단을 명령했으나, 그날 밤 항소법원이 이를 뒤집으며 군 투입은 계속되고 있다.

불법 이민자 단속을 위해 군대를 투입한 것은 사실 전혀 우발적인 일이 아니다. 트럼프 2기 국정 청사진인 '프로젝트 2025'는 불법 이민자 색출과 추방을 위해 '반란진압법'에 근거한 군 투입을 제안했고, 불복 세력은 '반란'으로 간주하며 취임 첫날 관련 행정명령을 발동하라고까지 제안했다.

이러한 계획을 주도한 인물들은 현재 트럼프 휘하에서 불법 이민 정책을 총괄하는 핵심 참모들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이번 군 투입을 통해 의도적으로 충돌을 유도하고, 이를 '반란진압법' 적용의 명분으로 삼으려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나아가 향후 계엄령 발동 등 군 동원의 법적·정치적 한계를 시험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특히 트럼프는 지난 대선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선전했다. 2020년 34.3%였던 득표율을 2024년에는 38.3%까지 끌어올렸다. 히스패닉계 지지는 남성 29%에서 42%로, 여성은 34%까지 상승했다. 불법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느끼는 남미계 유권자들이 트럼프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에 호응한 결과다. 이런 흐름은 공화당에 캘리포니아가 더 이상 민주당의 '철옹성' 지지 지역이 아니라는 희망을 주었다.

군 투입은 이러한 정치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불법 이민 단속을 통해 이민자들의 반발을 유도하고, 폭력 시위를 군이 진압하면서 '법과 질서 대 무법천지' 프레임을 확산시키고 있다. 시위가 격해질수록 트럼프의 강경 대응은 정당성을 얻게 된다.

이 사태는 단순한 일회성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며, 앞으로 다른 대통령들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군 동원을 시도할 수 있는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 한 번 무너진 금기는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쩌다 자국 도시에 군대를 투입하는 나라가 되었을까?

쇠퇴를 만회하려 더 공격적으로 변하는 제국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노 킹스' 시위가 진행된 가운데 시위 참가자들이 미국 헌법 서문을 상징하는 대형 현수막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오늘의 미국은 '제국 과잉 확장'이라는 고전적 함정에 빠져 있다. 1987년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에서 지적했듯, 경제력에 비해 과도한 군사·외교적 의무를 짊어질 때 패권국은 균형을 잃고 쇠퇴한다. 미국은 지금 그 전형적인 궤도 위에 서 있다.

경제적 수치는 이를 뚜렷하게 말해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 세계 금 보유량의 70% 이상을 차지했던 미국의 경제 비중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1960년대 초 40%에서 오늘날 25% 내외로 추락했다. 1990년대 초, 주요 7개국(G7)이 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했던 반면 신흥 경제국 연합체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는 6분의 1에 불과했지만, 2023년 브릭스가 마침내 G7을 추월했다.

국내 사정도 심각하다. 제조업의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는 11.4%까지 하락하며 탈산업화가 가속화됐다. 연간 1조 달러가 넘는 무역적자와 GDP 대비 120%를 넘는 국가부채가 누적되며 기초 체력은 흔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75개국에 군사기지를 유지하며, 연 8000억 달러의 국방비를 쓰고 있다. 국방비 지출 규모로 세계 2위국부터 10위국까지의 지출 금액을 모두 합친 것보다 큰 금액이다.

트럼프 1기 정부 이후 국내 안보 위기 속에 해외 주둔군을 국내로 돌리는 흐름도 반복된다. 2018년 남부 국경에 5200명의 현역 병력을 파견했고, 2020년 인종차별 반대를 촉발했던 조지 플로이드 시위 때는 다수 주의 방위군이 치안 임무를 수행했다. 해외 주둔군 일부를 국내 안보에 돌려 쓰는 흐름은 과거 패권국이 쇠퇴기로 접어들 때 나타난 전형적 징후와 닮았다.

문제는 이런 상대적 쇠퇴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의 전략적 사고는 여전히 과거 패권 시기의 영광에 사로잡혀 있다. 1990년대 초, 냉전이 막을 내리자 미국은 사상 유례없는 단극 체제를 구가했다. 1989년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선언한 '역사의 종언'은 자유민주주의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시대적 자신감을 대변하는 선언이었다. 1992년 미 국방지침은 "어떠한 미래 경쟁자도 부상하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명시할 만큼 자신만만했다.

21세기 들어 세계는 다극화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인도와 브라질 등 신흥 강국들이 부상하고 있지만, 워싱턴의 정책 엘리트들은 여전히 미국이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 우위를 유지하던 시기의 전략을 구상하고 집행하려 한다. 현실과 인식의 괴리가 클수록, 미국은 동맹에 대해 더 강압적이고 거래적인 태도를 보인다.

트럼프 2기의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외교 행태는 그 대표적 예다. 전 세계를 상대로 10%의 일괄 관세를 부과하고, 동맹국들엔 '무임승차론'을 앞세워 방위비 인상과 주둔 미군 감축을 압박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취소하기는 했지만, 트럼프 1기 말이었던 2020년에는 독일에서 1만 2000명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압박 외교는 미국의 국제적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럽인의 70% 이상이 향후 10년간 미국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몇몇 동맹국은 이미 자체 방위 역량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더 빠르게 추락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격변의 시대, 내부 결속이 외교의 힘이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이 로스앤젤레스의 연방 건물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미 전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정책을 반대하는 행진과 시위가 있었던 이날 이민 단속 반대의 중심지가 된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도 ‘노 킹스' 시위가 열렸다.연합뉴스

역사 속 모든 제국이 그러했듯, 미국의 상대적 쇠퇴도 분명한 현실이다. 그리고 그 쇠퇴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된다는 점 역시 자명하다. 국론 통합보다 진영 논리에 매몰되고,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적 양극화가 극에 달하면, 자국 도시에 군대를 투입하는 파국적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우리 역시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를 통해 그 현실을 경험했다.

그러나 이번 LA 사태 등을 과장해 미국이 내전에 빠지고 패권이 급속히 무너질 것처럼 보는 시각은 현실적이지 않다. 쇠퇴의 징후는 분명하지만, 이는 수십 년에 걸친 장기적 과정일 가능성이 크다. 풍부한 자원, 지정학적 이점, 과학기술 혁신 능력 등에서 미국은 여전히 압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사회의 회복력 역시 과소평가할 수 없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이 쇠퇴를 만회하려는 과정에서 동맹국에 더 많은 부담과 충성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외교, 안보 및 경제 전략을 수정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떠나도 트럼프 현상은 남아 미국 대외정책에 오래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쇠퇴하는 패권국은 대외적으로 더 공격적으로 변해 왔으며, 그만큼 국제 질서의 불안정도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국제질서가 불안정해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개인이나 기업은 본능적으로 손실 최소화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나 국가는 달라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국익과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과감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다만, 전략은 대담하되 실행은 신중해야 한다. 항공기 항로처럼, 처음의 작은 방향 조정이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다른 목적지로 이어진다. 결국 중요한 건 방향의 전환이 아니라, 그 전환의 정밀도다.

한미동맹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정부의 압박 외교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공통 이익을 넓혀가는 한편 국익과 충돌할 때는 이견을 분명히 밝히는 성숙한 태도로 방향을 조정해 나가야 한다. 그런 유연함이야말로 동맹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외교 전략도 내부가 흔들리면 허망한 구호에 불과하다. 외부의 압력이 거셀수록 내부의 결속이 중요하다. 12·3 내란 사태의 진상을 조속히 규명해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민생경제 회복에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격변의 시대,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진짜 외교력은 결국 내부의 단단함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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