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12 15:04최종 업데이트 25.06.1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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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 2차 태스크포스(TF) 회의를 하고 있다.대통령실제공

최근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이 0.8%가 되리라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이 2% 정도로 추정되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올해 초 1.5%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한국 경제는 올해 심각한 경기 부진 상태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0.8% 성장률도 제대로 달성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수출 전망도 어둡지만 자영업 구조조정은 계속 진행 중이어서 내수 부진이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은 0.8%보다 더 낮아질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이재명 정부가 물려받은 한국 경제는 난파 직전의 배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배 바닥은 구멍이 뚫려 물이 들어오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폭풍우가 몰려오고 있다.

비슷하게 한국 경제는 저성장, 양극화로 어렵고 세수 기반은 훼손되었는데 트럼프의 관세인상, 인구 감소 위기 등 위기 상황이 안팎으로 진행되고 있다. 새 정부가 과감한 추경을 준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추경을 한다고 해서 뿌리 깊은 난제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성장률이 급락하고 양극화도 심화되어 왔는데, 이러한 현상의 근저에는 저출생·고령화, 나쁜 일자리 급증, 수출경쟁력 하락, 자영업 구조조정, 수도권-비수도권 격차 심화, 에너지 전환 지체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한 배경에는, 국가가 뒤로 후퇴하며 고삐 풀린 시장에 경제 운영의 주도권을 넘기는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는, 외환위기 이후 채택한 한국경제 모델이 존재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규제 완화, 민영화, 세계화, 금융의 지배, 소극적 재정정책 등을 통하여 낙수효과를 기대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 문제들을 양산하였다.

성장과 분배 개선 위한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전환 필수

한국의 5월 수출이 작년보다 1.3% 감소하면서 수출 증가율이 4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핵심 주력 상품인 반도체 수출은 역대 5월 최고치를 기록해 양호했지만, 미국의 관세 부과 영향에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대미 수출이 전달에 이어 감소했다. 사진은 1일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2025.6.1연합뉴스


추경을 넘어 한국 경제가 당면한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장 주도 경제 운영 시스템의 효율성,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를 접고, 국가가 적극 나서서 근본 원인을 치유하며 성장과 분배 개선을 모색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가는 민간이 하기 어려운 R&D 투자와 인프라 투자를 주도함으로써 성장의 판을 깔아주어야 하고, 복지를 확대함으로써 분배를 개선해야 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통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생산성을 높였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현시점에서는 재생에너지를 신속히 확대하는 것이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이자 새로운 성장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공공 주도 재생에너지 투자가 중요하다. 이러한 에너지 전환은 친환경 제조업, 친환경 건설업 성장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두터운 수준의 복지 확대도 두말할 필요 없이 국가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돌봄, 의료와 관련된 복지 인프라에 국가가 적극 투자하는 것은 실물 투자인 동시에 사람 투자이기도 하다. 복지 확대는 양극화를 해소하며 저출산과 고령화가 사회에 가하는 고통을 완화하는 중요한 수단일 뿐 아니라 일자리를 창출하여 내수를 확대하는 효과적인 성장 정책이기도 하다. 복지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자본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복지는 고용 창출력이 크기 때문에 임금이라는 부가가치를 대량 생산한다.

국가가 성장과 분배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자 할 때 핵심 정책 수단은 조세 재정 정책이다. 적극적 조세 재정 정책으로 전환하려면 관료를 포함한 정책 결정자들을 지배하고 있는 뿌리 깊은 재정 보수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재정 보수주의란 '감세', '건전재정'을 양 기둥으로 하는 재정 정책 기조를 말한다. 그리고 이 두 개의 기둥은 자연스럽게 재정 지출 축소를 추구한다. 윤석열 정부의 조세 재정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감세와 지출 축소가 집권 3년 동안 반복되었고 그 결과는 내수 부진과 민생 피폐화였다.

이재명 정부는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역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데, 향후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러한 재정정책 기조이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과 건전 재정 정책으로 인해,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들은 더욱 심각해지고 민생은 피폐해졌다. 자영업자들이 코로나 위기 때보다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나 국가의 자영업자 대책은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이다. 국가 복지가 약하다 보니 출산휴가, 육아휴가는 대기업과 공무원 등 소수만이 누리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일자리가 줄고 있는데 개인의 역량강화와 생계유지를 위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R&D 감축으로 대학의 실험실 문이 닫히고 석박사 학생이 쫓겨났다. 이재명 정부는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건전재정' 원칙으로 비판하는 세력에 적극 대응 필요

지난 2023년 8월 24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건전 재정을 강조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제는 새 정부가 이러한 문제들에 적극 대응하려고 할 때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낭비성 지출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역대 정부가 정권 초에 항상 낭비성 지출 줄이기에 나서 왔기 때문에 이를 통해 규모 있는 재원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결국, 어느 정도의 증세와 국채 발행을 피할 수 없다. 경기가 부진할 때도 여유 있는 계층은 있기 때문에 증세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당장은 윤석열 정부가 한 부자 감세를 원상 복구하는 것이 우선 과제이다.

물론 원상복구라는 것이 완전히 동일한 모습으로 복구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변화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가령 법인세의 경우 최근 첨단산업에 대한 전 세계적 경쟁이 벌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일부 산업에 대해서는 투자 세액 공제를 두텁게 주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한편 자산 소득에 대한 감세는 적극 원상 복구할 필요가 있다. 자산 격차가 커져서 한 편에서는 임대료 부담,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부담이 커졌는데, 이것은 다른 한편에서는 자산으로부터 나오는 소득이 증가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세 원상복구를 한 이후에는, 과세 기반을 넓히면서(모두가 조금씩 더 부담), 고소득·고자산 계층에게 조금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누진적 보편증세' 전략이 필요하다. 소비세보다는 직접세 증세를 하되 밑 구간은 약하게 위 구간은 무겁게 과세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증세 전략은 단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새 정부는 당분간 국채 발행에 기댄 재정 정책을 수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새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려 할 때 건전 재정 훼손이라는 강력한 비판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재정법은 제1조에서 '건전 재정의 기틀 확립'을 목표로 명시하고, 제7조와 제16조에서 '재정 운용의 효율화와 건전화,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등 건전 재정 원칙을 중시하고 있다.

새 정부가 이에 잘 대응해야만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적절한 대응책은 건전 재정 원칙을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국채가 증가할지라도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추경을 편성하여 경기가 과도하게 가라앉지 않도록 끌어올리고 중장기적으로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해 성장과 분배를 제고하는 것이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길이라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 이를 통한 민생 회복을 기대해 본다.

정세은교수포럼사의재

* 필자 : 이 글을 쓴 정세은 교수는 현재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전공은 거시경제이며 한국경제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바람직한 조세재정정책이 연구 관심사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했고, 2018년 제4차, 2023년 제5차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에 참여했습니다. 현재 포럼 사의재 경제팀 연구위원,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민교협2.0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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