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9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더욱 우려되는 것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인식이다. 어떤 인물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에 포획된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예컨대 지난 5월 29일 오후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앞 유세에서 했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 자리에서 이재명 후보는 "세금은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걷는 것이다. 세금이 다른 제재 수단으로 사용되면 정당성을 얻기가 어렵다", "수요 과다로 집값이 오르면 세금으로 수요를 억압해서 가격관리를 하는 게 아니라, 공급을 늘려서 적정한 가격을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세금 때문에 지지율을 까먹고 마침내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수용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지 않다면 부동산 정책의 핵심 수단인 부동산 조세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평가했을 리가 없다. 반드시 내란을 종식시키고 선거에 이겨서 정권을 되찾겠다는 마음이 강렬해서 그런 입장을 취했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인식이 잘못된 현실 인식과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닌가.
우선,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과세 강화 정책을 추진해서 실패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전반 3년 동안 부동산 과세 강화에 극도로 소극적이었다. 그런 소극적인 정책이 정부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음을 알리는 신호로 작용해 부동산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하자, 임기 후반에는 취득세·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 모두를 급격히(그것도 다주택자 중심으로) 강화하는 극단적인 정책을 펼쳤다.
한마디로, 문 정부는 전반기에는 미온적인 부동산 정책으로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켜 서민층의 마음을 잃었고, 후반기에는 정반대 방향의 극단적인 정책으로 세 부담을 급증시켜 중산층의 마음을 잃었다. 이에 대해서는 2023년 2월 12일 자 <오마이뉴스> 칼럼(
'문재인 정부 실패한 정책, 진지하게 회고해야 하는 이유' https://omn.kr/22pus)에서 상세히 설명했으므로 참고하기를 바란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부동산 과세정책을 펼쳐서 가격 폭등을 막았더라면 그처럼 참담한 실패를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부동산 투기란 괴물과도 같은 존재다. 괴물이 우리에 갇혀 있을 때는 모르지만, 한번 우리를 탈출한 다음에는 도로 집어넣기가 너무 힘들다. 이재명 대통령이 소극적인 부동산 과세정책조차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면, 문재인 정부 전반기보다 더 심한 상황이 발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지우기가 어렵다.
현재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시장이 다시 불붙고 있다. 여기에는 윤석열 정권의 부동산 투기 조장 정책과 금리 하락이 영향을 끼쳤겠지만, 이재명 정부 부동산 정책의 기조도 한몫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아직 정책을 시행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소리인가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과 대선 공약을 통해 이미 드러난 정책 기조는 투기를 방임하겠다는 신호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정책의 '공표효과'라고 부른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과세정책의 오류에 대해서는 나도 여러 차례 지적했다. 문재인 캠프는 대선 공약에 매년 10조 원, 5년간 40조 원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켜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고, 집권 후에는 상당 기간 부동산 보유세 강화에 극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않고 시장을 적당히 마사지하는 수준에 머물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임기 후반 부동산 과세 강화에 나서면서부터는'1주택자=실수요자, 다주택자=투기꾼'의 프레임으로 다주택자를 범인 취급하는 차등과세 정책을 펼쳐 '똘똘한 한 채'로 투기수요가 집중되게 했다. 등록 임대주택에 과도한 세제 혜택을 부여해 투기꾼들에게 꽃길을 깔아주기도 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오류는 분명하게 확인되는 만큼 그 오류를 바로잡고 윤석열 정권이 무장 해제한 투기억제 장치를 합리적으로 복원하면 될 텐데, 아예 투기대책과 부동산 과세정책에는 눈을 감은 채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자들이 오랫동안 주창해 온 공급 확대 정책을 기조로 삼겠다고 하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주택공급에 주력하겠다든지, 행정수도 완성과 '5극 3특'(5대 초광역권 및 3대 특별자치도) 중심의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해서 수도권의 주택 수요를 분산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권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수요를 아예 외면한 채 공급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큰 잘못이다. 사실 단기적인 가격 조절을 목적으로 공급을 활용하려는 것 자체가 난센스가 아닌가. 주택의 신규 공급량은 단기간에 변화시킬 수가 없고, 어떤 시점에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공급 확대를 결정하더라도 실제로 공급이 이뤄지는 것은 빨라야 3~4년 후이기 때문이다.
경제학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조세와 부동산 가격 안정화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견해는 명백히 틀렸다. 세금의 목적을 국가 재정 확보로 한정하고 세금을 다른 제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수요 과다(투기수요를 뜻하는 것 같다)로 집값이 오르면 수요는 손대지 않은 채 공급을 늘려서 대처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현대의 경제학 교과서 가운데 세금의 목적을 국가 재정 확보로 한정하는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세금은 재정 확보 외에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면 어디에든 사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은 세금 외에는 없다. 지난 20대 대선 때만 해도 이재명 대통령은 '교정과세'라는 개념을 알고 있었다. 토지세와 탄소세가 각각 토지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무분별한 탄소배출을 억제하기 위한 세금으로서 교정과세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밝혔으니 말이다.
게다가 투기수요 때문에 집값이 오르는 상황에서 수요를 억압하는 가격관리 정책을 쓰지 않겠다니, 이는 투기를 그냥 방치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공급을 늘려서 투기수요에 대처하겠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된다. 거품이나 안개처럼 순식간에 팽창했다 소멸하는 수요에 공급을 어떻게 맞추겠다는 것인가. 3년 전만 해도 올바른 조세 개념을 갖고 있던 이재명 대통령을 이처럼 후퇴시킨 요인이 궁금하다.
속히 제대로 된 부동산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송파구 아파트 단지의 모습. 2025.3.13
연합뉴스
나도 부동산 세금을 단기적인 시장조절 목적(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는 양도소득세와 보유세를 강화하고, 내릴 때는 양도소득세와 보유세를 완화하는 것)으로 활용하는 데는 반대한다. 또 문재인 정부처럼 모든 부동산 조세를 갑자기 강화하거나 주택 수 기준으로 차등 과세하는 데도 반대한다. 역대 정부가 부동산 조세를 그렇게 활용해 왔기 때문에, 갖가지 부작용이 초래됐고 유난히 강한 조세저항의 분위기도 형성됐다. 부동산 조세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것은 물론이다.
단기적인 시장조절에는 미시적인 금융정책이 제일 효과적이다. 그 외에 거래규제·개발규제·가격규제 등도 시장 침체기에는 완화하고 가격 폭등기에는 강화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단, 대한민국은 부동산 보유세가 너무 낮아서 언제라도 투기가 발발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강고하다. 장기적인 관점(단기적인 시장조절의 관점이 아니라)에서 이런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새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의 정상화와 부동산 보유세의 선진화(먼 미래의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 도입)를 여전히 주장한다. 정책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2021년 11월 10일 자 <오마이뉴스> 칼럼(
'기발한 이재명, 그래도 공학이 철학 이길 수는 없다' https://omn.kr/22dhe)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정책이 아니고는 팽창할 대로 팽창한 불로소득 파이프라인을 축소시킬 방법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다양한 형태의 맞춤형 공공분양과 고품질 공공임대 주택공급 정책과 기본사회 정책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흔들림 없이 추진해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 정책들은 울퉁불퉁한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다친 아이에게 소독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는 정책일 뿐, 아이가 다시 넘어지지 않도록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근본 정책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기를 바란다.
삼봉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에게 지어 바친 <조선경국전> 첫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임금의 지위는 높기로 말하면 높고, 귀하기로 말하면 귀한 것이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민은 지극히 많으니 한번 그들의 마음을 잃으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긴다.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협박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꾀로 속일 수 없다. 그 마음을 얻으면 복종하고 그 마음을 얻지 못하면 임금을 버리는데, 버리는 것과 따르는 것 사이에는 털끝만큼의 차이밖에 없다(이익주 편저, <정도전>, 창비, 26~27쪽).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면 달달한 말과 행동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올바른 이론과 철학에 기초한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문제와 정면승부하는 것이 정답이다. 일부 국민의 저항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걸 슬기롭게 극복해서 나라에 정의가 흘러넘치게 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부디 이재명 대통령은 이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다수의 국민이 따르는 대통령으로 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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