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옵티칼하이테크, 거통고 조선하청, 세종호텔 등 민주노총 소속 고공농성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이재명 대통령, 고공농성 노동자와 만납시다! 민주노총 고공농성 문제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고공농성 사업장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민
새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묵은 잘못들은 털고 갈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과 동시에 여야의 협치를 강조한 이유다. 노동정책도 마찬가지다. 취약 노동자를 배려하고 공정한 관계를 강조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해묵은 과제를 시작과 함께 풀고 가야 한다. 바로 땅 위, 하늘 아래에 머물러 있는 노동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자신이 다니던 공장 옥상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500일 넘게 농성 중이다. 일본 니토덴코 그룹의 한국 자회사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물량을 또 다른 자회사인 한국니토옵티칼로 옮기기 위해 2019년부터 구조조정을 시작해 563명 중 465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다.
2022년 구미 공장에 불이 나자 회사는 화재보험금 수백억 원(전자공시 기준 최대 1300억 원)을 받고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이때 남아 있는 노동자들은 한국니토옵티칼로 고용승계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거절했고, 이를 계기로 노동조합이 농성을 시작했다. 책임 있는 기업이라면 마땅히 고용을 승계해야 하지만 한국에 돈 벌러 온 일본 기업의 눈에 한국 노동자의 고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서울 중구 명동에 가면 세종호텔이 있다. 세종호텔 바로 앞 지하차도 시설물 위에는 고진수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이 100일 넘게 농성 중이다. 세종호텔은 세종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대양학원이 운영하는 호텔이다.
2009년 주명건 대양학원 전 이사장이 세종호텔 회장으로 취임한 후 유독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270명이던 정규직은 아웃소싱으로 20여 명밖에 남지 않았고 2021년 코로나 위기를 이유로 고 지부장 등 15명이 해고를 당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호텔 앞 농성을 시도하고 법원에도 호소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세종호텔 경영진은 법적으로 문제없으니 회사도 의무가 없다는 태도다.
2022년 조선소 하청노동자 유최안은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는 팻말을 걸고 가로세로 1미터의 철창 감옥에 스스로를 가둬 조선소 하청노동의 실태를 국민에게 알렸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그룹으로 인수되었고, 이름도 한화오션으로 변경되었다. 때마침 조선업 호황이 시작되어 한화오션은 인수하자마자 흑자 경영을 시작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런데 그것은 우연한 행운이 아니라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땀과 헌신 덕분이었다.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한화오션에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했고, 벌써 80일이 넘었다. 회사가 수익을 내고 있으니 하청노동자들에게 상여금 50%를 보장하라는 요구이다. 그리 거창하지 않은 요구인데도 회사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거듭 생각해 봐도 노동자들의 요구는 소박한 편이다. 다니던 회사에 불이 나 회사가 운영하는 다른 회사로 고용을 승계해 주면 계속 일하겠다는 요구나,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었으나 다시 회사가 정상화되었으니 고용을 해 달라는 요구 모두 상식적인 수준이다. 회사가 성과를 내고 있으니 정규직만큼은 아니더라도 생산의 70% 이상을 담당하는 하청노동자에게 50%의 상여금을 보장하라는 요구도 과하지 않다.
기업 성공은 노동자 헌신 덕에 가능

▲고진수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세종호텔지부장이 서울 명동 세종호텔 옆 10미터 철제구조물에 올라 고공 농성을 벌인 지 100일이 되는 23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세종호텔 앞에서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벌였다.
유지영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회사는 이들의 요구를 외면한다. 아마도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자들의 요구이기에 법적인 문제만 없다면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일 수 있다. 더 솔직한 마음은 노조하는 사람들까지 포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을 수 있다.
그러나 200억 원을 투자해 8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된 한국옵티칼하이테크나 대우조선해양을 싼값에 인수해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는 한화오션, 그리고 대학을 운영하며 사회지도층 지위를 누리고 있는 세종호텔 경영진 일가의 성공이 오로지 자신들만의 노력 때문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기업의 성공은 정부의 지원, 소비자의 구매, 노동자의 헌신 등이 있었기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이 노동자의 소박한 요구조차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지난 보수 정부의 친기업 정책을 굳건히 믿었기 때문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진짜 공정한 사회는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사회라고 했다. 진짜 대한민국을 향해 막 출발하는 이재명 정부가 묵은 과제를 해결하면 어떨까 싶다. 그리 거창한 요구가 아닌, 더 일하게 해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와 성과를 조금 나눠 달라는 하청노동자의 목소리조차 외면하면서 진짜 거창한 취약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영자도 지금의 성공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뤄졌다는 잘못된 인식을 버리고 노동자의 요구를 포용해야 한다.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곳에 추위와 더위, 비바람과 눈보라를 온전히 홀로 견디는 이들이 하루빨리 가족과 함께하는 보통의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정흥준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소셜 코리아 편집위원)
정흥준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정흥준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편집위원입니다. 학교에서 노사관계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로 강의하며 간접고용 비정규직과 노동조합 등에 관해 연구합니다. 주요 저서로 <오줌인형 잡기> 등 6편의 편저가 있으며 국내외에서 50여 편의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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