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11 11:57최종 업데이트 25.06.1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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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트앤파트너스 이충현 건축사이충현 건축사가 2023년 모두의 1층 X 성수 사업에서 설치한 한 경사로를 가리키고 있다. 이 경사로는 뒷부분 측구의 빗물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설치됐다.홍윤희

"모두의 1층이라는 (경사로 설치, 확산 목적의) 공익 프로젝트가 있다. 턱과 계단에 경사로를 설치하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도 1층을 공유하는 '모두'에 합류할 수 있다." - 2022다289051, 차별구제청구등 사건에 관한 전원합의체 선고(2024. 12. 19.) 중에서

대법원 판결문 중 일부다. 장애인 당사자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 구제 소송에서 헌정사상 최초로 나온 장애인 접근권이 기본권이라는 판결이다. 무의는 이 판결문에 언급됐던 '모두의 1층'이란 프로젝트에 이 공익소송을 대리했던 공익법단체 두루와 함께 참여하고 있다.

'모두의 1층'팀에는 접근권의 상징물이 된 '경사로'를 어떻게 해야 제대로 설치하고 유지할 수 있는지 현장 경험이 많은 건축사가 있다. 2023년 '모두의 1층'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4개 경사로로 시작해 2024년 서울시 전역에 45개의 맞춤형 경사로를 설치하고, 서울시가 펴낸 <경사로 설치 길라잡이> 중 '경사로 설치' 파트를 집필한 브라이트앤파트너스 이충현 소장을 지난 2일 인터뷰했다.

"경사로, 놓기도 힘들고 정보 없어서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

- 먼저 본인 소개를 해달라.


"건축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국제도시과학대학원에서 도시공학을 공부했다. 처음에는 대형 건축사무소에서 설계 일을 하다가 해비타트(국제 NGO 단체)로 옮겼다. 거기에서 3년간 건축설계 일을 하면서 신사업개발팀에서 민관협력사업을 담당했다. 이후 기업의 사회적 가치 전략 컨설팅 기업인 임팩트스퀘어에서 3년간 일하다가 건축사 사무소를 연 지 4년째다."

- 민간 건축회사에 있다가 해비타트로 옮긴 이유는?

"건축 대학 선배의 권유가 계기였다. 큰 설계사무소에서 돈 있는 사람들의 부동산 설계, 건물 가치를 올리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던 중이었는데, 마침 해비타트에서 일하던 선배가 권유했다. 해비타트는 미 카터 전 대통령이 직접 '사랑의 집짓기'에 참여해 유명해진 국제 NGO로 취약계층 주거 사업 등 건축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곳이다. 그전에는 이런 일을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기업도 건축을 통해 충분히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 해비타트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경험이 있는지?

"주거취약계층을 위해 안성에 갔을 때가 기억난다. 어머니, 아버지, 딸 둘이 사는 80년대에 많았던 옛날 한옥이었는데, 신발도 없이 맨발로 아이들이 오랜만에 사람이 왔다고 반가워서 뛰어나오더라. 아버지는 돈 벌러 나가시고, 어머니는 아파서 아이들을 제대로 챙기기 어려웠다. 신발도 없이 오랜만에 사람이 왔다고 반가워 뛰어나왔던 아이가 나중에 캐러멜 하나를 전해 주더라. 꼭 지어주고 싶었는데 그 옆집과의 협상이 잘 안돼 결국 못 하게 됐고,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해비타트에서 일할 때 이동약자들을 많이 만났다. 도시재생사업을 하면서 달동네 같은 곳에 휠체어가 못 가는 상황들을 보면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휠체어 이용하는 분이 사는 집을 개조하려 했는데 자재 트럭이 못 들어갈 정도로 좁은 골목이라 집을 못 지어주는 경우도 있었다. 참전용사 집짓기 사업을 할 때는 대부분 거주자들이 휠체어를 타서 좁은 집 안에 화장실 만드는 게 주된 일이었고, 경사로 설치가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경험했다."

- 현장에서 점주들에게 "알바생들이 짐을 카트로 끌고 올 때도 도움 된다"며 경사로 설치 설득을 하시는 걸 보고 감탄했다. 모두의 1층 첫 해 2023년 사업을 했던 때에는 어떤 깨달음이 있었는지?

"모두의 1층 X 성수 프로젝트에서 30개 이상의 매장에 방문해 경사로 설치를 설득해 4개 매장 경사로를 설치했다. 옛날 동네라서 길이 좁아서 아예 경사로 설치가 불가능한 곳들이 많더라. 현장을 돌아보니 점주들 인식이 '경사로가 뭐예요?'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았다. 겨우 '휠체어, 카트, 유아차가 들어올 수 있는 경사로' 개념을 알려줘 설득해도 현장 문제가 많았다. 정작 경사로를 놓고 싶은 점주들에겐 제대로 경사로를 놓을 수 있는 정보도 없고, 점주도 만족하고 법적 요건도 충족할 수 있는 맞춤식 경사로를 설치 가능한 곳도 거의 없더라.

경사로 지원사업은 각 지자체 공공 지원에만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경사로를 놓을 때 다양한 현장의 상황, 건축적 상황 등등 다양한 케이스가 있는데도 전혀 정보가 없고, 좋은 레퍼런스가 공유되지 않는 분야더라. 맞춤형 경사로 수요는 분명히 있는데, 현실적으로 제대로 맞추어 줄 수 있는 업체가 거의 없는 셈이다."

- 동네 사장님이 경사로를 맞추겠다고 결심했을 때 현실적인 어려움은 무엇인가?

"우선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도 나왔듯, 과거에 법에서 너무 관대하게 경사로 설치 규정을 정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경사로 설치를 안 해도 되는 관행이 굳어져 왔다는 점이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에서 경사로 설치 의무를 바닥 면적 기준으로 정하고 있는데 그 기준이 예전에는 300제곱미터, 즉 90평 이상이었다. (동네 매장 중 90명 이상 매장은 거의 없다) 2022년 이후 50제곱미터(약 15평) 기준 이상 매장 의무화로 바뀌었지만 그나마 신축 개축이 되는 경우에만 한한다. 현실적으로 경사로를, 의지를 가진 개인이 놓는 것도 쉽지 않다. 한국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동네 철공소 같은 제작소들이 없어졌다. 의뢰해서 만들 수밖에 없는데, 개당 단가도 높지 않은 데다가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는 의지도 적다.

행정적으로는 경사로의 적정 경사를 유지하기 위해 도로에 걸쳐 설치해야 하면 구청 도로과에서 도로점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즉 좋은 취지로 놓으려고 해도 놓기가 힘들고 정보가 없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는 사이 장애인 접근권은 계속 악화되는 셈이다."

모두의 1층X서울 경사로길라잡이서울시 약자와의동행사업단이 펴낸 모두의 1층X서울 경사로 길라잡이. 브라이트앤파트너스에서 경사로 설치 요령을, 무의가 장애 고객 서비스 접근성 부분을 집필했다.서울시

장애인복지관 옆 편의점, 경사로 설치했더니

- 2024년에는 모두의 1층X서울 프로젝트에서 정말 많은 매장에 다녔는데, 한 해 동안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

"2024년에는 모두의 1층팀이 서울시와 함께 프랜차이즈 3사 가맹점들을 포함해 경사로를 실제로 설치했다. 120여 군데를 사전 리서치하고, 서울 전역 25개 구를 다 다니면서 46개 경사로를 설치했다. 한 개 경사로를 설치할 때마다 점주와는 4~5번, 도로과 담당자 등 구청과도 여러 번 소통해야 했다. 경사로 하나 놓을 때 최대 16번 정도 소통해야 했고, 보통 한 달이 걸렸다. (이 소장은 이 성과를 인정받아 서울시 민간협력 표창패를 받기도 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경사로가 있다면?

"(서울 강남구) 수서동 편의점이 기억에 남는다. 주변에 장애인복지관이 있는데도 장애인들은 이 편의점 이용이 어려웠다. 편의점은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지역 소매매장임에도 불구하고 경사로 설치 의무에 대부분 해당되지 않아 휠체어 이용자를 비롯한 교통약자들은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이곳에 경사로를 설치했더니 휠체어 탄 손님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한다.

영등포구 문래동 창작촌 카페-음식점 골목에서는 물리적으로 경사로 설치 가능한 64군데 중 18개 매장 설득에 성공했고 그중 9개 매장 앞에 경사로를 놓는 데 성공했다. 나머지 9개는 국가가 보유한 한국자산관리공사 소유 땅이었는데, 여기는 경사로 설치 허가를 받으려면 비현실적으로 복잡한 과정을 거쳤어야 해서 설치를 포기할 수밖에 없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설치된 9개 매장에 대해 도로점용 허가를 받았는데 2022년 편의증진법 개정 이후 '다매장 도로점용 허가'가 난 첫 사례다. 구청에서 민원 우려 때문에 경사로 도로점용 허가를 잘 내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협업하고 있던 서울시 약자동행담당관이 영등포구청을 적극적으로 설득했고 구청도 적극 협조해 주었다."

문래동 창작촌 카페거리에서의 이충현 건축사2024년 모두의 1층X 서울 사업에서 영등포구, 서울시 직원들과 함께 문래동 창작촌 거리에 경사로 설치를 위해 둘러보고 있는 이충현 건축사이충현

- 경사로 사업을 계속하시는 이유는 무언지 정말 궁금하다. 설치하기 전 설득에 손도 많이 가고… 경사로 수익성도 높지 않을 텐데.

"다른 사람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고 있다. 단순히 경사로만 보는 게 아니라 주변 턱, 도로, 주변 환경을 다 아울러서 봐야 한다. 설치하기 위해 주변을 변화시키고 조정할 수 있는 접근 방식이 필요한데, 이런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다."

- 구체적으로 어떤 타협과 조정을 하나?

"예를 들어, 경사로 기울기가 법적으로는 1/12(높이 1, 경사로 길이 12)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 1/10 정도로 타협하기도 한다. 긴 경사로에는 손잡이 설치도 법적 의무인데, 이를 보행자 장애물로 인식해서 손잡이를 설치하느니 경사로를 안 놓겠다는 거부반응이 있다. 이런 경우 높이 차이에 대한 해석을 유연하게 접근해서 되도록 일단 합법적으로 설치가 될 수 있게 한다."

경사로에 손잡이가 달린 모습법적으로 일정 길이 이상의 경사로에는 손잡이를 달아야 하나 현장에서는 도보시 장애물이 된다며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서울시

- 맞춤형 경사로 설계에서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최대한 점주의 니즈를 수용하면서도 실제로 사용 가능하고 수년간 유지할 수 있는 튼튼한 경사로를 만드는 거다. 무거운 것이 올라가도 꿀렁거리지 않게 단단한 철재를 주로 사용한다.

경사로를 잘 유지할 수 있게 놓는 것도 관건이다. 점주가 '흰색 예쁜 경사로를 인테리어와 어울리게 놔달라'고 요구하면 그렇게 하지만, 소재가 잘못되면 비에 미끄러질 수도 있고 너무 튀어 보여서 주변의 시선을 너무 끌면 오히려 경사로 유지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더라.

경사로가 측구(도로 옆에 빗물이 흐르는 곳) 물길을 안 막도록 하고, 앙카(앵커볼트)를 땅에 박아 고정해 경사로가 뜨지 않도록 하고, 양옆에 날개를 달아서 보행자 발에 안 걸리게 하고, 수도계량기를 볼 수 있게 덮개판을 만드는 등 현장 맞춤형으로 설계한다."

이동약자를 고려하는 '건축'이 필요해

- 현재 진행하고 있는 새로운 사업이 있나?

"무의-한국베링거인겔하임과 함께 '무빙포워드'캠페인을 진행한다. 중구청과 협업해서 약수동에 경사로를 놓을 예정이다. 구청과 민간 업체가 함께 경사로를 놓아, '지역 접근성 시너지'가 나도록 민관협력 차원으로 진행한다. 특히 2024년 12월 대법원 판결로 법 개정 압력이 높아진 상황에서 첫번째 지역 경사로 사업이라 의미가 크다."

- 근본적으로 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보는지?

"도시계획상 장애인 보행을 고려하지 않은 시스템이 전 도시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편의증진법도 최근에야 대법원 판결로 국가가 편의증진법 조항을 잘못 만들었다고 판결이 났지 않았나.

대학 때 스웨던 스톡홀름을 여행했는데 도시계획에 놀랐다. 단차가 없어서 차도와 보도 구분 없이 편히 돌아다닐 수 있어서다. 우리나라는 차량 우선순위 시스템이라서 보행자, 특히 이동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구조다."

- 구체적으로 어떤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연석(도로와 인도를 가르는 턱)이 너무 높다. 평균 15센티미터나 되는데, 미국, 유럽, 일본은 연석이 이렇게 높지 않다. 한국이 유난히 높다. 그러다 보니 전동휠체어가 위험한 차도로 몰리는 상황이다.

보행자 우선인 도시를 만들 필요가 있다. 경사로를 매장에 일일이 놓지 않고 도로를 높여서 매장이 '모두의 1층'이 되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면 남대문시장에서 보도를 높여서 길 전체 매장의 단차를 줄이기도 했다."

장애접근성 활동가, 변호사, 건축사가 모인 모두의 1층팀장애접근성 NGO 무의, 브라이트앤파트너스 건축사, 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들이 모두의 1층X서울 민관협력사업 협약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충현 건축사. 네 번째가 무의 홍윤희 이사장,홍윤희

- 모두의 1층을 계기로 법개정이나 정책 개선 활동도 하고 있는데, 지금 가장 몰두하고 있는 부분은?

"도시공간 전문가들이 포용도시를 위한 자격을 확보했으면 한다. 예전에 건축학과에서 BF(Barrier Free) 수업이 별도로 있었다, 건축학과 인증 시 커리큘럼에 있어야만 학과 허가가 나왔는데, 가르칠 교수가 없다는 이유로 민원을 넣어서 언제부터인가 BF 수업이 없어졌다. 수요와 공급의 악순환이다.

배리어프리는 단순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주변 환경까지 감안해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을 건축학계에서 체계적으로 육성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는 무엇인지?

"현재 모두의 1층(모두의1층.org)에서 무의가 지자체 경사로 사업 정보를 모으고 있다. 경사로가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 정도의 데이터와 노하우가 쌓이면 좋겠고, 각 지자체가 도시계획을 짤 때 보행자, 이동약자를 고려한 계획을 짤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은 건축을 할 때 개별 건물 개성만 강조하고 이동약자를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포용적 시각을 가진 건축사를 비롯한 현장 전문가들이 많이 늘어서 서로 벤치마킹하고 협력할 수 있으면 좋겠다. 건축사 전문가들이 돈 버는 것에만 치중하지 말고, 다양한 발주자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포용도시 정책 제언에도 많이 참여해야 한다.

접근성(보장)은 당연히 전문가가 해야 하는 역할이란 인식이 커지고, 건축가가 포용적인 공간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경사로 관련 정보와 데이터, 역사가 구축되어서 지금처럼 '구청이 (경사로를) 놔주면 끝'이라는 식으로 단순히 돈만 쏟아붓고 마는 게 아니라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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