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있다.
연합=OGQ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A씨는 원장에게 임금과 퇴직금 수천만 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고용노동지청에 원장으로 상대로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했습니다만 원장은 고용노동부 조사에 두달이 넘도록 한차례도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원장은 전화로 근로감독관에게 A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인 만큼 고용노동부 진정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항변했다고 합니다.
A씨는 자신이 원장의 지휘 감독 아래서 월급을 목적으로 일해온 근로자임을 충실히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담당 근로감독관은 고용노동지청 대면 조사에 한차례도 응하지 않은 원장의 주장을 이유로, '양 당사자의 주장이 엇갈린다'라며 A씨의 임금체불 피해를 곧바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가까스로 원장의 조사 일정이 잡혔지만, 사건은 이미 7월 초로 연기되었습니다.
근로감독관은 당사자의 주장이 엇갈려 사건이 늦어질 수 있으니,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을 도모해 보라고 권고했다고 합니다. A씨는 변호사 선임에 드는 비용이며 복잡한 절차를 생각하면 막막해집니다. 3월 말에 제기한 임금체불 진정이 한여름이 될 때까지 진척이 없습니다. 고용관계에서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의 노동 행정이 왜 이리 더딜까? A씨는 답답합니다.
윤석열 정권 3년 동안 민주주의만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도 훼손됐습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인 임금을 받지 못한 임금체불 피해액이 윤석열 정부 들어 연속으로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2023년부터 연간 임금체불액은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고용노동부의 연도별 임금체불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년에는 1조 5830억 원, 2021년에는 1조 3505억 원, 2022년에는 1조 3472억 원으로 감소하던 임금체불 피해액이 갑자기 2023년에는 1조 7845원으로 치솟더니, 2024년에는 최초로 2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해야 할 노동 행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임금체불 피해액은 그냥 자연적으로 증가하지 않습니다. 사업주의 임금체불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새롭게 탄생한 이재명 정부는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인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노동 행정 역량을 강화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가장 시급한 민생과제이기도 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모두 노동자의 임금체불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대지급금의 한도를 높이는 것을 공약했습니다. '대지급금'이란 기업이 도산하는 등 임금 지급 능력이 없는 경우 임금을 체불당한 노동자에게 정부의 임금 채권 보장 기금으로 사용자를 대신해 체불임금액을 지급하고, 이를 나중에 사용자를 상대로 받아내는 제도입니다.
현재 퇴직 전 3개월의 임금과 3년 치 퇴직금을 기준으로 도산 대지급금의 한도는 2100만 원이고 재직 중 신청할 수 있는 간이 대지급금은 1000만 원입니다. 해당 금액 내에서 임금을 체불 당한 피해 노동자에게는 임금체불 피해 복구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상담을 하다 보면 임금체불로 고통받는 피해 노동자들 다수는 대지급금의 한도를 넘어서 장기간의 임금체불에 시달립니다. 한두 달을 넘어 길게는 수십 개월의 임금을 받지 못해 퇴직할 시점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피해가 커지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양당 대선 후보의 임금체불 공약, 좋지만 충분하진 않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6.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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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퇴직 전 3개월'을 한도로 체불된 임금, '퇴직 전 3년'을 한도로 체불된 퇴직금만을 대지급금으로 구제해 줍니다.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는 모두 대지급금 한도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구체적으로 퇴직 전 3년의 체불임금 전액을 대지급금으로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는데요. 김문수 후보는 구체적 액수를 공약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만으로는 임금체불 피해의 확대를 근본적으로 막기 어렵습니다. 대지급금은 임금체불이 발생한 후 '대응 정책'에 해당하며 그 재원 역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대지급금을 통해 임금체불 피해 노동자를 구제하더라도 이를 체불 사업주를 상대로 돌려받는 회수율은 40%가 채 되지 않습니다.
이는 임금체불 피해의 대부분이 영세한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감염병의 확산으로 인한 세계적 경제 위기와 저성장이 굳어진 뉴노멀 시대에, 중소 영세 기업의 어려움이 계속하여 가중되고 있습니다.
또한 중소 영세 사업장의 경우에는 비단 '임금 지급 능력 문제'만이 아니라, 사업주가 임금 지급에 관한 법률 지식이 부족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하여 노사 임금 분쟁이 발생하고 이러한 분쟁이 임금체불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퇴직금이나 법정 수당 산정에 있어서 사업주가 근로기준법의 규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갈등이 대표적입니다.
시급한 과제는 중소 영세 사업장의 근로감독을 상시화하여 임금체불이 악성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업주가 임금 지급에 대한 근로기준법의 규정을 제대로 이해시켜 노사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갈등을 예방하는 행정도 강화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노동 행정을 수행하는 핵심이 바로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입니다. 근로감독관은 고용노동부 공무원으로 사업장의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지도 활동, 임금체불 진정과 같은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에 대한 조사 등을 담당합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사법경찰관으로서 근로기준법 위반 사용자에 대한 강제구인과 구속영장 신청을 할 강력한 물리력도 부여받고 있습니다.
16년이 필요한 사건을 1년에 처리해야 하는 근로감독관

▲2024년 5월 8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광역근로감독과 근로감독관들이 임금체불 단속에 앞서 회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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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A씨의 사건에서 피해 노동자인 A씨는 진정 사건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질질 끄는 담당 근로감독관이 원망스럽지만, 담당 근로감독관도 할 말이 있습니다. 피해자의 고통에 무관심한 나쁜 근로감독관도 있지만, 구조적으로 근로감독관이 A씨와 같은 피해 노동자들의 진정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지막지한 업무량 때문입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16~2020 사이 고용노동부의 신고사건 수는 연간 평균 42만 1697건입니다. 이를 처리해야 할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 수는 2021년 정원 기준 3122명(산업 안전 근로감독관 포함) 에 불과합니다. 2015년 1675명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큰 폭으로 증원되었으나 여전히 근로감독관 1인당 연간 신고사건은 평균 135건에 달합니다.
2016~2020년 사이 5년간 신고 사건에 대한 평균 처리 기간은 47.4일입니다. 단순 계산하면 근로감독관 1명이 1년간 135건의 사건을 맡게 되고 1건당 평균 처리 기간 47.4일이 소요되므로 6402일이 필요합니다. 약 16년에 걸쳐 할 일을 1년 동안 해결해야 하니 구조적으로 A씨와 같은 피해 노동자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근로감독관은 신고 사건만 처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임금체불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업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수 있도록 지도 감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난 6월 5일 이재명 대통령이 첫 국무회의에서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증원 검토를 지시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 증원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단기간에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17개의 노동관계 법령, 수사 능력 등 전문성을 갖춘 근로감독관을 적절하게 증원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설 중앙정부에 제안했던 '근로감독관 업무의 지방정부 위임 정책'이 좋은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역적 특성에 맞는 다양한 노동정책이 요구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중앙정부의 역량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노동 행정의 과제들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임금체불 피해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근로감독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위임한다면 현지의 산업 특성을 잘 이해하는 지방정부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현지 특성에 맞게 예방적 근로감독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임금체불에 대한 조사와 처벌 사업장에 대한 지도 감독,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각종 의무 부여 등 노동법을 집행하는 노동 행정은 원칙적으로 국가의 사무에 해당합니다. 법률에 따라 중앙행정기관인 고용노동부에 전적으로 권한이 있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역시 노동 행정은 전국적으로 통일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경기도가 2021년에 발표한 <지방정부의 근로감독 권한 공유협력 모델 도입 및 효과성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근로감독관의 업무 내용 중 현지성이 두드러져 지방정부가 수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업무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위임하는 방식을 제시합니다.
가령 법령 해석 등은 중앙정부가 담당하되, 지역의 산업 특성에 맞는 산재 예방 활동이나 영세 사업장에 대한 임금체불 사건 조사처럼 지역주민의 생활밀착형 업무는 지방정부 근로감독관이 수행하는 것이지요.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재선 의원 시절인 2024년에도 중앙정부의 근로감독 권한을 지방정부에 위임하기 위한 근거 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대통령께서 해당 보고서를 다시 꺼내 들고 지방정부와 진지한 논의와 검토를 하셔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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