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09 12:01최종 업데이트 25.06.0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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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관림을 위해 들어가는 사람들윤한샘

양가적 감정. 청와대 정문에서 바라보는 모든 풍광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머릿속은 기대와 착잡함이 뒤섞여 안개처럼 뿌옇게 되고 있었다. 브레인 포그(brain fog)라 하던가. 멍하고 흐릿해져 방향감각까지 잃을 뻔했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올 수 없지 않을까'라는 (선거 결과에 대한) 기대감과 아우라로 빛나던 이곳에 나의 때가 묻을 거라는 착잡함, 이 양가적 감정이 혼란의 실체였다.

사전 선거 둘째 날, 투표를 마치고 청와대로 향했다. 다음 주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일상이 회복되면 예전의 청와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자. 이번이 청와대 안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하는 얄팍한 생각이 더 많았다.

청와대의 아우라

나는 청와대 주변 동네들을 좋아한다. 창덕궁이 있는 원서동에서 북촌과 가회동을 지나 삼청동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청와대 앞길이 개방된 후,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 길을 따라 분수 광장까지 올라와 인왕산 밑에 그림 같이 앉아 있는 청와대를 보는 것이 좋았다.


대통령을 지키는 군인과 경비원들은 전혀 위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든든하고 충직해 보여 가슴이 웅장해지곤 했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가기 전, 이 동네는 이름 모를 아우라가 가득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사는 동네, 이 동네를 지나며 느껴지는 아우라가 난 좋았다.

최종 목적지는 언제나 근처 맛집들이었다. 청와대에서 통인시장 쪽으로 걸어 나오면 필운동 골목 속에 숨어있는 음식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은 대기 줄이 많아 들른 지 오래지만 영화루 매운 짜장면은 언제나 최고 별미였다. 경복궁역 쪽으로 내려오면 보이는 미락치킨은 미식가들의 오랜 아지트였는데 이곳도 TV에 알려지더니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 마지막은 서촌 골목 체부동집. 지하에서 막걸리 한 잔에 먹는 파전 한 조각은 서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작은 행복이다.

하지만 3년 전 청와대의 인적이 사라지자 내 눈을 채우던 동네의 아우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떠난 동네는 관광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청와대가 개방되었다는 뉴스가 들렸지만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쳐놓은 주술과 부정을 따르는 거 같아 께름칙하기도 했고.

정말 용산이 국정을 수행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더라도 천천히 절차에 따라 옮겨갔으면 되는 것을.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비밀과 억측으로 비워진 청와대를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엉망 속, 아름다운 청와대

청와대 본관윤한샘

2025년 4월 4일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고, 광화문의 혼란과 소음이 잠잠해진 뒤에야 다시 그 동네 생각이 났다.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던 새로운 대통령 선거일이 손에 잡히자 청와대에 가도 되겠다는 용기가 움텄다. 나에게 청와대의 아우라가 복원된다는 것은 일상의 완전한 회복과 같은 말이었다. 투표함에 넣은 나의 한 표가 그곳에 감돌던 불행의 기운을 걷어낼 수 있는 원천이 될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 청와대 방문. 검색해 보니 예약이 필수였다. 오전 10시 30분으로 예약을 하자 바코드가 카톡으로 날아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예약으로 그룹을 이룬 후, 시간순으로 입장해야 하는 줄 알았다. 나름 질서와 통제 속에 관람이 이뤄지는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입구에 가자 어이없어 말이 안 나왔다.

입장은 바코드만 보여주면 순서 없이 가능했다. 10시 30분으로 예약했지만 10시 전에 들어가도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정문을 지나자 간단한 짐 검사가 있었고 80년대 자연농원에나 있을 법한 초라한 분홍색 종합안내소가 보였다. 그 뒤에는 '청와대 국민 품으로'라는 표지판이 멀뚱하게 서 있었다.

유일한 안내판은 안내소 앞에 놓인 청와대 관람 가이드였다. 가이드를 집어 드는 순간, 한숨이 나왔다. 폰트, 색감, 재질, 모두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파란색 청와대와 초록색 잔디에 어울리지 않는 유치한 분홍색 안내소와 이런 가이드는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걸까?

찜찜한 마음으로 청와대 본관으로 걸어가는데, 불현듯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눈앞에 가물가물했다. 아, 이거 어디서 본 건데, 어디서 봤더라. 본관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창경원, 이건 어릴 적 갔었던 창경원의 풍경 아니었던가.

1483년 성종이 건립한 창경궁은 일제강점기 시절 동물원이 됐다. 일제는 1909년 창경궁의 건물과 전각을 훼손하고 일본식 건물과 동물원을 설치했다. 자신들의 국화인 벚꽃을 심어 꽃놀이도 하고 일본 박물관도 만들어 창경궁을 유원지로 전락시켰다. 지금은 복원(사실 완전한 복원은 아니지만)이 되었지만 종묘와 이어지던 길도 차도로 분절해 버렸다.

해방 후, 1983년이 돼서야 창경궁의 복원이 시작되었다. 내가 어릴 적이라고 했지만 5~6살 때였으니 기억이라기보다 사진에서 본 모습이 맞을지도 모른다. 청와대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사진 속 창경원이 떠올랐다. 나 또한 그 무리에 있으니 할 말은 없지만, 내내 마음이 헛헛하고 무거웠다.

대통령 집무실. 원래대로 대통령이 돌아오길 바라며윤한샘

본관 내부는 다행히 큰 훼손 없이 깨끗해 보였다. 다만, 관람 동선은 엉망이고 관람객 통제는 불안했다. 때때로 안내원이 사람들을 향해 짜증을 내는 모습이 영 볼썽사나웠다. 시간과 인원을 정리해서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면 될 것을. 그나마 대부분 성숙한 태도로 관람하고 있어 다행이었다.

역대 대통령 사진이 있는 세종실, 각종 임명식과 수여식을 했던 충무실 그리고 대통령 집무실과 접견실들은 화려한 조명과 장식들로 반짝였지만 공허했다. 아, 이곳이 항상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던 그곳이구나. 여기가 대통령이 서류에 사인을 하던 장소였네, 자꾸 TV에서 봤던 대통령의 잔상들이 계속 아른거렸다. 영혼 없는 껍데기는 이제 가야 한다.

서울을 바라보는 불상

청와대 방문 목적에 본관이나 녹지원같이 이름으로만 듣던 장소를 보는 것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외부인에게 감춰졌었던 문화재를 꼭 보고 싶었다. 말로만 들었던 신라시대 불상과 전각이 왜 청와대 내부에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청와대 문화재는 본관에서 상춘재로 가는 도중, 왼쪽 산책로 위에 있었다. 얕은 동산을 약 15분 정도 올라가야 했다. 산책로는 한가했다. 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데 철책 뒤로 부암동 방면이 보였다. 여기서 부암동을 보다니, 금단의 공간에서 바라보는 경계 밖 풍경이 생경했다.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윤한샘

약간 숨이 찰 정도가 되자 내리막이 드러났다. 조금 더 내려가니 전각에 앉아 있는 부처를 만날 수 있었다. 불상의 명칭은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평화롭고 표정과 여유로운 풍채와 달리 이 부처는 지치고 고달픈 여정을 겪어왔다.

일제강점기였던 1913년, 초대 조선총독이었던 테라우치 마사타케는 경주에서 이 불상을 발견한 후 관저가 있었던 남산으로 가져왔다. 1927년 새로운 총독부가 지금 청와대 자리에 건립되면서 다시 옮겨졌고, 1989년 새로운 대통령 관저가 지어졌을 때 현재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다.

기구한 불상의 운명을 생각하다 문득 그의 시선이 궁금해졌다. 부처는 경복궁과 광화문으로 이어져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 그리고 저 너머 남산까지 서울의 중심부를 고고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종교가 없다. 그렇지만 부처의 시선이 향한 곳을 깨닫고는 옅은 안도감이 들었다. 그 순간, 내란 이후 대한민국의 안온을 지켜주는 선조들의 보우를 아마 믿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해갈의 맥주

오운정윤한샘

불상을 보고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작은 전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운정이라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전각도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처럼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원래 청와대 지역은 경복궁 후원이었다고 한다. 세종 때 경복궁 북쪽에 신무문이 창건된 이후, 경무대로 불리며 왕실의 관심을 각별히 받았다. 가급적 건물을 짓지 않은 채, 활쏘기 시험장이나 왕이 시범적으로 농사를 짓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숱한 전쟁으로 소실되었던 경복궁은 고종에 와서야 복원이 되기 시작했다. 예전 경무대 또한 다시 왕이 직접 농사나 누에치기 시범을 하는 공간이 들어섰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장소로 오운각 같은 전각이 지어졌다. 오운각은 다섯 구름의 전각이라는 뜻으로 자연 풍경의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일제강점기 경무대는 총독 관저 자리가 된다. 그 안에 있던 아름다운 전각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행히 오운각은 살아남았다. 해방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관저 옆에 있던 오운각의 현판을 오운정이라고 바꿔 달았고, 1989년 새로운 대통령 관저가 생기며 지금 산 중턱 자리로 옮겨졌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윤보선 대통령은 독재의 흔적이 묻어있다는 이유로 경무대라는 이름을 청와대로 바꾸었다.

조선왕조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독재 시절까지, 청와대는 단순히 대통령의 집무실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었다. 백성을 향한 조선 왕실의 염원이 담겨있고 일제의 무도함이 생체기로 남아있는, 독재의 아픔까지 간직한 이곳은 국민이 위임한 대한민국 대표가 역사적 소명을 가슴에 안고 자신의 직무를 충직히 이행해야 하는 경건한 공간이었다. 설사 급하게 청와대를 떠났더라도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게 공들여 다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산책로를 내려와 다시 정문으로 향하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가는 길에 있는 여민관은 기념품을 파는 곳이 되어 있었다. 혹여 구매할 것이 있을까 들렀지만, 유치한 로고가 박힌 에코백과 손수건 같은 볼품 없는 것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빨리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서둘러 자리를 떴다.

한 시간 남짓 돌고 나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날씨도 더워 목도 말라 왔다. 보통 서촌으로 가는데, 이 날은 오랜만에 삼청동 거리를 걷고 싶었다. 국무총리 공간을 지나 삼청동길 한쪽에 작은 한식집이 보였다. 메뉴는 연탄불고기와 청국장. 다행히 구석에 자리가 있었다.

삼청동에서 먹은 청국장과 얼음 맥주윤한샘

5월 말 날씨가 꽤 더워 갈증이 심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물도 마시지 못했다. 맥주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생각하는 찰나, 벽에 '얼음 생맥주'라는 손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생맥주도 아니고 얼음 생맥주라니! 딱 한 잔이면 몸과 마음의 갈증이 사라질 듯했다.

맥주 신은 또 이렇게 길을 보여주시는구나. 청국장과 생맥주, 평상시였다면 볼 수 없는 조합이 이날은 아름답고 조화로워 보였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투표한 날에 어울리는 최고의 선물이기도 하고.

21대 대통령이 선출된 다음 날, 청와대가 내부 정비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새로운 대통령을 위해 마땅한 조치이자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순리대로 돌아간다는 것, 그리고 희망과 기대가 있다는 것. 다시 청와대가 다시 아우라를 회복하면, 이런 마음으로 청와대 주변 동네를 돌아다니리라. 시원한 얼음 생맥주를 파는 그 식당을 새로운 단골로 삼으며.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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